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3년 차 여행자가 고백하는 여행의 고백록이자 시대를 통과하며 삶을 마주한 기록 <일단 떠나는 수밖에>. “여행이란 결국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부수는 행위”라는 고백을 통해 여행의 이유를 새삼스럽게 묻게 만듭니다.
그가 이끄는 여정은 화려한 여행지가 아닌 타인의 삶에 스며드는 길입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유목민 천막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흙먼지 속에서, 루마니아의 농가에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만납니다. 여행의 진짜 목적지는 낯선 풍경이 아니라, 낯선 시선으로 자신을 다시 만나는 그 자리라는 걸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부에서는 중앙아시아부터 유럽까지 작가가 걸어간 다양한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우리에게 낯선 중앙아시아 국가들부터 루마니아, 조지아, 스페인까지 다양한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풀어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현지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유목민들의 텐트에서 잠을 자며 "새삼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고백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서는 표면적인 관광지가 아닌 진짜 그 나라의 모습을 찾아가는 그의 여행 철학을 보여줍니다.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위한 여행이 아닌, 진정한 문화적 교류를 추구하는 여행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지아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는 "여행의 끝말은 언제나 같았다. '떠나길 참 잘했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여행의 과정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결국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2부에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변화와 성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를 직시하는 그의 현실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작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부터 방과후 산책단 리더까지 말 그대로 N잡러의 삶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그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경험은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연결감이 주는 특별한 기쁨을 보여주고, 프랑스 몽블랑에서의 트레킹 경험은 걷고 먹고 자고 일어나 다시 걷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리듬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3부는 가장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여행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통찰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더욱 절실히 실감하게 되는 건, 앓고 있는 지구라며 여행자로서의 윤리적 딜레마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줍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조금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라는 프롤로그의 문장은 에필로그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여행을 통해 나와 타인의 경계를 흐리고, 지구의 고통을 감지하며, 작고 사소한 것들의 무게를 비로소 실감하게 됩니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는 우리 모두의 여행을 위한 출발선 선언문입니다. 목적지가 없더라도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때로는 실패하고 길을 잃더라도 떠나는 행위 그 자체가 삶을 확장시키는 일임을 거듭 말해줍니다.
김남희 작가가 23년간의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를 갖게 되는 과정, 연결감의 발견, 감사의 마음 등 여행이 주는 진짜 선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 가장 큰 선물은 포기하지 않는 힘이라고 합니다. 여행에서 겪는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여행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 책입니다. 작가가 "여행이란 결국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부수는 행위"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진정한 여행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서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