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장거리 운전


주말에 제천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운전이었다. 빌린 차를 운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차라면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이 익숙할 것이고, 핸들링과 차의 크기에 대한 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을 거라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겠지만, 낯선 차는 그 모든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후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졸리면 내 차에 탄 일행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어서 미리 에너지 음료를 챙겨 먹고 차량을 받으러 갔다. 요즘 차들은 정말 새로운 기능들이 많았다. 그만큼 편하게 운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또 뭔가 많은 기능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행히 함께 가는 일행들이 성격도 좋고 친절하신 분들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조수석에 타신 남성 가끔 마주친 분으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한 분이라 그리고 남성이라 마음이 편했다. 옆자리에서 에어컨 조작과 음악 선곡 등 여러 일들을 도맡아 잘 해주셨다. 뒷자리 여성 한 분은 그날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아주 조용하신 분이셨다. 평생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맨 마지막에 합류한 다른 여성 한 분은 종종 만났던 사람인데,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어서 미리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도 친한 사람(평소 그 사람 기준이 나를 친하다고 여기는 듯한 느낌은 자주 받았었음)은 나 밖에 없어서 그렇겠지만, 운전하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걸거나 뭔가 요구하곤 했다. 다행히 나머지 두 분이 적절하게 말을 받아주고, 요구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꽤 오랜 시간 차가 없었으니 평소에 운전할 일이 거의 없고 아주 가끔 차를 빌려서 운전을 해도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은 드물다. 혼자 운전을 하면 살짝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을 태우면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운전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처럼 낯선 사람들을 모셔가야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래야겠지. 그 분들께 미리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고, 다른 사람의 차라서 익숙하지 않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수도권을 벗어나는 길은 그래도 아는 길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제천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움직이는 길들은 낯선 길이기도 하고, 도로 사정이 열악했고, 그리고 최악인 것은 정말 꼬부랑 꼬부랑 돌고 돌고 도는 길이 이어졌다.


내가 운전한 차에 낯선 분들이 주로 타셨다면, 다른 차량에는 나와 친한 지인들이 탔다. 그 차를 운전하는 친구는 나와 가장 많이 또 자주 여행을 다닌 사람으로 그 친구가 어떤 스타일로 운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 녀석은 다소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 녀석이라면 꼬부랑 꼬부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을 빠르게 갈텐데 라고 생각이 들었다. 안전이 가장 우선이긴 하지만, 그 차에 비해 우리 차가 너무 늦으면 그건 또 민폐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몇 군데 이동하면서 늘 우리 차가 먼저 출발했음에도 도착해보면 그 녀석이 먼저 와 있었다. 다만 운이 좋다고 느꼈던 것은 늘 그 녀석은 주차할 자리가 마땅히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나는 손쉽게 주차할 자리를 찾았다는 것. 그 녀석이 도착한 이후 그 몇 분 사이에 바로 앞에 주차할 자리가 생기는 일이 연속으로 계속 일어났다. 


주말 이틀동안 제천과 충주에서 꼬부랑 꼬부랑 길들을 워낙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운전 실력이 확 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함께 탄 일행들을 고려해 최대한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코너링을 하면서도, 함께 이동하는 다른 차량에 비해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속력도 신경써야 하는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일이다. 다른 일행이 없었다면 나도 그 녀석처럼 속력을 중시해 급가속과 급감속을 계속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링을 할 수 있다. 내가 혼자 탔다면 말이다. 아니면 그냥 천천히 느긋하게 간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나타나는 회전 구간들마다 속력을 충분히 줄여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탄 일행들이 불안해하거나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갈 수 있도록.


제일 힘든 일은 일요일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운전이었다. 나는 눈이 많이 나쁜 편이고 안경을 낀 교정 시력도 그렇게 좋지 않다. 일상 생활엔 지장이 없고, 낮 운전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야간 운전과 악천후 운전 등의 상황에는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오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금방 해가 저물어 버렸고, 어두워지자 급격하게 눈에 피로감이 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일정이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몸의 피로감도 너무 컸다. 내가 너무 지친 상태라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 외에는 운전할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든 서울까지 돌아와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전날 함께 갔던 일행 중 일부가 일요일 오전에 먼저 떠났기 때문에 우리 차에 여유가 있었고, 일행 중 나와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을 저쪽 차에서 우리 차로 데려와서 조수석에 앉도록 했다. 그 친구가 옆에서 계속 나를 신경 써주고 도와주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많이 하고, 꾸준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법. 운전은 좋아하지만, 많이 하거나 꾸준히 할 상황은 아니라 할 때마다 매번 뭔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그러니까 2019년에 오키나와에서 운전할 때에도 일본의 도로와 차량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라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그때는 9인승 차량을 운전해야 해서 평소 승용차만 몰아봤던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물론 여러 실수들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무사히 일행들을 모시고 다니긴 했다.


다리와 달리기


이번 워크숍 장소는 작년 봄에 한번 갔던 곳이었다. 근처에 청평호 유람선 승강장과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다. 이참에 청평호를 따라 달려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도를 살펴봤다. 아쉽게도 달리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수가를 따라 갈 수 있는 적절한 길은 없었다. 다만 작년 기억을 보면 그 마을이 조용한 편이어서 마을 길을 따라 뛰다가 공설운동장으로 표시되어 있는 공터를 지나 청풍대교 방향으로 뛰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청풍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5~6 킬로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중간에 그 공설운동장으로 표기된 공터를 좀 돌면 7킬로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컨디션이 좋아서 더 달리고 싶다면 대교를 건넜다가 바로 돌아오지 않고 한참을 더 가서 10킬로미터 정도까지 뛰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당일 달리면서 판단하기로 했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 언제 달리러 가는 것이 제일 좋을까 고민했다. 워크숍은 아마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할 것이고, 끝나면 뒤풀이를 바로 이어서 하겠지. 그럼 또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것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 오후 늦게 혹은 저녁 시간에 달리고 와야 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계획은 언제나 변경되기 마련이다. 주최측의 계획과 시간이 안 맞아서 일행들과 이후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4시쯤이었다. 1시간이면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달릴 준비를 하고 나섰다. 다른 일행들은 케이블카를 타거나 커피숍을 찾아 간다고 했다.


미리 지도를 보고 생각했던 경로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골목길들을 먼저 요리조리 달리다가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은 잡초들이 무성한 상태였다. 아스팔트를 뛰는 것보다는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좋았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다. 운동장을 두 바퀴 돌고 청풍대교를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르막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올랐는데, 뒤로 갈수고 각도가 높아졌고, 오르막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뒤쪽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오르막 뒤엔 내리막이 기다리는 법. 내리막 길을 달리기엔 또 무릎이 문제였다. 처음에 속도를 줄여 천천히 뛰어보다가 다시 걸었다. 언덕에 대비한 훈련은 나중에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오르막은 힘들어서 못 뛰고, 내리막은 무릎 걱정에 못 뛰고 하다보니 계속 걷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두 세번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마침내 청풍대교를 만났다. 아까 차로 건너왔었는데, 이번엔 뛰어서 건너니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차로 지날 때엔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세워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것, 더구나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으니 경치를 즐기기 보다는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 이번에는 뛰다가 언제든 멈춰서 사진도 찍고 풍경을 즐기다 다시 뛰면 된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전력질주에 가깝게 달리니 맞바람이 엄청나게 저항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강한 바람에 맞서 다리를 건너는 일, 눈을 돌리면 호수와 산과 나무와 하늘이 만들어 낸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곳을 달리는 일, 통행로를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자 올해 이렇게 큰 다리를 건넜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은 고흥이었다. 6월 초에 고흥에 갔을때 묵었던 숙소가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잇는 나로2대교 바로 근처였다. 밤에 한창 놀다가 먹거리가 부족해졌다. 나는 산책도 할 겸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사오겠다고 했다. 마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기도 했다. 내나로도에서 편의점을 찾아가는 것 보다는 외나로도로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나왔다. 물론 지도앱에서 알려주는 그 위치에 실제로 편의점이 있을지, 그 편의점이 한밤에도 영업을 하는지는 가보기 전에 알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간다고 하니 이미 잠든 사람을 제외하고 다들 따라 나섰다. 일행들과 함께 대교에 딱 들어서는 순간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먼저 뛰어서 건너편에 가 있을게 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밤바다 그리고 그 다리 위를 달리는 나. 대교라고 하기엔 다리 길이가 짧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건너편을 찍고 다시 뛰어서 돌아왔다. 그때까지 일행들은 채 1/3도 건너오지 않았다. 중간 조금 건너까지 뛰었다가 일행을 만나 함께 걸었다. 일행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편의점까지 뛰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가서 편의점이 위치한 마을까지 도로는 좀 위험했다. 인도가 없었다. 차도도 갓길이 제대로 없어서 밤에 쌩쌩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행인을 못 보고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우리는 맨 뒷 사람이 휴대폰 손전등을 키고 걸었다. 처음 가장 가까운 위치로 추정한 곳에는 편의점이 없었으나 거기서 다시 조금 더 가서 두번째 편의점은 그 자리에 있었고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몇 가지 음식을 사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때에도 나는 다리를 또 뒤어서 건넜다.


두번째는 지난 글에 썼던 월드컵대교였다. 9월 30일 밤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왔을 때쯤에 자정을 넘겨 10월 1일이 되어 있었다. 지난 글에 자세히 썼지만, 원래 가려던 것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가다 보니 한강을 건너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사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당황하거나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밤 중에 아무도 없는(물론 차들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다리를 건너는 일이 정말 좋았다. 한강을 건너는 거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속도를 높여 거의 전력질주에 가깝게 뛰면서 그렇게 긴 거리를 뛴 것도 처음이었다. 한강 한가운데를 지나며 볼 수 있는 야경을 즐기며, 내 몸을 떠밀어 낼 것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렇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실수로 잘못 들어간 이 길을 다음에도 야간 달리기를 하면 종종 즐기게 될 것 같다.


이번에 건넌 청풍대교까지 다리의 길이로 치면 월드컵대교가 가장 길고, 그 다음이 청풍대교, 마지막이 나로2대교가 되겠다. 앞으로 다리를 찾아 다니며 다리 길이를 찾아보고 기록해두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한강 다리도 도전해보고, 어딘가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그 동네의 다리를 찾아봐도 재미있겠다.


암튼 청풍대교를 건너와서 언덕 몇 군데를 다시 지났다. 아까 올 때 길었던 오르막이 이번에는 긴 내리막이 되었다. 페이스가 신경쓰여서 조금 뛰다가 꾸준히 달리기를 하려면 관절을 아껴야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고 동네 골목들을 돌았는데, 6킬로미터를 지나서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7킬로를 찍고 싶었으나 마을 가운데에 있는 화장실을 보자마자 갑자기 강한 요의를 느껴 달리기를 중단했다. 약 6.7킬로. 화장실을 안 만났으면 7을 찍었을텐데, 아쉬웠지만 뭐 청풍대교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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