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케틀벨 그리고 달리기


어제는 좀 일찍 잠이 들었다. 침대 위 벽쪽에 짐볼을 두고 거기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었다. 우리 가족은 어떤 아주 넓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네 가족들, 우리 아이들과 애들 엄마와 내가 다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3대가 다 모인 셈. 그런데 이 집에 지박령으로 추정되는 어떤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비명이 끊이지 않는 집이 되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지만, 잘 되지 않았고 애들 엄마와 아이들은 집을 떠나 버렸다. 나는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슬프기도 하고 혼자 상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었다. 토닥토닥 어깨를 깜싸 안아 손으로 두드려 주었다. 갑자기 꿈이 멜로물이 된 것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여성에게 확 감정이 쏠렸다. 그러다 그 여성도 혼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집을 떠나버렸다. 갑자기 여동생네 가족들도 하나도 안 보였고, 부모님도 안 보였고, 그 넓은 집에 나 혼자였다. 가구도 하나도 없이 넓디 넓은 집에 덩그라니 혼자 남았고, 갑자기 나는 작아졌다.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꿈 속에서 작아지는 일은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을 헛디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참 애매한 시간에 깨버렸다. 식은 땀을 흘렸길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어 언어 익힘앱을 열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조금씩 하다가, 영어도 조금 하다보니 시간이 휙 지나갔다. 두시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엔 6시쯤 깼다. 유트브를 켜서 음악을 좀 듣다가 뭔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자판을 두드렸다. 작은 방 책상에 노트북이 있으나 책상에 앉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그냥 조금 불편해도 폰 메모장을 열심히 두드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지난 주부터 연휴라 시간 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금요일 아침은 동네 언니들과 케틀벨 운동을 한다. 저번 주 금요일에 단체 대화방에 "혹시 10일 금요일에 나오실 분 계시면 미리 알려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제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임 시간 1시간 전에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오늘 운동하러 나오실 분 계실까요?" 아마 대부분 여행을 갔거나 쉬거나 하시겠지. 주위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오늘도 쉬던데. 라고 생각하고 나도 침대에 누워 맘 편히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데, 전화가 왔다. 운동하러 나오시겠다는 언니 한 분. 그리도 또 가장 나이 많은 언니가 단체 대화방에 본인도 갈 생각이라고 올리셨다. 음, 나는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케틀벨 운동은 참 재밌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운동효과는 무척 좋다. 그래서 늘 케틀벨 운동을 추천하곤 했다. 우연히 하게 된 이 운동모임도 처음엔 좀 어색하기도 하고, 나로서는 제대로 운동도 못 하면서 시간만 뺏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준비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몇 가지 맨몸 운동으로 웜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케틀벨 스윙을 했다. 자세를 꼼꼼하게 봐드리고, 몇 번 시범을 보여드리고, 각자 자율적으로 스윙을 하시라고 하고, 나는 운동공간에 있는 가장 무거운 케틀벨을 가져와 내 운동을 했다. 케틀벨 운동이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여러 동작을 섞어가며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양손 스윙(양손으로 하나의 캐틀벨 들기)을 하다가 한 손 스윙으로 바꾸고, 그 한 손 스윙을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해준다. 이때 무거운 케틀벨을 오른손으로 공중에 던져놓고 빠르게 왼손으로 낚아채어 잡고 스윙 동작을 이어가는 것은 할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준다. 혹시라도 케틀벨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내 발위에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던지고 받아내야 하는 동작이라서 더 흥분되고 재미있다. 그렇게 땀을 좀 빼고 나서 이번엔 좀 가벼운 무게의 케틀벨 두 개를 가져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스윙을 시작한다. 나는 무거운 하나의 케틀벨을 들고 하는 스윙보다 조금 가벼운 케틀벨 두 개를 들고 동시에 하는 스윙이 더 재미있고 좋다. 이때부터 스윙과 클린과 클린앤 저크와 스냇치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헤어졌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케틀벨 운동을 마치면 곧바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동네 사람들 중 시간이 맞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한다. 어떨 때에는 두어 명이 나오고, 어떤 날에는 대여섯명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나도 시간이 맞으면 참석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저녁에 일정이 있었다. 요양보호사나 경비 노동자 등 주로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저녁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르쳐주는 무료 연속 강좌가 열리고, 거기에 보조강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가야 했다. 이 노동자를 위한 야간 컴퓨터 교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오는 행사다. 오늘 저녁에 사람들과 함께 달릴 수 없으니 나는 아침에 달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케틀벨 한 시간 정도 해도 나에게는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니, 달리기 6~8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케틀벨하러 갈 때에도 나는 매번 달리기를 한다. 약 1킬로미터 거리. 사람들과 함께 다시 웜업을 하기는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가장 좋은 웜업은 달리기다. 나는 1킬로를 달려서 충분히 웜업을 하고 다시 사람들과 만나서 맨몸운동으로 또 웜업을 한다. 오늘은 집에서 나설 때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내렸다. 운동장소까지 달려가야 하니 우산을 펼 수 없어서 접은 채로 들고 뛰었다.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빗발이 좀 거세졌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냥 집에 가서 씻을까? 그럼 오늘 달리기는 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연휴 내내 비 때문에 달리기 타이밍을 잡지 못했었다. 까짓거 이 정도 비는 맞으며 달려주자. 지난 대회에서 그 거센 비를 맞으면서 10킬로도 달렸는데. 오늘은 딱 6만 달리자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집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달리기를 시작하니 빗발이 다시 약해졌다. 열을 식혀 주어서 딱 달리기 좋은 정도로 비가 내렸다. 근데 바람은 좀 많이 불었다. 이게 맞바람인데 의외로 달리는데 영향을 줄 정도로 강했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게 달렸다. 대회도 아니라서 기록 신경쓸 필요도 없고 평소 속도보다 천천히 여유있게 달렸다. 딱 2.5킬로미터 지점까지. 거기서부터 갑자기 배에 조금 약하게 통증이 왔다. 단거리 달리기를 포함해 5년 이상 달리기를 하면서 배가 아픈 적은 거의 없었다. 밥을 먹고 2시간 이내에 달리면 꼭 배가 아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 절대 달리기 2시간 이내에 뭘 먹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 어제 밤 12시에 깼을 때 책을 읽다 입이 심심해서 먹었던 과자 몇 조각 이후로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달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 배가 아픈 증상이 조금 지나서 저절로 나아질까? 계속 아플까? 아직 3도 못 찍었는데, 이러면 겨우 5킬로미터 밖에 못 달리는데, 아니 지금 몸을 돌려도 앞으로 2.5를 더 가야 하는데, 이 컨디션으로 갈 수 있으려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괜찮아 지겠지. 괜찮아 질거야 하는 마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거나 3킬로미터 지점은 찍고 볼 생각이었다. 배 통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면서 호흡에도 영향을 미쳐 평소보다 폐활량이 더 딸렸다. 그리고 당연히 더 빨리 지쳤다.


딱 3킬로미터 지점을 찍고 몸을 돌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힘들었다. 배가 신경 쓰이니까 자꾸만 호흡이 얕아지고,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니 근육 피로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악순환의 반복.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4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완전히 지친 상태가 되었다. 배는 계속 미약한 통증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너무 멈추고 싶었지만, 그래도 5킬로는 찍으려고 악착같이 달렸다. 하!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10킬로미터 정도는 그냥 달리고, 20정도도 그러 어렵지 않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오늘은 겨우 5킬로도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게다가 대회 때처럼 최선을 다해서 뛴 것도 아니고 가볍게 천천히 뛰었는데도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나 오늘 오랜만에 제법 제대로 케틀벨 운동을 하고 왔지! 운동 마치고도 아무것도 더 먹지 않고 곧바로 달렸지. 케틀벨 운동 마치고 적어도 단백질 드링크라도 하나 마셨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배가 아픈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몸 상태는 얼른 뭐라도 먹어야 할 상태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다음에 또 케틀벨 마치고 바로 달릴 생각이라면 중간에 가볍게 뭐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지친 발을 힘겹게 옮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가끔 조금 세졌다가 다시 약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주위에 달리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갔다. 대부분 반대 방향에서 그러니까 내가 출발했던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거의 5킬리미터 지점쯤 왔을 텐데 생각할 즈음에 내 뒤에서 가볍게 뛰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금방 나를 추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남성이었다. 그냥 몸만 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적어도 450 정도는 뛰는 사람이겠구나. 지금 내 상태는 아마 550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려나. 그가 나를 쉽게 추월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추월 당했을 때, 억지로라도 좀 따라가보는 모험을 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아니 난 완전히 지쳐서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 5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이제 출발점까지는 1킬로미터가남았지만, 살짝 젖은 신발과 양말 때문인지, 발에 물집이 잡힐 것 같은 기분도 들기 시작했다. 


아, 내가 오늘 안정화를 안 신고 그냥 운동화를 신고 왔구나 하고 깨달았다. 바닥이 두터운 런닝화인 안정화를 신으면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도 덜하고 발의 피로도 줄여주며 물집이 잡히는 것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화는 비싸고 자주 신을 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나는 그래서 대회에 나가거나 작정하고 장거리를 뛰는 날이 아니면 좀 가볍고 저렴한 운동화를 신고 뛰는 편이다. 기준은 아마 10킬로미터 정도. 즉, 10킬로미터 부터 그 이상을 뛰는 날엔 안정화를 신고, 8이나 9 정도 뛰는 날엔 그냥 운동화를 신는다. 다행히도 좋은 신발을 잘 골라서 런닝화가 아닌 운동화 중에서는 달리기에 좋은 편이라고 느낀다. 이거 신고 10 이상 뛴 적도 있었는데, 페이스를 조절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겨우 5킬로를 달리고 벌써 물집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다니! 오늘 뭔가 안 풀리는 날이구나. 결국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5.2 정도 뛴 후였다. 남은 약 800미터를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무지 길게 느껴졌다. 더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갑자기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나는 배의 통증부터 발바닥의 물집이 생길 듯한 감각까지 여러 모로 더 뛸 상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비록 1킬로를 남기고 중간에 멈췄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이미 1킬로를 달렸었다. 합치면 오늘 6을 찍었다. 목표 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출발점에 도착하면 밥부터 먹어야지. 어느 식당에서 뭘 먹으면 좋을까? 먹을 것을 떠올리는 생각 만으로도 흐뭇해졌다.


달리기 열풍, 우후죽순 열리는 대회들 그리고 치솟는 참가비


작년 9월 초에 열렸던 철원 DMZ 국제 평화 마라톤 대회(와! 이거 다 띄우니 엄청 기네.)에 신청서를 넣었던 것은 6월 말이었다. 그 대회 참가비가 아마 3만5천원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옷을 주지 않고 철원 쌀(아마 3킬로그램? 혹은 4킬로그램?)을 보내줬었다. 달리기 마친 후에 나온 간식도 꽤 신경써서 넣은 느낌이었다. 3만5천원이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 잘 몰랐는데, 메이저 대회들은 대회 참가비 자체도 비싸지만, 서버 열리자마자 거의 곧바로 마감되고, 한참 후에 고가의 상품에 참가자격을 끼워 팔기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몇 십만원을 훌쩍 넘어간다고. 허! 그 돈을 주고 그 대회를 꼭 뛰어야 하나? 이후로 내가 참여했던 4번의 대회들은 모두 참가비가 5만원이었...... 아니 하나였던가 두 개는 4만5천원이었던 것 같다. 암튼 요즘 대회 참가비는 대부분 5만원에 맞춰지더라. 아, 이것도 10킬로미터 기준인가? 하프나 풀코스는 더 비쌌던가?


평소에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지만, 대회를 뛰는 건 확실히 좀 다르더라. 소위 대회 뽕이라 부르는 긴장감과 고양된 감정 덕분에 평소 실력보다 확실히 조금은 더 페이스가 올라간다. 그래서 시간이 맞다면 주기적으로 두세달에 한 번 정도 대회를 나가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문제는 대회가 우후죽순 엄청 많이 새로 생기는 것에 비례해 달리기 인구는 훨씬 더 급격하게 늘어나서 대회에 나가려는 사람 수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신청 서버가 열리자 마자 마감되는 일이 흔하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생긴 대회들도 흥행이 잘 되는 더더욱 아무 대회나 자꾸 생기고, 별 것도 아닌데도 참가비는 남들 받듯이 받는 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서울 어스 마라톤이 그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날 스레드는 완전 난리가 났었다. 길바닥에 수십개의 검은색 백이 버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자기 짐을 찾으려고 그 버려진 가방들을 뒤져보는 사진들이 여러 개가 올라왔다. WWF 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가 연 대회였는데, 운영을 이따위로 했다고? 분명 친환경 대회라고 여기 저기서 이름을 내걸었는데 달리다 보면 급수대에는 다들 종이컵을 쓰고 있고, 달리던 사람들은 종이컵을 낚아 채서 달려가다가 마시고 저 멀리 길 바닥에 그냥 버린다. 뛰다 보면 일회용 비닐 우비부터 종이컵 등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엄청 나뒹굴고 있더라. 이래놓고 친환경 대회라고? 딱 한 번 우리 동네에서 열린 아주 작은 대회에서 종이컵이 아닌 다회용 컵을 쓰는 걸 봤다. 그날은 사람들이 컵을 들고 멀리까지 가서 버리지 못하고 급수대 근처에 멈춰서 물을 마시고 반환통에 넣고 달려야 했다. 비록 아주 잠시 내 발이 멈추더라도 이게 맞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반환통을 급수대로부터 적정한 거리에 여러 개를 두면 될 일이다. 좀 멀리에도 두고, 중간 거리에도 두고, 가까이에도 두고.


차량이나 자전거 통제와 코스 안내가 미흡한 대회 이야기도 많더라. 역시 스레드에서 본 것들인데, 그런 대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올리곤 했다. 그렇게 대회는 부실하게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참가비는 추세에 편승해 높게 받는다. 아, 그리고 매번 대회 신청할 때마다 기능성 런닝셔츠를 주던데, 이거 안 주고 돈 적게 받으면 안 되나? 대회 갈 때마다 새 티셔츠가 생기는데, 이러다가 런닝셔츠로 옷장이 꽉 차겠다. 물론 대회 운영진 입장에선 같은 옷을 입고 달리는 수천명의 참가자들이 사진에 나오는 걸 원할테니,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티셔츠도 대회마다 조금씩 질이 차이가 나서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가볍고 통기성도 좋고 아주 만족스러운 품질이라면,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그날 한 번 입으면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은 뭐 같은 것도 있었다.


다음엔 어떤 대회를 뛰어볼까 하고 검색을 해보면 정말 대회가 많더라. 그럼에도 대부분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이 달리기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 될지, 질 낮은 대회가 마구 생기는 현상은 또 언제쯤 나아질 것인지 궁금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삶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매일 일하는 삶을 그만두고 꼭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이제 그 날이 좀 가까워 질까 생각했으나, 아직 작은 아이는 어렸다. 둘이 나이 차가 큰 것이 아쉽다. 아직은 아이들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요즘 내 관심은 자꾸 글 쓰는 일에 가있다. 늘 내가 쓰는 글에 아쉬움이 많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글을 더 많이 써보고, 고쳐보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바쁘게 살다보면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잡지나 지역 신문 등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 받고 글을 쓰는 청탁이 종종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하나도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낼 명분도 이젠 없다. 내 마음가짐부터 그렇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가 걸린 글이라면 어떻게든 마감 시간 안에 써야 하지만, 써도 그만 안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글은 늘 바쁜 이 피곤한 삶에서 계속 후순위로 미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뭔가 써야지 생각해서 메모장에 남겨둔 간략한 글들이 소용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 열어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쓰려고 이 단어들을 써놓았을까 싶다. 분명 메모를 남길 때에는 아주 구체적인 문장까지 생각하고 그걸 다 쓸 여유가 없어서 키워드 중심으로 남긴 것인데, 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계속 머리로만 언젠가는 쓸 거야. 언젠가는 이러고 있으면, 그 언젠가는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글 쓰는 일에 절실하다면, 잠을 아껴서라도 써야 한다. 그래서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미루고 넘어가면 나는 언제나 여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래도 제일 빠른 때이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자.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미루지 말자. 한 문장을 쓰고 말더라도 쓰자.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내 삶이 바뀔 가능성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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