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골목과 아기

골목을 걷고 있는데, 앞에 아기와 아기의 엄마가 나타났다. 아기는 이제 막 걸음마를 익히는 중이었다. 엄마가 몇 발짝 앞에서 아기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고, 아기는 한두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나에게 눈길을 잠시 보냈는데, 아기가 엄마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기가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기는 왜 나를 보고 그렇게 활짝 웃었을까? 내가 아기에게 거의 다가갔을 때, 아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기는 내게 가까이 오기 위해 한두발 걸었다. 너무 예뻐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아기 엄마가 싫어할까봐 참았다.

그 아기 덕분에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일단 우리 애기들. 이젠 성인이 되어 자취방을 얻어서 나간 우리 큰 딸 아기때 모습이 생각났고, 사춘기라 부쩍 말을 안 듣는 작은 아이도 아기때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쌀 배달을 갔다가 만났던 아기도 떠올랐다.

어느날 유난히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활을 가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만 따라다녔고, 선배 활동가들의 아이들도 나하고만 다니곤 했다. 그리고 큰 아파트 단지에 있는 정육점 겸 쌀가게에서 일하던 시절에 쌀 배달을 다녔는데, 배달가는 집에 아이들이 있으면 엄마들이 돈을 찾아 여기저기 서랍 등을 뒤지는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곤 했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그날따라 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점검이었는지 고장이었는지 그래서 멈춰있었다. 쌀 20킬로짜리 포대를 어깨에 메고 배달을 간 집은 아마도 9층이나 10층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안 되는 날 쌀 배달이라니! 배달시킨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40%, 이런 기회에 제대로 운동하겠네 하는 마음이 60%인 상태로 계단을 올랐다. 처음 4층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5층부터 힘들었다. 7층 정도 갔을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더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쌀 포대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정말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옷이 다 젖었다. 잠시 쉰 후에 다시 쌀 포대를 메고 발을 떼는데, 발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한층 올라갈 때마다 한번씩 쉬었다. 결국 배달시킨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는 정말 완전히 지쳐서 죽을 것 같은 상태였다.

문을 연 사람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는 내 몰골을 보고 엄청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먼저 시원한 물 한잔을 부탁했다. 그는 서둘러 차가운 물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쌀값을 내기 위해 돈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먼저 가방을 찾아 지갑을 꺼내더니, 지갑에 충분한 돈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당황한 그는 여기저기 서랍이랑 장식장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잠시만요. 라고 계속 말하며. 그때 어디선가 아기가 기어나왔다. 아기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나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돈을 찾기 위해 정신이 없어서 아기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기는 현관에 서있는 나를 향해 열심히 기어오더니, 내 발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양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몸짓이었다. 음, 생전 처음보는 아저씨를 보고 안아달라고 하다니. 남의 아기를 함부로 안아도 되나? 게다가 나는 완전히 땀에 젖은 상태라 아기에게 절대로 좋지 않을텐데. 나는 머리만 쓰다듬어 주고 양 손을 잡아주기만 하고 차마 안아주지는 못했다. 아기는 뭔가 옹알이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계속 뭔가 요구하는 듯 했는데, 계속 안아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얼른 엄마가 돈을 찾아와야 할텐데. 나는 혹시 아기가 울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돈을 기다렸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겨우 몇 분 정도였을텐데,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느꼈다. 그 와중에 아기는 결국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어쩔수 없이 나는 아기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안아 올렸다. 내 땀이 아기에게 묻으면 안 되니까 몸에 붙어지 않고 최대한 팔을 펴서 멀리서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어디선가 돈을 찾아서 들고 왔다. 아휴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기가 갑자기 안아달라고 해서요. 엄마는 내 손에서 아기를 받아서 자신의 몸에 착 붙이고 돈을 건넸다.

그 짧은 순간 만난 그 아기는 그후로 계속 잊혀지지 않고 가끔 생각나곤 한다. 누구하나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방긋방긋 웃어준 아기라니! 지금은 그 아기도 삼십대일텐데. 참 세월이 빠르구나.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겠지만, 부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자전거와 수영

요즘은 달리기를 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리기에 빠져있다. 지난 9월 초 처음으로 대회에 참여한 이후로 올해 안에 한번 더 대회에 참여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10월과 11월에 예정된 달리기 대회를 열심히 찾아봤다. 타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는 교통편과 숙박 등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서울과 경기도 정도를 찾아봤는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큰 대회와 유명한 대회들은 이미 다 마감이 되어서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러다 11월 말에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열리는 대회를 찾았다. 혹시라도 마감이 되면 안 되니, 얼른 신청부터 했다. 이번에도 10킬로미터 코스로. 10킬로 코스는 광화문에서 출발해 경복궁을 한바퀴 돌고 숭례문을 거쳐 을지로 방향으로 갔다가 종각으로 가서 마무리하는 길이었다. 이 서울 시내를 달리기로 뛰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운이 좋다고 여겼다. 이제 다음 대회 신청을 해놓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잘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매일 달리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달리는 중에는 힘들다. 숨이 너무 차고, 자꾸만 걷고 싶고, 멈춰 서고 싶어진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더 멀리가면서 숨이 덜 차고, 걷고 싶다는 생각이 덜 들게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나를 저 첫번째 대회에 신청하도록 꼬드겼던 형을 만나 같이 달렸다. 좀 가볍게 6킬로만 달렸다. 지난 대회에 참여하기 직전에도 그 형과 5킬로를 달렸는데, 그때의 나는 4.5 지점에서 너무 숨이 차서 더 달리지 못하고 걷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한 3주 정도 지난 이번에는 6킬로까지 한번도 안 걷고 끝까지 뛰었다. 확실히 계속 달리다보니 폐활량도 좋아지고, 요,령도 계속 생기고 뭔가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달리기를 마치고 그 형과 식사를 하면서 좀 더 얘기를 나눴다. 몇 가지 사소한 부분들에 대한 조언을 해 준 후에 그는 내게 자전거를 얼른 배우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주로 불광천 천변 산책로를 뛰고 있는데, 불광천보다 한강을 뛰면 훨씬 더 좋다고 했다. 그러니 얼른 자전거를 배워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가고, 한강을 한 10에서 15킬로 정도 달리기를 한 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고 했다. 불광천 산책로가 시작하는 곳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5킬로 정도를 가면 한강까지 가긴 한다. 문제는 더 멀리 달리면 돌아오는 길이 더 멀어진다는 것. 보통 10킬로를 뛸 때는 딱 한강을 보기만 하고 돌아오게 된다. 조금 더 뛰었다가 돌아오면 11킬로가 된다. 암튼 그래서 그 형은 한강의 다리를 만나는 순서를 막 읊어주면서 빨리 같이 한강을 달려보자고 재촉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나도 얼른 배우고 싶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까 거의 1년 전인 작년 10월 초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봤다. 첫 시도에 바로 타기는 했는데, 비틀비틀, 뒤뚱뒤뚱 대며 움직였다. 어찌어찌 앞으로 가는 것은 가지던데, 문제는 방향을 돌리려고 할 때마다 자꾸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앞에 사람이 나타나거나 차가 나타나면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어찌할 줄을 모르게 되어버렸고, 그러다 넘어지기도 했었다. 그 후로 몇 차례 더 연습을 하긴 했다. 자전거를 가르쳐 준 친구가 따릉이 1년 정기권을 선물해줬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나면 가까운 따릉이를 빌려 잠시 타곤 했다. 얼른 익숙해져야지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흥미를 잃었고, 이후로 그 정기권이 끝날 때까지 거의 자전거를 못 탔다.

그 형의 배우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 본 무쇠소녀단에서 자전거를 못 타는 유이라는 배우가 자전거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은 자극을 받아 다시 자전거를 익히고 있다. 어제는 한강 공원에서 따릉이를 한시간 반 정도 탔다. 사람들이 나타나거나 다른 자전거들이 나타날 때마다 잔뜩 긴장을 하곤 해서 겨우 한시간 반 밖에 안 탔는데,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나는 균형을 잘 못 잡는구나.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왜 이렇게 불안할까. 자전거라는 것을 배우는 일이 쉬울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앗지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요즘 내게 자전거를 같이 타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라이딩 이라고 부르던데. 음, 과연 나는 얼마나 더 연습해야 그 라이딩 이라는 것을 한번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형이 또 나중에 내게 수영을 배우라고 권했다. 사람들은 내가 부산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영을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있어서 수영을 못 배웠다고 답한다. 자전거는 타 볼 기회 자체가 없어서 배우지 못 했지만, 수영은 아예 물이 무서워서 시도 자쳬를 할 수가 없다. 그런 내게 수영을 배우라고 권하다니! 이번에도 무쇠소녀단에서 나 처럼 물을 무서워했던 진서연이라는 배우가 수영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부러웠다. 저 사람은 어떻게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겠지만, 성공했구나. 나는 아마도 시도조차 못 할것 같은데.

그런데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형이 왜 자꾸 내게 자전거를 배워라. 수영을 배워라. 하나 싶었더니, 무쇠소녀단이 딱 떠올랐다. 이 사람! 나한테 철인3종경기에 나가게 하려는 속셈이었구나. 처음엔 달리기만 꼬드기더니, 이번엔 철인3종경기까지!!

글쎄, 자전거는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탈 때까지 익힐 생각이지만, 수영은 정말 자신이 없다. 내가 이 나이에 왜 수영까지 배워야 하나?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혹시 사고가 나면 내가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해봣으나, 여전히 물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하지 못해 포기했었다. 이젠 아이들이 다 자라기도 했고, 아마 학교에서 수영을 배웠기 때문에 둘 다 수영을 할 줄은 알 것이다.

어쩌면 자전거를 익숙하게 탈 수 있게 된 후에, 계속 수영을 배우라고 압박을 받는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달리기와 자전거 두 가지 만으로도 벅차다. 아, 이제 달리기 하러 갈 시간이다. 오늘은 이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