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당연히 마약 같은 건 아니고, 진통제와 감기약이다. 둘 다 먹으면 무지 졸리다. 11월부터 몇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무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오묘한 것이더라. 다 늙어서도 이렇게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늘 굳건하게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힘든 시간을 어렵게 버텨가고 있다.

지난 주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 지나가버렸다. 월요일, 중요한 회의와 몇가지 일처리를 위해 사무실에 나가야 했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얼굴 통증이 심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씻고 나갈준비를 마치고 괄사로 통증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통증의 추이를 살폈다. 극심하게 아프다가도 또 금방 괜찮아지기도 하고, 점점 더 심해지기도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면 너무 힘들어서 통증이 심한 날엔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사무실 나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통증 때문에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자려고 했다. 내가 먹는 진통제는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엄청 졸려서 금방 잠에 빠져든다. 사고 이후 긴 시간동안 먹었는데,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고 통증이 무지 심한 날에만 고민 끝에 먹는다. 한동안은 통증이 좀 있어도 약을 안 먹고 일상생활을 좀 해보려고 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약을 안 먹고 지냈었다. 약을 먹고 급하게 두어 명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통증 때문에 지금 약을 먹었고, 오늘 회의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회의 내용과 해야할 일들 챙기겠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화요일,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어딘가 방문해야 했다. 이날도 새벽부터 통증이 있었다. 일부러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일단 서류를 내러 갔다. 담당자 말로는 3층에 와서 본인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3층에 들어서니 안내하는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자가 많았고, 상담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상담시간이 엄청 길었다. 나는 딱히 상담할 용건이 아니고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고 싫기도 했고 조금 약해졌다가 은근히 세지기를 반복하는 통증이 신경쓰여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직원은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한참 후에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가 곧 나올거라고 전해줬다. 여기까지도 제법 긴 시간이었는데, 대기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그냥 번호표 순번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렸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담당자는 한참 더 지나서 나타났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서류 제출은 금방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고민했다. 사무실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가? 통증이 좀 오락가락 하고 있는데 억지로 사무실을 나갈 수는 있지만, 긴 시간 머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 아무래도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 안에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수요일, 이날도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지난 이틀동안 놓진 상황들 때문에 꼭 얼굴을 보고 논의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통증은 지난 이틀보다 더 심했다. 그때는 좀 무리가 되더라도 참고 버티려면 어찌어찌 버틸 수준이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참기 어려울 지경의 통증이었다. 이건 고민할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약을 먹고 잠들었다. 하나 실수는 지금 약 먹는다는 그래서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못한 것.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들은 당연히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급여를 받고 출근하는 입장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의 중요한 회의들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두 개 조직의 일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무급으로 여러 조직에서 활동하며 살았다.

수요일에 내가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회의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몇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종일 외부에서 태양광발전소 부지 조사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요건 단기 프로젝트 같은 성격의 일로 일당을 받고 참여하고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얼굴 통증보다 목이 더 심하게 아파서 좀 놀랐다. 그러고 보니 코도 막히고, 온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것이 감기몸살 증상이었다.

평소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걸린 것이 아마 작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먹고 있는 감기약을 그때 샀었다. 자주 걸리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좀 고생했던 것 같다. 이건 어지간하면 약 안 먹고 버텨서 지나가고 싶은 내 고집 때문이다. 진통제도 어지간하면 안 먹고 버티는 편이지만, 감기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급하게 꼭 할 일이 있다면 약을 먹고 빨리 나으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약 없이 하루이틀을 지나보는 편이다. 그 사이 저절로 나으면 정말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때 약을 먹는다.

목요일에는 얼굴 통증과 감기 몸살 증상이 겹쳐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날에 잠으로 도망쳐야한다. 감기약은 먹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잠들었다.

금요일, 얼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강도가 심했다가 조금 나아졌는데, 통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나아진 정도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아졌다. 살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감기는 더 심해졌다. 이때의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계속 통증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약 먹고 잠자는 일만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왜 감기에 걸린 것일까?라는 문제였다. 도대체 왜?

금요일 낮에는 진통제도 감기약도 없이 집에서 몇 가지 간단한 일들을 처리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목이 붓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작년에 여유있게 사놓았던 감기약을 찾아서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 경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휙 지나갔다. 열이 심해서 오한이 오기도 했고 목이 너무 아팠고 콧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목감기 약을 먹다가 중간에 코감기 약으로 바꿨다. 어제 월요일 오후쯤에야 감기약이 내 감기 증상을 이겨낸 느낌이었다. 감기가 심할 때 하나 장점은 덕분에 얼굴 통증에 대해서는 잊을 수 있다는 것. 감기기운이 조금 잡히는 느낌이 되자 다소 통증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한번에 두 알씩 먹던 감기약을 내 맘대로 한 알만 먹었다. 약을 정량대로 먹으면 또 졸려서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서. 오늘 잘 쉬고 내일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적게 먹어도 감기약이 졸린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졸다가 깨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아니 아예 자려고 눈을 감으면 또 잠이 달아난 느낌이고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집어들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졸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자려고 누으면 또 정신이 또렸하다. 이게 몇 번째 반복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두문불출하며 약에 취해, 그러니까 약 기운 때문에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며 살다보니 짧은 꿈들을 엄청 많이 꾸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꿈 내용을 잘 기억하는 편이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편인데 요 며칠 꾸었던 꿈들 이야기를 쓰려고 이렇게 폰을 두드린다.

1. 꿈 속의 시간
잘 때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튜브는 재생목록을 만들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다른 음악을 이어서 선택해주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밤새 음악이 계속 나온다. 아마 내가 평소 즐겨듣는 스타일을 알고리즘이 반영하는 것 같다. 영미권 팝 음악을 며칠간 죽 들었다면, 내가 재생목록까지 만들어두고 주기적으로 듣는 8~90년대 팝음악들이 주로 나오고, 중국 노래를 한참 들을 때에는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읽기 어려운 낯선 중국 노래들이 계속 이어졌다. 작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일본 노래들을 꾸준히 듣고 있는데, 확실히 최근에는 영미권 팝송들도, 중국 노래들도, 가끔 듣던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인도네시아 음악들도 다 밀어내고 거의 절대 다수가 일본 노래들이 알고리즘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아, 이주전쯤부터 예전에 즐겨보던 인도영화들의 맛살라 장면들, 즉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춤추는 장면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곤 했는데, 그래서 가끔 인도 음악으로 이어지기도 하더라.

약을 먹었던 그렇지 않고 자연스레 잠들던 상관없이 잠이 오면 딱 느낌이 온다. 이건 곧 잠에 빠져들기 직전이다. 하는 느낌. 그때 태블릿을 열어서 유튜브를 켜고 음악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다.

꿈 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고, 어딘가로 긴 시간 운전을 해서, 어떤 식당을 방문해 회를 먹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바닷가 횟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화 상태는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이었다. 어쩌면 꿈 속의 나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내가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젓가락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실내에 앉아있었던 내가 갑자기 자갈이 깔린 해변 야외 테이블로 옮겨졌다. 순식간에. 그리고 눈 앞에 있었던 대화상대가 사라졌다. 아니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도 모두 사라지고 나와 내가 앉아있던 의자 그리고 테이블만 남았다.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서 깼다.

딱 깨자마자 귀로 들리는 음악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닫아두었던 테블릿을 열어보았다. 분명 잠들기 직전에 요즘 자주 듣는, 그래서 유튜브를 켜자마자 맨 위에 떴던 타무라 메이미의 [無形有形] 이란 곡을 틀어놓고 눈을 감았었다. 그리고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아직 그 곡이 끝나지 않았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나는 잠에 푹 빠져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것이다. 분명 꿈 속에서 나는 긴 시간을 보냈었다. 어떤 여성을 만나 운전해서 바닷가로 갔었다. 운전한 시간만 서너시간 이상이었고, 회를 먹으며 대화한 것도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잠이었다고.

2. 아빠는 어디 계신가요?
사실 이 글은 이 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작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꾸었던 꿈이었고, 깨자마자 이건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 속에 나온 집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는 달리 매우 넓었다. 그런데 집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기도 하고, 아니 교실 같은 느낌도 좀 있었다. 클릭해서 본 적은 없지만 폐교를 구입해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는 영상의 썸네일을 본 적이 있었다. 꿈 속의 집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공간이 넓은데 어디가 어딘지 좀 정신이 없고 산만한 곳. 결정적으로 출입문이 그 옛날 교실의 미닫이 문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노트북을 여러대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생각해보자면 여러 노트북을 켜놓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노트북 하나로는 소설을 쓰던 중이고, 또 다른 노트북은 시를 쓰던 중, 또 다른 것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뭐 노트북은 하나만 있어도 이걸 다 할 수 있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마치 노트북이 모자라서 다 못하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 같네.

암튼 그때 누군가 미닫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업하던 노트북들을 그대로 두고 문이 아닌 천으로 된 막을 열어 젖히며 내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며 신발을 벗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아버지 손에 든 짐을 받으러 다가섰다. 뭔가 무거운 것이 든 종이봉투였다. 아버지는 뭔가 말씀하시며 마치 거실같은 공간으로 올라서셨고, 내가 짐을 받아들려고 내민 손을 말없이 거절하고 아마도 부엌인 것 같은 공간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선 채로 몇마도 짧은 단답형 대화를 나눴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전화기를 찾아 아까 노트북들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갔다. 전화기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나보다. 벨은 계속 울리는데 나는 전화기를 찾을수 없었다. 벨이 계속 울리자 저쪽에서 아버지가 한 소리 하셨다. 안 받고 뭐하냐고. 나는 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계속 전화기를 찾았지만, 전화가 저절로 끊어질 때까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살피다가 내가 하던 작업들이 저장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 저 순간의 감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저런 일을 워낙 많이 겪었으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빡침? 꿈속의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은 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었고, 나는 폰을 열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요며칠 서울은 무지 춥다는데 조심하라고, 옷 좀 따시게 입고 댕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전화로 외삼촌 이야기를 비롯해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통화가 길어지자 무선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고 폰은 다시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 중 하나로 돌아가 마우스로 뭐가를 찾았다.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걸 깨달은 엄마는 바쁘면 끊자 했고, 나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한참 노트북을 만졌지만 날아간 작업은 결국 살릴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고, 아버지가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들은?˝ 이라고 아이들이 언제 집에 오는지 물었고, 나는 ˝몰라요. 이따 오겠죠.˝ 하고 건성으로 답했고, 아버지는 ˝다 오면 같이 먹자.˝ 하고는 다시 뭔가를 만드는데 집중하셨다.

나는 잠시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고 있었다. 뭔가 치워도 치워도 정돈되지 않는 이상한 집이었다. 그때 다시 폰이 울렸다. 무선 이어폰을 아직 끼고 있었기에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시 엄마였다. 엄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말씀을 못하고 한참 다급한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니 잘 들으래이. 있잖아.˝ 하고 다시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상황인데, 무슨 뜸을 그리 들이냐며 채근하는 듯한 느낌의 큰소리를 내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분명 전화기 저쪽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개수대 앞에 서서 서툰 몸짓으로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이쪽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꿈속의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소리를 줄이며 아까 내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그러나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 지금 거기 부산에 계세요? 엄마랑 같이 있어요?˝ 엄마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빠 얘기는 왜 하냐며,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잘 들으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아니, 아빠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고. 지금 요리를 한다고 주방에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꿈속의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요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면 정도를 끓이는 것을 제외하면 뭔가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 집에 있는 아버지는 가짜이고, 진짜 아버지는 부산에 엄마 옆에 계시겠지. 근데 자꾸 아까부터 엄마가 중요한 얘기라고 하면서 말을 못하는 건 대체 무슨 얘기지?

나는 다시 엄마에게 여기 있는 아빠가 가짜인 것 같다고, 거기 잘 계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야가 와 자꾸 뜬금없이 아빠 얘기를 하노! 아이고 야야. 니 어쩔라고 이라노.˝ 마치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모르게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모르게라고 하면 내가 기억을 잃었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인지를 못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주방으로 나가보니 가짜 아버지는 ˝누고? 뭔 통화를 그래 오래하노?˝ 라고 하셨다. 그럼 이건 내가 만든 환상인가? 이 환상은 왜 지금 이 시점에 내 앞에 나타난 건가?

나는 엄마에게 옆에 아빠 좀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갑자기 아빠를 찾느냐며 탄식만 하시고, 바꿔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옆에 계시다면 엄마가 이렇게 하실 이유는 없으니 지금은 옆에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아까 내가 통화 중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또 뭐지? 그게 환청인가? 그럼 오히려 여기 계신 아버지가 진짜인가?

나는 그제서야 누구랑 통화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엄만데, 아빠, 엄마랑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어요?˝ 라고 답하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몰라. 너거 엄마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노˝ 하고 답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추위에 뺨이 빨갛게 변한채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언젠가 내가 사진으로 찍어두고 자주보는 겨울 사진과 똑같았다. 아이들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있었다. 이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모든 상황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나는 꿈에서 깨기 전에 다시 어려진 아이들을 안아보고 볼에 입을 맞춰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려 뛰어가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잠을 깼는데 실제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스팸으로 의심된다는 문자가 나타나있었다.

3. 몇 개 국어까지 가능할까?
가끔 꿈에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원어민들의 말들을 쉽게 알아듣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실의 나처럼 잘 못 알아듣고 말도 떠듬떠듬 잘 못 한다. 어쩌다 꿈에서 외국어를 잘 했던 날에는 깨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다. 며칠 전에 꾸었던 꿈에서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어떤 시설에서 생활했는데, 각기 다른 여러 나라 언어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꿈 속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 못 느꼈는데, 꿈에서 깰 무렵 어떤 사건이 터지면서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너무 잘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꿈 속에서의 내 생활은 마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의 삶 같기도 했고, 전장에서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외계인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힌 지구 상에 몇 남겨지지 않은 소수의 생존자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 시설에 갇혀있었는지, 누가 우리를 가두고 통제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각 나라의 언어들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꿈 속의 나는 유난히 여러 말들을 잘 이해해서 언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언어 소통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주목을 받았던 것이 나중에는 거기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에도 해결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인데, 마치 내가 다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 잠에서 깨어났다.

꿈의 뒷부분은 너무 허무하고 한심하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음에도 꿈에서 깼을 때의 나는 앞부분의 나, 그러니까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알아듣는 내 모습이 좋았어서, 현실의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런 삶을 한번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꿈의 기억들은 더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겠다. 알라딘 서재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을 좀 이겨내고 나면, 좀 더 자주 들어올 수 있겠지. 몸도 마음도 추운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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