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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책리뷰::알라딘
  • 바당은 없다
  • 송일만
  • 18,000원 (10%1,000)
  • 2025-09-16
  • : 45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제주라는 특정한 지역의 기억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붕괴의 경고장을 담은 자연에세이 『바당은 없다』.


제주 출생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거쳐 살아온 송일만 저자가 다시 고향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은 절절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바당은 나의 집이었고, 놀이터였으며, 세상 밖의 세상이었다"라는 고백처럼 바다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 그리고 세대의 다리를 놓아주는 존재였음을 일깨웁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바다가 더 이상 있지 않음을 증언합니다. 『바당은 없다』의 첫 장은 풍요로운 바당의 기억을, 두 번째 장은 그것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세 번째 장은 붕괴된 생태계의 경계에 선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마지막 장은 이어도라는 상징을 통해 다시 연결될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제주 방언들이 등장합니다. 바다를 뜻하는 제주어 바당을 비롯해 겡이왓, 폴개 등 낯설지만 동시에 토착적 생태지식과 공동체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품은 단어들이 살갑게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바당의 풍경을 회고하는 저자. 돌 틈을 누비던 게, 여름밤의 반딧불, 계절마다 돌아오던 해조류와 물고기는 제주 사람들의 생계이자 놀이였습니다.


저자는 바당을 '나의 우주'라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바당은 변치 않는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가장 가변적이고 취약한 생태계였습니다.


저자의 회고를 읽으며 저는 도시에서 성장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공유지의 풍요로움을 떠올렸습니다. 『바당은 없다』는 한 세대가 자연과 맺던 친밀감이자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내 경고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바당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고발합니다. 인위적인 양식 산업이 자연을 대체하는 현상을 짚어줍니다. 제주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겡이왓은 개발과 매립으로 사라지고, 관광업과 행정 편의가 생태를 압도합니다.


백화현상에 대한 언급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백화현상을 만들지는 않는다며, 결국 바다가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간섭과 탐욕이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렸다는 겁니다.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산호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결국 구멍갈파래 같은 침입종이 생태계를 장악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흔히 에메랄드빛 바다라며 감탄하는 관광 엽서 속 풍경은 사실 회복 불능의 상처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다가 맑고 푸르다는 것이 꼭 건강한 생태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바다의 푸름이 비명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음을 저자는 고발합니다.


이어서 붕괴된 생태계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표현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난민 어랭이입니다. 서식지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난민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과잉된 소비와 개발이 결국 다른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음을 짚어줍니다. 한쪽의 풍요는 다른 쪽의 결핍을 전제로 한다는 냉정한 현실 말입니다.


행정과 기업이 내세우는 친환경 담론의 허구를 꼬집기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깨끗한 정화수일지 몰라도, 그것은 이미 자연의 순환이 끊어진 인위적 결과물일 뿐입니다. 생명은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얼마나 이 붕괴에 기여했는가? 관광객으로서, 소비자로서, 혹은 행정의 침묵을 방조한 시민으로서 말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가 펼쳐집니다. 이어도는 한국인에게 신화적 공간이자 이상향의 상징입니다. 저자는 바당은 바당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며, 인간의 도구적 시선에서 벗어나 바다가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바다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임을 강조합니다. 바당은 없다는 선언은 상실의 탄식이 아니라,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진짜로 없어질 것이라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공유 감각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도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생태적 책임 그 자체입니다.


바다환경지킴이로 활동하는 송일만 저자는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가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제주 바다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다가 사라지는 이야기는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적 현실이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기후위기의 축소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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