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은 방영 직후 200만 조회 수를 돌파하며 방송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의 성공을 넘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인재전쟁: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책은 2025 최고의 문제작 <인재전쟁> 다큐의 확장판입니다. KBS 다큐 <인재전쟁> 방송 미공개 취재 내용 및 전문가 인터뷰가 수록되었습니다.
이 책의 중심에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불안이 경쟁을 낳고, 경쟁이 방향을 잃은 채 안정만을 좇게 된 현실. 『인재전쟁』은 그 불안을 해부하고, 국가가 지켜야 할 진짜 인재가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중국의 인재 전략은 교육을 넘어 국가의 생존 전략입니다. 딥시크 쇼크로 알려진 인공지능 기업의 등장은 그 상징이었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은 개인의 천재성을 극대화하는 인재 양성 교육과 창업 시스템이 길러낸 기술 인재 생태계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진단합니다.
중국은 인재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합니다. 중앙정부의 5개년 계획은 교육, 산업, 과학기술 전 분야에 직접적으로 투영됩니다. 『인재전쟁』은 딥시크 CEO 량원펑을 배출한 저장대학교부터 항저우의 창업 실험실, 중국의 대입 시험 가오카오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중국의 교육제도는 이미 시험을 잘 보는 아이를 뽑는 방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시험 성적이 뛰어난 학생만이 혁신 역량을 가진 것은 아니며, 창의성이 뛰어난 학생 중에는 성적이 평균 이하인 경우도 있다는 인식이 제도 설계에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평균 이하의 창의성이 제도 속에서 평가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중국의 과학자들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문화입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그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정년 무렵 한국에서 들려온 R&D 예산 삭감 소식이었다."라는 문장은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국가의 방향성을 가름짓는다는 사실을 이 한 문장이 압축합니다.
중국의 젊은 인재들이 공대에 몰리는 이유는 단순한 성취 욕구가 아니라, 과학자로 사는 삶이 존중받는 사회적 신호 때문입니다. 중국의 공대 열풍은 산업적 계산이 아니라 존엄의 설계에 가깝습니다.
이제 카메라는 한국으로 향합니다. 다큐팀은 한국의 주요 학군지와 이공계 현장을 오가며 의대 쏠림 현상의 정체를 추적했습니다.
"재수생 C군은 공과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공대는 안 된다, 가서 뭐 먹고 살 거냐’는 말이 결정적이었다."라는 한 문장에 한국의 현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안이라는 정서를 구조적으로 내면화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선택이 의대라는 하나의 안전망으로 집중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상으로도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공대가 바로 그 안전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재전쟁』은 이를 사회적 인식의 진화가 아닌 불안의 변주로 해석합니다. 이 불안은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두려움의 정서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산업은 기술 인력을 잃고, 사회는 창의적 모험을 잃습니다. 의대 쏠림은 단지 교육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용기가 사라진 징후입니다.
『인재전쟁』 이를 두고 불안을 질서로 삼은 사회의 비극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쟁은 늘 존재하지만, 방향을 잃은 경쟁은 결국 체념의 반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대 대신 의대를 택하는 학생들, 연구 대신 자격증을 택하는 청년들, 창업 대신 공무원을 택하는 인재들. 이 모든 선택의 배경에는 위험을 최소화하라는 사회적 명령이 깔려 있습니다.
『인재전쟁』은 이 문제를 단순히 교육의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기술 패권 전쟁터라는 개념으로 논의를 확장합니다. 핵심은 결국 사람. 곧 인재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런 인재를 길러낼 제도적·문화적 토대가 부족하다고 말입니다.
국가의 미래는 기술력보다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이 공대를 통해 인재의 기반을 키우는 동안, 한국은 불안을 통해 인재의 날개를 접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공계 위기는 결국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산업 등의 산업 정체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무역특화지수는 하락세를, 중국은 그 반대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이제 기술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되었고, 인재는 그 전쟁의 병기입니다. 총칼 없는 전쟁터에서 한국이 점점 후방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단 하나. 불안이 창의성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인재전쟁』은 단순히 중국은 이렇고, 한국은 저렇다 식의 비교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더 이상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배경에 깔린 정서 구조를 파헤칩니다. 결국 사회가 불안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재는 체제의 도구로만 존재할 뿐 창의의 주체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물음은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국의 인재는 지금, 의대 입시 원서 앞에 서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인재는 창업 실험실에서 실패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더 멀리 보는가의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존중받는 사회, 실패가 허용되는 교육, 불안이 아닌 호기심이 경쟁의 원동력이 되는 환경. 한국이 다시 서야 할 자리입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