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노는 가난 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수습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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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은 영화에서나 나온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극복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다.
그 일에 매몰되어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으니까 잊은 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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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비애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오늘의 비애가 아니다.
과거의 비애가 선을 침범해 오늘의 비애로 넘어온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그 비애와 선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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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겠지만 누군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땐 말이야.
그 일이 맞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견딜 만하니까, 단지 그 이유로 계속하고 있는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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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이 너무 엉망인 집이었다. 외벽에 금이 죽죽 가 있고,
주변엔 쓰레기랑 개똥이 널려 있고, 나는 그때 그 사람들한테
고기 살 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아니지. 고기를 먹는 가족의 풍경이 그 집에서 펼쳐질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그 집은 가난의 상징 같았거든.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모습으로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
그런데 그게 깨진 거지.
저 집도 우리집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고기를 구워 먹는 집이고,
부부는 직장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하루를 잘 영위하는 가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
그때 가난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웠어.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가난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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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가 사랑하는 가족처럼, 나도 적지만 조금씩이라도 돈을 벌어올게요.
그러면 가족이 될 수 있죠?
가족은 그런 거니까.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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