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을 걸으며 우리는 무엇을 보나요? 인스타그램에 올릴 예쁜 사진?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핫플? 하지만 그 골목골목에는 일제의 칼날 아래서도 조선인의 터전을 지켜낸 한 사람의 처절한 신념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김경민 교수가 쓴 『건축왕 정세권』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소비해온 한옥마을의 진짜 이야기를 복원해냅니다. 부동산 시장 분석과 도시계획을 연구해온 저자는 빅데이터 기반 연구자답게 토지대장과 신문기사, 흩어진 역사 기록을 꼼꼼히 추적해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정세권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뜨겁고도 선구적인 뜻을 지닌 인물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단순히 한옥마을을 만든 사람이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건축왕 정세권』을 통해 잊혔던 한 시대의 진정한 건축가이자 민족의 실천가를 알게 되어 마음 깊이 뜻깊은 만남을 한 듯합니다.
1920~30년대 경성은 전쟁터였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 바로 토지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남촌을 차지한 뒤 북촌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조선인들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자신들의 터전에서조차 쫓겨날 처지였습니다.
"경성이 어찌 조선사람의 경성인가"라는 당대의 한탄은 그저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제는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인 주거지를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고, 이는 곧 조선인의 공간적 축출을 의미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정세권입니다. 그는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북촌의 넓은 대지를 매입해 조선인을 위한 한옥단지를 개발했습니다.

기어코 이 지역만큼은 일본인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공간적 저항입니다. 만약 정세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북촌은 일본 적산가옥으로 가득 찬 거리였을 겁니다.
북촌과 익선동에서 다세대 한옥을 공급한 사업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도시주택 개발 방식이었습니다. 참신한 점은 단독 대지에 대형 한옥이 아니라 좁은 대지에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 가능한 소형 한옥이라는 설계 변화였습니다.
이런 방식은 현대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의 원형처럼 보일 수 있고, 주거 수요가 폭발하던 도시화 초기 경성에서 주거불안을 완화하는 혁신이었습니다. 정세권은 단순히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시계획적 안목을 가진 디벨로퍼였고, 당시 조선 내부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었습니다.
한 예로, 북촌 가회동 31번지-익선동 166번지 개발에서 보듯 그는 여러 필지를 확보해 소형 한옥을 설계했고, 이를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형태로 주택을 보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계·시공·금융까지 복합적으로 기능하며, 주택 공급 기업으로서의 측면을 띠었습니다.
『건축왕 정세권』에서는 정세권의 등장배경과 그가 왜 최초의 디벨로퍼로 불리는지, 그리고 도시·주거·민족이라는 삼각축이 어떻게 그의 사업을 가능케 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관광지로만 인식하는 북촌, 익선동이 사실은 절박한 필요에 의한 공간혁신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왕십리 일대에서 일본인 주거단지 계획과 맞서 토지매입 경쟁을 벌인 일은 단지 땅값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의 공간적 자율성과 주거권을 지키려는 전략이었습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부동산과 주택사업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세권은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주택개량과 서민주택 공급을 확대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민족적 소명이 결합된 판단으로 말입니다.
정세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저자의 뜻은 인물 복원 그 이상입니다. 정세권은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이며 또한 민족운동가였습니다. 사업이 위축되는 와중에도 조선물산장려회에 어마어마한 거금을 투여하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민족의 산업자립과 주체성 회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세권은 물산장려회관을 건축했고 별도 회사 장산사까지 운영하며 잡지를 발간하고 생필품 공급망을 갖추었습니다.
집이 터전이라면, 말은 정체성입니다. 정세권은 자사의 수익을 민족운동에 투자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어학회 후원이었습니다. 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고, 표준어사정위원회를 후원하며 한글과 조선어연구의 물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그는 고문을 당했고, 일제는 그의 막대한 자산을 몰수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건양사는 결국 쇠락했고, 역사 속에서 잊혔습니다. 하지만 그가 조성한 북촌과 익선동 한옥마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북촌과 익선동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그것이 단지 트렌드나 미관 때문만은 아니라 민족의 살 집을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의 꿈의 산물임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 주거불안 등으로 도시 공간을 둘러싼 갈등을 목도합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공공성과 수익성은 조화될 수 있는가?, 주거공간이 단순히 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정세권의 삶에서 건져올리게 됩니다.
정세권의 한옥은 남았지만 그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독립운동가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근대 건축의 선구자로 기억되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북촌 골목을 걸을 때 혹은 익선동 카페골목을 찾는 순간, 그 공간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숨 쉬었던 사람들의 얼굴, 그 공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신념을 상상하게 됩니다.
골목산책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 『건축왕 정세권』은 역사가 지워버린 영웅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되돌려놓은 값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