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
새벽에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깼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물을 마신 후에 눈을 감고 악몽을 음미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주 꾸었던 악몽은 반복되는 어떤 패턴이 있었는데, 이번 악몽은 낯설었다. 가장 낯선 점은 음식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가 깼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부터 먹방이라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소수의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중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점점 더 유명해져서 공중파 방송에도 진출했다. 먹방이라는 개념이 대유행하며 세계적으로도 퍼져서 이 단어 ‘먹방‘이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나는 이 먹방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이 먹는 장면을 왜 굳이 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 상 필요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향과 기호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먹는 장면을 부각해 화면에 담는 것은 불편하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를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이라고 본다면, 타인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마치 타인의 성행위를 보는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것 같다.
오래전에 보았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멋진 수트를 입고 아주 달달한 케익을 먹는 장면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제목 때문에 그리고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일텐데, 나에게는 이 모습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져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어려서부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독특한 아이였다. 어른이 되어서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가끔 보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랬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달디 단 케익을 먹는 행위는 마치 고문처럼 느껴진다. 혀 끝으로 느껴질 그 아릿한 단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한 기분이 든다. 그걸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여성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남성이 음미하듯 즐기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병헌이란 배우는 이후로도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 중에서 [내부자들]에서 라면과 함께 소주를 먹는 장면이 또 인상적이었다. 극중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은 오른손 손목을 잘린 전직 깡패 두목이었다. 왼손만으로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라면을 후후 불어먹다가 너무 뜨거워서 입에 넣었던 면발을 뱉어내고 소주를 입 안에 털어넣고 입안을 헹구듯이 가글하는 모습은 라면과 소주를 둘 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영화에서 뭔가를 먹는 장면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하정우와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이유로 꼭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좋아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먹는 장면들이 PPL 때문에 나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특정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때문에 중간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었다. 뭐 예를 찾으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새벽에 깬 후로 이 악몽이 낯설고도 기이하다고 여긴 것은 마직막에 깨기 직전 상황이 내가 마치 먹방을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꾸 접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듯, 이젠 영상물에서 먹는 장면이 직접 나와도 예전처럼 막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게 되었다. 예능이라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관련한 것이라면 좋아한다. [무쇠 소녀단]을 좋아했고, 지금 [야구 여왕]을 좋아하고, [피지컬100]과 [강철 부대] 같은 서바이벌 시리즈들을 좋아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PPL로 먹는 장면들이 나온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흐름상 꼭 필요한 내용을 주고 받기도 할텐데 나는 이들이 육체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미션을 마치고 반드시 등장하는 이 먹방 장면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빠르게 보기를 하거나 그냥 건너뛰어 넘겨버리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꾹 참고 보기도 한다. 뭐든 익숙해지면 또 그냥 넘어갈수도 있는 법이다.
새벽에 가만히 누워 악몽을 다시 떠올리다가 어렵게 다시 잠들었는데, 얼마 자지도 못하고 다시 깨고 말았다. 이번에도 악몽이었다. 이번에는 익숙한, 자주 반복되는 여러 패턴 중 하나였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냥 폰을 집어들었다. 북플에서 지난 오늘 쓴 글을 찾으니 두 개가 있었다. 13년과 14년이었던가 그랬다. 하나는 13년이 확실한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확실하지 않다. 암튼 13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길어도 이삼년 내외였을 것이다. 이 두 글을 읽어보니 둘 다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당시에 내가 운전에 대한 글을 제법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일했던 출판사의 사장은 젊은 시절 사진 기자로 자동차 잡지에서 일을 했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에 취재를 나가기도 했고, 슈퍼카로 알려진 차들을 취재하며 직접 타봤던 경험들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사장이랑 밥과 술을 먹으며 자연스레 차와 운전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또 내가 영업을 다니기 위해 회사 차를 몰고 다녀야 했으므로 당시엔 일상적으로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때였다.
첫번째 글을 눈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고, 두번째 글을 빗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두번째 글은 설 연휴 직후에 썼던데, 그해에는 부산에서 부모님이 서울로 오셔서 명절을 보냈었다. 매번 명절마다 열차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틈만 나면 앱으로 접속해서 대기 표가 생겼는지 찾아봐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부모님께서 서울로 오셔서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을 주셨다. 부산행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서울행 표는 넘쳐났으니까. 그리고 그 해에는 동생 가족들이 동생의 시댁 어른집에 들렀다가 서울로 왔다. 당연히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서울에 계셨으니 서울로 온 것이다. 당시 우리 집은 달동네라고 부를만한 언덕에 있었다. 그 직전까지 좁은 집에 살다가 그래도 조금은 크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어른 6명과 아이들 5명이 머물기는 엄청 좁았을 것이다. 그 대가족이 좁은 집에 갇혀 있는 건 답답했을테니 어딘가로 놀러갔다 오는데 그날따라 폭우가 와서 빗길 운전을 했고 매제가 운전하던 차가 사고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두번째 글에서 나는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매제의 차가 작은 사고를 겪었는데, 첫번째 글에서도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였다.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매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 아마 평생 잊지못할 것이다. 눈길 운전 경험이 별로 없는 내 입장에서는 평생 이 정도로 아찔한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으니. 당시 이 글에 여러 이웃님들이 댓글로 적어주셨듯이 혹시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고 읽어야 할 글이었다. 인기도 없고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내 서재 글 치고는 이례적으로 댓글이 많이 달린 이유도 아마 글에서 느낄 수있는 긴박감 때문이었으리라. 그 글을 지금 다시 읽는 나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도 글을 읽으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이후로 정말 어지간히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눈길 운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미 부여
최근에 서재 이웃 꼬마요정 님께서 일기장에 이름을 붙였었다는 글을 읽고 나도 오래 전에 일기장에도 이름을 붙이고, 여러 공책들에 이름을 붙었던 기억이 나서 댓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공책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당 수업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일기도 그랬다. 누가 시켜서 쓰는 건 아니었고, 그저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썼는데, 일기를 쓰는 일은 좀 낯간지럽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그 특정 인물에게 수다를 떨듯이 이야기를 쓰니까 일기 쓰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 이름들은 그때까지 읽어왔던 문학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학창시절에 우리 집엔 책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주로 학급문고를 읽었고, 집에서는 이웃 친구들에게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빌려 읽었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지만, 다행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상황이 나아서 집집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문학전집들을 갖고 있었다.
한참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도서대여점이 동네마다 생겨 훨씬 더 다양한 책들을 빌려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너무너무 기뻤다. 그 시절의 내 꿈은 작은 시골 동네의 도서대여점 주인이었다. 시골이면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적을테니, 내가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서대여점이 생기기 전에는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었다. 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서점에 들여놓고 진열해놓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위탁 판매 상품으로 그 책들은 그 서점이 재산이 아니다. 서점은 위탁으로 들여놓은 도서를 일정 기간동안 갖고 있다가, 책이 팔리면 판매가에서 상호 합의한 공급률에 맞춰 정산을 하고, 만약 책이 오랫동안 안 팔리면 서로 합의한대로 출판사로 반품해버린다. 순진하게도 서점에 그 많은 책들이 다 서점 주인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대여점은 위탁은 아니고 구매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할 무렵에는 이미 도서대여점이란 개념이 거의 사라진 후여서 직접 거래를 해볼 기회는 없었는데, 아마 대여점들도 소매서점에서 정가로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매서점에서 일정한 공급률로 구매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서점도 대여점도 사장이 하루종일 책을 읽고 있을만큼 한가하지 않다. 서점이라면 정말 일이 많고, 대여점은 상대적으로 일이 적겠지만, 결코 맘 편하게 책만 읽고 있을 직업은 아니었던 것이다.
암튼 나중에 깨달았던 것인데,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내가 읽었던 그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대부분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 아니었고, 축약본이었다. 이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허무함과 배신감 그리고 절망감은 꽤 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다 읽었던 것처럼 잘난 척하며 다녔던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좀 복잡한 문제 하나에 엮여있다. 이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밟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지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작년 가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자주 회의도 하고 그걸 단체대화방에서 이어서 생각을 펼치거나 연결하거나 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작년 12월 중순, 우리 회의 기록을 담은 구글문서의 공개 설정 때문에 단체대화방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회의 기록 중에 외부로 유출이 되면 곤란한 대외비 성격의 내용이 있었는데, 기록을 담은 문서는 링크를 받은 사람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개문서였기 때문이었다. 이걸 대외비로 하기 위해 회의 참여자들의 이메일을 수집해서 열람 범위를 지정하기로 했다. 이 명쾌하고 간단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도 좀 소모적이고 지난한 토론이 있었다.
온라인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오고, 얼마나 쉽게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정말 가능하면 만나서 대화하거나, 정 안 되면 전화를 거는 편이지, 온라인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 대화방에서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 분과 좀 넓게 생각하면서 좀 쉬운 방향을 제시하는 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으로 길게 논쟁을 벌리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그 와중에 이메일 주소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의 이메일 주소에 적힌 숫자가 자신의 생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메일 주소만 보고 자꾸 특정 연도에 태어난 것으로 오해한다는 말을 꺼냈다. 아마 그 사람도 이 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모적인 논쟁 때문에 약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생각에서 꺼냈을 것이다. 거기까지 읽은 내가 그 다음을 바톤을 받았다. 내가 주로 쓰는 이메일도 나름 많은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메일 주소를 사용했던 초기부터 메일 주소를 전달받은 상대방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딱 내가 원했던 반응을 하곤 했다. 영어 단어는 그랬는데, 그 뒤에 숫자는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숫자는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했던 야구선수의 등번호를 가져온 것이므로. 야구선수에게 등번호는 그 선수를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야구에는 영구결번이라는 개념이 있고, 그 대상은 야구사에 길이 남는 큰 영광을 받는 것이다. 맨처음 이메일 주소를 정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거의 항상 숫자를 붙일 때마다 이 선수의 등번호 숫자를 가져왔다.
이쯤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과연 이메일 주소가 뭐길래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나 싶은 생각이 드시겠지. 이메일의 영어는 깨어나다는 뜻의 단어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아주 오래전에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숫자는 17이다. 바로 롯데자이언츠 김응국 선수의 등번호이다. 그랬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최동원도 아니고, 김용희도 아니고, 김용철도 아니었다. 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 때 주요 멤버였던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전준호 등의 선수들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김응국 선수를 가장 좋아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일단 흔히 말하는 호타준족 스타일이다. 타격이 좋고 발이 빠르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호타준족이 이종범과 전준호이다. 김응국 선수를 보다 잘 설명하려면 팀에서 전준호와 박정태의 장점을 다 가진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장점이 그 두 선수만큼 못 미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원래 투수로 입단했다가 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타석에 나서서 홈런을 친 이후 타자로 전향했다. 빠른 발과 타격감이 좋았기 때문에 딱 선두타자, 1번 타순이 적합했지만, 전준호 선수가 등장한 이후로는 1번을 전준호에게 넘겨주고 3번이나 5번 타순에 섰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롯데에는 4번은 김민호가 거의 고정이었고, 박정태가 3번 혹은 5번 고정이었다. 클린업 트리오라 불리는 3, 4, 5번 타순에는 클러치 히터라는 장타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했고, 박정태 선수는 전형적인 클러치 히터라고 말할 정도로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발이 빠르기는 하지만, 전준호에는 못 미치고, 장타력이 괜찮고 찬스에 강하지만 박정태에는 못 미치는 선수였다. 반대로 장타력이 좋은 박정태보다 발이 더 빨라서 활용도가 좋고, 발이 빠른 전준호보다 타격감이 더 좋은 선수였다. 다 필요없고 쳤다하면 대부분 2루타였고, 가장 치기 어려운 3루타도 많았다. 사이클링 히트도 기록했고 흔히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부르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도 여러 개 기록했다. 홈런도 소총부대로 불리는 롯데에서 제법 때렸고, 타율은 거의 매해 3할 이상을 기록했다. 도루도 매해 20개 이상을 기록했다. 작년 롯데 선수들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윤나고황손 이 다 덤벼도 못 당할 수준이다. 물론 재작년에 비하면 작년에 이들이 모두 부진했고, 결국 올해 연봉이 다 깎였다는 소식도 접했었다.
야구 얘기를 했으니 마무리는 롯데 이야기로 가자. 최근까지 스프링캠프 소식이 들리고 이제 곧 시범경기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부상으로 스프링 캠프에 합류 못한 마무리 김원중과 필승조 최준용 때문에 초반 투수 운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기다 난데없이 사생활 논란이 터진 정철원까지. 재작년에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나균안이 형편없는 경기력과 매너 때문에 조기에 시즌아웃 되었던 걸 떠올리면 매우 심각한 전력 손실일 수 밖에 없다. 과연 김원중과 최준용이 부상을 잘 이겨내고 복귀할 것인가? 정철원은 사생활 논란과 관계없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줄 것인가? 올해 또다른 이슈는 한동희의 복귀로 인해 손호영이 외야로 옮겨간다는 소식이다. 손호영은 내야에서는 유격수를 빼고 모두 맡을 수 있는 귀중한 멀티 능력자인데 주로 3루를 맡았었다. 배테랑 김민성과 함께 3루수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타격이 좋은 한동희가 복귀하면서 자리를 뺏긴 것이다. 과연 손호영은 외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미 외야는 빈 자리가 없는데 손호영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롯데 팬으로서 가장 바라는 점은 당연히 윤고나황손의 부활이다. 윤동희, 고승민, 나승엽, 황성빈, 손호영이 모두 다시 살아나면 롯데가 못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외국인 투수와 아시아쿼터도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작년에 워낙 크게 한 번 데여서 이 부분은 일단 뚜껑을 열어보기까지 말을 아끼겠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거액을 주고 유강남을 데려왔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포수 자리가 올해는 확실히 안정되기를 바란다. 김태형 감독 본인이 포수 출신이라 포수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포수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도 그렇다. 아다치 미츠루의 [H2]에서 노다 아츠시가 자주 하는 말인 ˝안경 낀 포수는 조심해야 한다.˝ 는 말은 그만큼 포수가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하고 심리전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강남, 정보근 두 명 체제에서 손성빈이 확실하게 치고 올라와 3명이 경쟁하며 시너지를 일으키면 좋겠다. 손성빈이 확실하게 자기 몫을 가져가면 한 경기에 3성빈이 동시에 선발출전하는 날이 그리 드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진은 롯데자이언츠 공식 인스타계정에서 가져온 것인데 흰 바탕 선수들이 교체 투입되면서 3명의 성빈이 동시에 그라운드에 나섰고, 또 황성빈, 장두성, 김동혁이라는 발빠른 선수 세 명이 또 동시에 외야를 맡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