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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책리뷰::알라딘
  • 검은 해바라기
  • 오윤희
  • 17,100원 (10%950)
  • 2025-09-19
  • : 505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소설가이자 기자로 활동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윤희 작가의 신작 『검은 해바라기』. 소년 범죄라는 사회적 이슈와 가족 심리라는 사적인 영역을 치밀하게 엮어내며 그 속에서 인간 내면의 어둠을 추적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상기시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 태연이 사건 의뢰를 받으면서 전개되는 초반부는 소년 수완의 범죄를 둘러싼 침묵과 회피를 중심에 둡니다. 태연은 수완의 변호를 준비하며 그의 가정사를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법적 유죄와 도덕적 유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수완의 눈빛 속 공허함은 오래된 결핍의 증거입니다.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지점은 가정의 침묵이 만들어낸 어둠입니다. 수완의 엄마 여정은 모든 애정을 첫째 아들 지완에게 쏟으며, 문제아인 둘째를 무의식적으로 포기합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이 인생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비교는 삶의 기본 언어가 됩니다. 『검은 해바라기』 속 수완이 겪는 내적 고통 역시 가족 안에서의 편애뿐 아니라 사회적 경쟁의 압박과 직결됩니다. 이 침묵과 방치가 만들어낸 결과는 소년이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비뚤어진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행위였습니다.


변호사 태연의 시선은 수완의 사건을 쫓는 동시에, 자신이 키우는 딸 재희의 비밀을 엿보게 됩니다. 이중 구조는 가정의 침묵이 특정 집안만의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의 불안과 고립이 이 소설 속 캐릭터들을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수완과 지완 형제를 둘러싼 대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지완은 타고난 두뇌와 외모, 그리고 주변의 칭송까지 모두 거머쥔 인물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찬사는 늘 그의 몫이었고, 동생 수완은 언제나 그늘에 있어야 했습니다. 지완의 빛은 수완의 어둠을 필요로 했고, 수완의 어둠은 지완의 빛을 부각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 불균형한 진실 속에서 형제 관계는 파괴적으로 변질됩니다.


“수완이가 어둠이라면 넌 빛이었지. 하지만 어둠 없이 빛이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태연이 수완의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깨닫는 것은 범죄의 표면 너머에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빚어낸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빛과 그림자라는 모티프는 비교와 편애가 만든 균열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기능합니다.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지완과 수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내면 고백이 교차하면서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이 무겁게 떠오릅니다.


지완은 겉으로는 모범적인 형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병적인 자기애와 은밀한 악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엄친아 신화가 만들어낸 가혹한 이면을 드러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아이콘 뒤에 도사린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을 떠안게 된 가족의 고통은 소설 속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검은 해바라기』는 화자가 인물 저마다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전환되면서 한 사건이 얼마나 다양한 시각에서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실의 다면성을 체감하게 합니다.





가정은 아이에게 안전망인가, 아니면 가장 위험한 덫인가? 오윤희 작가는 기자적 관찰력과 소설가적 상상력을 결합해 범죄와 가족 서사의 접점을 포착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그림자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정서적 고립은 형제 관계를 왜곡시키고 대화를 잃은 가족을 만듭니다. 형만 생각하는 부모와 이미 내 인생은 끝났다는 수완의 목소리 사이에는 관계 단절이 남긴 깊은 심연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심리학의 교재이자 사회적 거울이라는 추천사처럼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당신은 자녀의 목소리를 진짜로 듣고 있는지, 아니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진 않는지를요.


『검은 해바라기』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오히려 평범합니다. 자신의 성취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가는 자녀, 비교와 차별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는 형제. 이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습니다.


오랜만에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느낀 건 긴장감의 결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평범한 가정 속 균열을 추적하는 이야기여서 그렇습니다. 『검은 해바라기』는 사건보다 사람을, 범죄보다 그 이면의 정서를 파고듭니다. 읽고 나면 서늘하지만, 그 서늘함이 오히려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으로 다가오는 사회 심리 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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