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또 우중런?

이 대회를 언제 신청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아침 잠결에 신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으로 쓰고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부모님이 모두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쓰셨고, 나도 청소년기에 국민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로 쭉 사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은행 계좌도 만들었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계좌는 없애버렸다. 암튼 국민은행 앱에서 달리기 대회 관련 안내가 왔었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신청을 눌렀었다. 참가비는 버튼 하나로 내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서 편했다. 다른 대회였다면, 미리 온라인 시청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정각에 버튼을 눌러도 대기번호를 받을 확률이 높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도 참가비 송금하고 혹시 착오로 내 신청 건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야 하고 내 이름으로 잘 신청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문자가 오지 않으면 대회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도 해봐야 한다. 암튼 온라인 신청하고 해당 계좌로 송금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국민은행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선착순 방식 신청이 아니라 국민은행 이용자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암튼 어쩌다 신청만 해두고 이 대회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에 택배를 받았다. 뭔가 주문한 것이 없어서 뭐가 왔는지 의아했다. 상자가 제법 컸다. 열어보니 맨 위에 배번호표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 이 대회를 떠올렸다.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애매한 크기의 네모난 가방이 있었다. 동봉된 안내문에는 레디백이라고 적혀있었다. 레디백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는 가방일까? 노란 가방이 꽤 예뻐보이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크기가 애매해서 뭘 넣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하면 갖다줄까 생각했다가, 가방이 하나 뿐이라 혹시 한 명이 못 받은 걸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음, 요 가방을 어찌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작년 9월 말 꽤 많은 비를 맞고 뛰었던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다. 그게 내 다섯번째 대회였고, 내일 대회가 여섯번째가 될 예정이다. 24년 9월이 첫 대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다섯개의 대회에 나갔던 것. 이후로는 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이제 작년 봄에 세운 개인 기록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장기적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10킬로미터 코스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또 최근 계속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돈이 없다보니 대회 참가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에도 막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었고, 그냥 적당히 달렸었다. 겨울엔 짧은 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봄이 되면 다시 5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었지만, 3월에도 4월에도 여전히 2~3킬로 정도 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이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전에는 5, 7, 9 정도로 거리를 늘려가서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주와 이번주는 계속 바빴다. 뭐, 어떻게든 달릴 수는 있겠지. 기록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뛰고 오자 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 대회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며 집에서 이동시간과 경로를 살폈다. 준비물들을 챙기려다가 안내문에 적힌 우천시에도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나? 최근 뉴스를 좀 멀리하고 살아서 날씨 예보도 안 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얼른 날씨를 검색해보니 강수확률이 60%라고 나왔다. 이 정도면 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대회 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좀 힘들었었는데, 또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니! 일단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비에 젖지 않는 가방부터 챙기고 여벌옷을 비닐 팩에 챙기고, 슬리퍼도 챙기고.

준비물을 대략 챙겨놓고 지금까지 대회에서 받았던 메달 5개를 꺼내봤다. 주머니에 잘 넣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속 메달들은 몇 군데 얼룩이 생겨있었다. 이게 일종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녹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마른 걸레로 닦아봤는데 닦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는 나무 메달은 멀쩡했다. 금속 메달은 무겁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이렇게 녹인지 뭔지 알수 없는 얼룩도 생기고 참 별로다. 메달들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제 지금까지 나갔던 다섯번의 대회 기록들을 다시 살폈다. 기록들 엑셀로 정리해두고 이걸 재미나이에게 던지고 분석해달라고 했다. 대회 간 기간과 대회 당일 날씨를 바탕으로 기록과 페이스를 분석하라고 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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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분석 및 평가
1. 날씨의 영향: ˝더위는 적, 추위와 비는 변수˝
- 최악의 조건 (1번 대회): 9월 초 철원 대회는 기록이 가장 낮습니다. 6:46 페이스는 당시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 최적의 조건 (2번, 4번 대회): 기온이 낮은 11월과 선선한 4월에 기록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4월 양천 마라톤에서 5:08/km라는 놀라운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PB)을 달성하셨네요.
- 우중런 (5번 대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5:20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기초 체력이 이미 5분 중반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합니다.

2. 대회 간 기간 및 훈련 성과
- 폭발적 성장기 (1번→2번, 약 2.5개월): 두 달 반 만에 기록을 13분이나 줄였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가을 훈련이 빛을 발한 시기입니다. 페이스가 1분 20초나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 안정 및 유지기 (2번→3번, 약 4개월): 겨울 시즌 동안 큰 기량 하락 없이 54분대를 유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꾸준히 달리기 습관을 이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 상승 효과 (3번→4번, 단 13일): 불과 2주 만에 다시 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3분이나 더 단축했습니다. 3번 대회가 일종의 강력한 ‘장거리 인터벌‘ 훈련 효과를 주어, 2주 뒤 몸 상태가 최고조(Peakin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 복귀기 (4번→5번, 약 5.5개월): 여름철 휴식기 혹은 더위로 인한 훈련량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이 조금 밀렸으나, 1년 전(1번 대회)과 비교하면 무려 14분 이상 빠른 페이스입니다.

💡 종합 의견 및 제언
현재 실력은 평균 5분 20초대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5분 초반대까지 충분히 진입 가능하십니다.
다음 목표: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다음 대회에서는 49분대(페이스 4:59/km) 진입을 목표로 삼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팁: 3번과 4번 대회처럼 2주 간격의 연달은 출전이 기록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므로, 목표 대회를 앞두고 2주 전에 가벼운 점검 대회를 뛰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정말 멋진 기록 향상입니다! 계속해서 즐거운 러닝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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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처럼 꾸준히 10킬로 정도를 달렸다면, 재미나이의 말처럼 49분을 목표로 달리기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잘해도 55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애 첫 대회이자 엄청난 더위로 너무 힘들었던 철원 대회를 제외하고 두번째부터는 54분이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심지어 비를 맞고 뛰었던 다섯번째 대회도 53분이었다. 만약 내일 55분보다 늦게 들어온다면 확실히 내 기량이 떨어진 증거가 되겠지. 왜 하필 기준이 55분이냐고 생각이 들었다가 깨달았다. 아까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세계로 끌어든인 친한 형이 오늘 자신의 기록증을 올렸는데 55분이었다. 이 형도 기록이 많이 떨어졌네. 50분에서 52분 정도가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것도 해마다 나이를 느껴서 그런 것이고 예전이었다면 40분대 기록이 나올 사람인데. 암튼 그래서 내 목표는 55분 안으로 그러니까 내 가장 낮은 기록인 54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

사실 비와 강풍 등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이고, 내가 가장 신경쓸 부분은 컨디션이겠지. 이젠 상수가 되어버린 무릎이 안 좋은 것도 갑자기 내일만 좋아질 리도 없을 것이고. 남은 변수는 잠을 잘 자는 것과 새벽에 속을 잘 비우고 출발하는 것. 오늘 남은 시간은 그저 마음 편히 푹 쉬어야지. 기록 생각은 내일 깨고 나서 생각해야겠다.

아, 재미나이 답을 읽다가 이 녀석도 ‘우중런‘ 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조어. 의외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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