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일상


드디어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10년 가량 활동가로 일했었고, 지금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총회를 마쳤다. 활동가로 일했던 약 10년 동안 12월부터 3월까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정말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다. 임원이 되고 난 후로는 내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스트레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중요한 책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그만둔 그 공백을 느낄 수 밖에 업었다. 잘난 척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잘 해왔던 어떤 지점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실무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그 요구를 무시했었다.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계속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긴 시간 내 삶을 바쳐 활동했던 조직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긴 시간 이 조직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에 뭐든 잘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남는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힘들다. 여기서 또 한 번 나이를 깨닫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나를 원하는 곳들이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일을 잘 한다는 자부심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 나이를 감안하고 불러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실무 책임자도 나보다 한참 어릴 것이다. 중간 간부나 실무 책임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채용한다는 선택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


총회 1부 진행을 맡아 대본을 수정하면서 3월 14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찾아봤다. 일본이 만들어낸, 아니 일본의 제과업계에서 만든 화이트 데이 라는 단어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날이라 무시했다. 검색해보니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의 날이라고 기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이 일어난 날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여러 역사 기록들이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칼 맑스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암튼 앞으로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 파이의 날이나 칼 맑스의 기일로 기억해야겠다.


15주년


3.11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15주년이 지났다. 평일이었는데 광화문 인근에서 전국단위 행사가 있었고, 인간 띠 잇기 행사도 있었다. 나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나가지 못했다. 매년 이 맘때 반복하는 말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은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15년이나 지났으니, 후쿠시마 핵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중에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는 폭파된 건물을 약 6개월만에 콘크리트로 덮었고, 콘크리트의 수명 약 30년이 지날 즈음에는 더 확실하게 방사능을 막을 수 있는 소재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덮어 씌웠다. 그래서 실제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 기간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발전소 하나만 폭발했고, 그 용량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발전소 한 기당 용량도 체르노빌에 비해 훨씬 크고 무려 4기가 폭발했다. 그 4기는 모두 설계 수명이 끝나서 폐쇄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명을 연정하여 운영한 발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 폭발이 일어난 1호기에서부터 4호기까지 4기의 발전소와 달리 같은 위치에 있었던 5호기와 6호기는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핵발전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내구도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매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재 인류는 핵발전 이라는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폐기물인 핵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콘크리트 내구 연한)이 끝난 발전소를 폐기하는 기술도 불완전하다. 더욱이 후쿠시마와 같이 좁은 지역에 4기나 되는 고용량의 발전소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유출된 경우 폭발한 발전소의 건물을 덮거나 멜트다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핵연료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기의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난 상태 그대로, 쉽게 말해서 뚜껑조차 덮지 못한 상태로 매 순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냉각수가 그대로 방사능 오염수로 변해 매일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 방사능 핵종의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그냥 방류하고 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넓고 깊어도 매일 버리는 방사능 오염수가 몇 십년 이상 쌓여도 안전할까?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다고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처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51년이 되면 데브리를 수습하고 폐로 처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꽤 높은 확률로 불가능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거짓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아직 공정률 약 30%에도 못 미쳤던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공론화를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며 국민들을 배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러고도 본인은 탈핵(핵발전 산업을 그만둔다는 입장)을 선언했는데, 정작 핵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동의 없이 추행은 저질렀지만 성범죄는 아니다? 이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인간이 버젓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래, 어쨌든 탈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탈핵이라고 떠들었던 문재인과 달리 이재명은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이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해도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 따위, 국민의 건강 따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이다. 이재명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개 돼지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개와 돼지에게 미안해서 금수라고 썼는데, 그러면 오히려 모든 생명에게 미안한 일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씀)  




나이 듦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김없이 "도인"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긴 흰 머리에 흰 수염. 간달프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간달프 만큼 멋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간달프만큼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도인이란 단어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일텐데, 단 하루도 도를 닦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도인에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라고 본다. 감히 도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평범한 범인에게 도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걸 또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는 참 쉽지 않다. 또 다른 반응은 "예술하는 사람" 혹은 "예술가"다. 음, 예술가의 정의는 뭘까? 아니 예술의 정의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남들보다 조금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가 깨달았다. 음악도 딱히 잘했던 적은 없었다. 락 음악을 좋아했고, 멋있어 보여서 기타를 혼자 배우기는 했지만, 농활 갔다가 손가락을 다친 후로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악기는 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한 오륙년 전에 두성을 배워서 노래는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할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평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예술가라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단 하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쩌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그냥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는, 아무 의미 없는 잡글에 불과하다. 역시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겠다.  


그냥 나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과 달리 조금 독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해도,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고,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굳이 일부러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책 구매
















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소설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팔았던 기억도 없고 버린 기억도 없었다.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오래 전 책을 읽었던 당시에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한 강양구 기자가 원망스러웠다. 중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결말은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알림 등록을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제 한창 바쁠 시간에 알라딘 중고 매장 중 한 곳에 이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은 사야 한다는 생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도 배송비가 아까워서 해당 중고매장에서 책 두 권을 더 담은 후에야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지. 얼른 와라. 이렇게 책을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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