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당신의 공감, 진짜입니까?" SNS 시대, 침묵하는 우리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 『거짓 공감』.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플랫폼이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댓글 하나 달기 전에도 열 번쯤 고민하고, 결국 '좋아요'만 누르고 나오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요.
제나라 네렌버그의 『거짓 공감』은 이 불편한 역설을 파고듭니다. CNN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저널리스트이자 신경다양성 운동 활동가로서 자신이 직접 겪은 자기검열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놓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Trust Your Mind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믿으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마음조차 의심하며 삽니다. 이 생각, 말해도 될까?, 혹시 나만 이상한 건가? 이런 물음들이 머릿속을 맴돌 때, 우리는 이미 자기침묵의 늪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거짓 공감』은 한국 사회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집단적 정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에서는 공감이 개인을 살리는 힘이자, 동시에 억압의 도구로 변질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공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표적 현상은 여론몰이와 캔슬 컬처입니다. 모두가 같은 감정을 나눠야 한다는 강요는 결국 공감을 무기로 만드는 일입니다. 유명인이 실언을 했을 때, 함께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공감을 모르는 이기적 존재라는 낙인이 빠르게 붙습니다. 이때 공감은 피해자를 위로하는 힘이 아니라, 다수의 분노를 정당화하고 소수를 배제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저자는 먼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자기침묵 문화의 뿌리를 파헤칩니다. 사람들은 온라인 안팎 어디서든 눈치를 보며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고 합니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란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배척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때는 권력자의 부당함을 견제하는 긍정적 기능으로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과도한 도덕적 검열과 마녀사냥의 도구로 변질됐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가 비단 유명인이나 공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평범한 우리도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합니다.
17세기 세일럼 마녀재판, 20세기 매카시즘, 그리고 지금의 소셜 미디어 린치. 시대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짓밟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묻힙니다.
집단사고(Groupthink)는 집단의 결속력과 합의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비판적 사고가 억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저자는 이 고전적 개념을 현대 디지털 환경에 적용해 새롭게 해석합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SNS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연결해 줍니다. 이른바 필터 버블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획일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파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발언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더 무서운 건, 이렇게 침묵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마치 대세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 시간에 상사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팀워크와 화합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반대 의견은 분위기 파악 못하는 행동으로 낙인찍힙니다. 이런 집단사고가 개인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말살할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오류로 이어집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다름을 결점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시각의 전환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게 불편할 수 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짜 나를 숨기고 얻은 소속은 공허합니다. 가면을 쓰고 연기하느라 지치고, 결국 외로움은 더 깊어집니다. 저자는 '가짜 나'로 무리에 속해 있는 것보다, '진짜 나'로 홀로 서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혼자 설 용기는 자기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살 수 있습니다.

『거짓 공감』은 토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토론이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돼야 합니다. 틀린 말을 해도 비난받지 않고, 입장을 바꿔도 변절자로 몰리지 않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모순 덩어리입니다.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적이면서 다른 사안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SNS는 우리를 단순화합니다. 몇 개의 해시태그로, 한 번의 발언으로, 한 장의 사진으로 사람을 규정합니다.
그렇기에 복합성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변화하고 다층적인 존재라는 점을 끊임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죠. 지금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관점의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나와 다른 의견의 콘텐츠도 의도적으로 소비하고,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을 들이는 겁니다.
『거짓 공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SNS를 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직장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 정치적 견해 차이로 관계가 틀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 자기 생각이 확실하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 우리 모두가 크든 작든 자기검열을 경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좋아요'를 누를 때, 진심은 얼마나 담겨 있나요? 침묵이 습관이 된 시대, 나를 되찾는 용기의 심리학 『거짓 공감』.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입니다. 틀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용기, 비난받을지 모르는데도 말하는 용기, 다수와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용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