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달리기의 즐거움과 고통

어쩌다가 3월 말과 4월 초에 10킬로미터 대회 두 개를 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4월 초 대회는 양천 달리기 대회로 안양천에서 열린다. 이건 1월에 신청했었다. 작년에 아주 더운 날과 무척 추운 날 두 번 대회를 나갔었기에 올해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에 대회를 나가보고 싶어졌다. 당시 생각에는 4월 초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고, 막 찾는 중에 4월 초 대회가 눈에 들어와서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신청 링크가 열리는 시간에 미리 알람을 맞춰두고 곧바로 들어가서 신청하고, 참가비를 계좌로 보냈는데, 다음날 확인해보니 이미 신청은 마감된 상태인데 나는 참가비 입금 확인이 안 된 상태로 나왔다. 어, 이거 취소되어 버린건가 싶어서 곧바로 전화해서 송금한 시간을 알려줬다. 담당자는 내 송금내역을 확인했다고 정상적으로 신청완료 되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며칠전에 지인에게 링크를 하나 받았다. 우리 동네 불광천에서도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신청 링크는 며칠 후에 열린다고 되어있었다. 나는 이 소식을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올렸다. 다들 멀리까지 일부러 대회에 참가하러 가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회가 열리니 좋은 기회라고 신청하자고 했다. 나는 좁은 불광천변 산책로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달리면 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도 괜찮았다는 누군가의 말을 보고 일단 신청해보기로 했다. 다들 참가하는데, 나만 빠지면 섭섭한 일이지. 아, 잠깐 두 대회간의 기간이 정확히 얼마인지 궁금해 찾아봤다. 불광천은 3월 30일, 안양천은 4월 12일. 12일 이상 시간이 남아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작년 11월 말 대회에 참가한 이후로 약 100일동안 장거리 달리기를 하지 않고 짧게 2~3킬로미터 정도만 달렸다. 날씨가 춥다는 핑계와 귀찮다는 심리상태가 만든 결과였다. 그래도 아예 달리기를 안 하는 것은 양심에 걸려서 가끔 짧은 거리를 달렸다. 그리고 3월 초가 되어서 다시 달리기 모임에 나가 6킬로미터를 달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춰 달리는 것은 한편으로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각자의 페이스가 다른데 서로 맞춰주느라 서로에게 손해이기도 하다. 나는 겨울 내내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달리는 거라서 현재 내 몸 상태가 궁금했다. 그래서 약 6분 중반 페이스로 천천히 달리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너무 오래 쉬어서 잘 못 달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몸은 가벼웠고, 속도를 막 높이지 않아서 호흡도 괜찮았다. 마음은 더 달리고 싶었으나, 오랜만이라는 점을 고려해 일행들과 함께 6킬로에서 멈췄다. 여기서 시작해서 서서히 올려나가야지 생각했다.

생각은 그렇게 했는데, 정말 오랜만이어서 생각보다 다리에 피로감이 오래갔다. 나는 이삼일 지나는 시점부터 언제 다음 달리기를 나갈지 계속 몸 상태를 살폈는데, 바쁜 시기이기도 했고, 다리 근육의 회복도 더뎠다. 결국 6일 후에 이러다 대회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겠다는 조바심을 안고 달리기를 하러 나섰다. 이제 낮에는 날이 제법 풀렸지만, 해가 떨어지면 아직 많이 쌀쌀했다. 얇은 바람막이 잠바와 달리기 때문에 산 싸구려 장갑을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두고 나섰다. 오늘은 최소 12킬로미터, 최대 15까지 달려볼 생각이었다. 달리기 시작하고 3킬로 정도면 충분히 몸이 더워질테니 바람막이는 필요없고, 장갑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후회했다. 바람막이도 그냥 입고 왔다가 나중에 벗어서 허리에 감으면 되는 것을 하고 후회했지만, 특히 장갑이 아쉬웠다. 몸은 약 3킬로 지점까지 가기전에 더워졌지만, 손은 후반까지도 계속 시려웠다.

이거 오늘은 생각보다 멀리 못 가겠구나 느낀 것은 약 4킬로쯤 달렸을 때였다. 다리 근육의 피로가 덜 풀렸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몸이 무거웠다. 그래서 목표를 12가 아니라 10킬로미터로 바꿨다. 사실 8정도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상태라 느꼈지만, 대회를 두 개나 앞두고 이 시점에서 10킬로 정도는 달려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 조금 무리를 했다. 한강을 슬쩍 한번 쳐다볼 시점에 5킬로미터를 찍었고, 조금 더 뛰다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돌아가는 길이 좀 힘들었다. 몸도 무겁고, 다리에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나는 계속 기록을 신경쓰고 있었다. 5킬로 지점까지 페이스가 520으로 나쁘지 않았기에 이 페이스를 가능한 한 유지하고 싶었다. 지난 11월 말 대회의 페이스와 비슷했다. 그날로부터 약 100일만에 10킬로를 다시 달리는데, 기록이 그렇게 쳐지지 않으면 그걸로 안심을 할 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내 생각 그리고 의지와 달리 몸은 빠르게 지쳐갔다. 7킬로 지점에 페이스는 527이 되어있었다. 이대로라면 최종 페이스는 535가 넘으리라.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좀 무리가 되더라도 다시 페이스를 올려볼 것인가. 아님 기록 부담을 내려놓고 그냥 몸 상태에 맞춰 달릴 것인가. 후자를 택했어야 했는데 욕심이 많은 나는 전자를 택했다. 좀 더 페이스를 끌어올렸는데 얼마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무리한 덕에 8킬로 지점부터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9킬로까지는 버티고 버티며 달렸는데 마지막 1킬로를 남기고 완전히 지쳐버렸다. 억지로 달리고는 있는데, 자세가 다 흐트러져서 한심한 꼴이었다. 게다가 오른발에 물집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종아리 근육통이 점점 심해졌고, 심지어 허리와 옆구리에도 통증이 나타났다. 고통을 참으며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달렸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몇 번이나 멈춰서 걷고 싶었지만 꾹 참고 뛰었다. 이제 정말 얼마남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을 걸면서 이를 악물었다. 결국 10킬로 알림이 떴다. 최종 페이스는 534 였다. 내 예상이 대충 들어맞았는데, 마직막 1킬로는 6분대를 뛰었음에도 앞에 9킬로 덕분에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지난 11월 말 대회에 비해 기록이 많이 쳐지지는 않았다. 이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물론 몸은 제대로 걷기도 힘들만큼 지쳐있었지만.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점으로 이동해 물을 마시고 두터운 잠바를 입었다. 땀에 젖은 머리띠를 벗어 비누로 씻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거리별 페이스를 확인했다. 확실히 초반 기록이 좋았는데 반환점을 돌면서부터 점점 페이스가 떨어졌다. 확실히 겨울동안 오래 쉬어서 체력이 너무 떨어졌다. 이 컨디션에 이 정도 기록은 정말 너무 무리였다. 그래도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 정도라면 3월 말까지 남은 시간동안 다음 목표를 어디까지 할지 즐겁게 고민해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서 안심했다. 기분이 좋아지자 갑자기 급격하게 배가 고팠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맛있는 해장국집에서 자주 먹던 내장탕을 먹으러 갔다.


계속 이어지는 꿈

자주는 아니고 가끔 있는 일인데 새벽에 꿈에서 얼핏 깼다가 다시 잠들면 아까 꾸던 꿈을 이어서 꾸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보다 조금 더 자주 있는 일은 비슷한 꿈을 계속 반복해서 꾸는 것. 어떤 날에는 반복하거나 이어서 꾸거나 이 둘이 반복되기도 한다.

며칠 전 일이었다. 초저녁에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계속 잠이 깼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아마 충분히 자서 깰 때가 되었다고 깬 것 같은데, 또 금방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다시 곧바로 잠들기를 반복한 것일까? 어쩌면 음악을 켜놓고 잠이 들었기에 음악 때문에 중간에 깬 것일지도 몰랐다. 평소에는 유튜브로 곡 하나를 선택하고 그 뒤로는 저절로 이어지는 노래들을 듣곤 하는데,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여러 나라의 노래들을 넣어서 만든 리스트를 재생했었다. 영국과 미국의 팝 음악들이 기본이고, 자주 들었던 일본 노래들과 중국 노래들. 그리고 한때 잠깐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면서 자주 들었던 인도네시아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즐겨 들었던 독일 노래들, 프랑스 노래들, 스페인 노래들, 인도 노래들 그리고 이란 노래들까지.

그날의 꿈 이야기는 바로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깨자마자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 할 상황이어서 기록할 틈이 없었다. 기억은 금방 사라졌고 디테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어딘가 기숙사 같은 곳에 머물고 있었고, 어떤 중요한 미션을 해내야 할 상황이었는데, 잘 될 것 같다가도 계속 실패했고, 실패하고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면 이어서 그 미션에 계속 도전하는 식으로 같은 꿈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 디테일이 기억나는 부분은 꿈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질 때에는 어떤 미션에 도전한다는 큰 줄기의 이야기 외에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꿈 속에서 나를 도와주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거나, 내가 비교적 젊은 나였다가 다시 나이든 나로 바뀐다던가. 그럼에도 그런 상황들마저 마치 자연스러운 듯 이어졌다. 꿈이었으니까. 꿈에서 깨었다가 다시 빠져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분명 이것이 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깨기가 싫었다. 나는 차라리 이 꿈 속 세계에 살기를 원했다. 뭔가 하나도 이치에 들어맞지도 않고 모든 것이 다 제멋대로인데도 그랬다.

기억나는 또 다른 건, 관계들이 다 제멋대로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꿈에서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미션에 함께 도전하는 중요한 동료는 사실 현실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한때 짝사랑했던 사람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 현실에서 정말 친한 동료로 만약 내가 꿈에서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진짜 열심히 도와줬을만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기도 했다. 또 아이들의 나이가 제멋대로 왔다갔다 했다. 귀여운 꼬맹이 시절의 큰 아이가 나타났다가 다음 순간 지금 성인이 된 큰 아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작은 아이는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했던 사춘기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았다.

꿈은 사실 그냥 꿈일 뿐이다. 해몽이나 이런 건 다 의미없다. 돼지꿈을 꾸었다고 복권을 사러가는 건 옛날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꾸만 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데자뷰 현상이라고 부르는 일을 자주 겪었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처음 온 곳인데, 꼭 예전에 와본 것 같은 기분이고, 갑자기 누군가 말을 하고, 누군가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이 장면 분명히 과거에 똑같이 겪었는데 하고 생각했다. 예지몽이 아닌 다음에야 완전히 똑같은 순간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렸던 나는 내가 예지몽과 같은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날, 꿈에 아무말없이 나타나 내 머리를 쓰다듬고 사라지셨다. 할머니께서 아프시다는 연락은 받았었지만, 나는 대학 시험기간이란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았었다.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 죄책감이 그 꿈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싶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 인간의 잠과 꿈에 대해 얼마나 밝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인생의 긴 시간을 잠을 자느라 보내야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뇌의 부하 때문에? 몸의 휴식 때문에? 꿈은 도대체 왜 꾸는 걸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 에서는 막 연극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무슨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그린 그림을 업로드 했던 것 같은데.


어떤 연락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던 누군가가 연락을 했다. 해외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던 것이 몇년 전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의 연락을 받고 이제 돌아온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용건을 남기지 않고 그저 잘 지내냐는 인사만 남겨두었다.

아주 잠깐 그를 좋아했던 시간이 있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에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은 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알고 지내는 동안 계속 일로 마주쳤고,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적었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자주 마주쳤기에 이래저래 그와 함께한 시간이 적지는 않았다. 계속 그냥 일 잘하는 멋진 사람 정도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가 마음에 들어왔던 건 그가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편하게 대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다가 툭툭 손으로 치기도 하고, 아주 살짝 애교 섞인 말투를 건네기도 하고, 무뚝뚝하게 감정 없는 말투가 대부분인 사람이 나와 있을 때 감정을 담은 평소 말투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었다. 그가 그렇게 조금은 편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인 것은 그저 나를 선배이자 동료 활동가로서 조금 더 친해졌다는 뜻일뿐. 별것도 아닌 애교에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가는 큰일이었다. 유난히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문득 편한 말투로 대해서 그 간극이 나를 뒤흔들었던 것이다. 암튼 나는 냉정하게 아주 짧은 시간 그에게 가졌던 감정을 마음에서 지웠다. 감정은 지웠지만,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은 남아있다. 갑작스런 그의 문자에 나는 잠시 옛 기억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차렸다.

그가 별 용건없이 괜히 나에게 연락했을 리는 없었다.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지도 않고, 어쩌면 만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내게 무언가를 물어왔는데, 왜 그가 내게 물어봤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나는 알아봐주겠다고 답하고 잘 지내라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교통사고 이후 회복이 잘 되었는지 물었다. 그래. 아주 먼 일 같았는데, 그리 먼 일은 아니었구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다시 업무 복귀했을 무렵 그가 공부하러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이제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쩌다 집회 현장이나 어딘가의 행사장에서 스쳐 지날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짧게 그를 향해 호감을 가졌던 것처럼 이번 일도 그렇게 스쳐 지날 것이다. 나중에 우연히 이 글을 읽으면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넘어갈 정도의 일이 되리라.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