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불통 그리고 저항


서울혁신파크는 은평구 녹번동에 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지 몰라도 이름 참 못 짓는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에 파크라는 친숙한 영어단어를 붙였다. 그래서 여기가 뭐하는 곳인데? 이런 작명이야말로 최악의 예시로서 적절하다. 이 넓은 땅은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곳이다. 국립보건원이라고 불렀던 적도 있었다. 이곳은 내겐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처음 환경단체 신입 활동가로 일할 당시에 국내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젤라틴은 미국에서 공업용으로 수입한 소가죽이 원료라는 제보를 받았다.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입된 소가죽을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신발 공장이나 가방 공장에서 재단하고 버린 쓰레기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선배 활동가들이 제보자와 함께 젤라틴 공장으로 들어가는 원료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제보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소비자들, 특히 젤라틴이 주로 들어간 과자나 젤리 등을 좋아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이 무척 화를 냈다. 젤라틴이 들어간 제품 중에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것은 아마도 쵸코파이일 것이다. 지금껏 우리 아이가 얼마나 많은 쵸코파이를 먹었는데, 그 재료가 온갖 화학약품으로 처리(미국에서 한국으로 해양 운송하는 수 개월동안 썩지 말라고)해서 긴 시간 항해를 통해 건너온 공업용 소가죽이었다는 것을, 그것도 신발 공장과 가방 공장으로 먼저 가서 각자 필요한 만큼 가위로 재단한 후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가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 누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오래 전에 이 건으로 식약청, 국립보건원 등과 싸웠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엄청나게 놀라며 어떻게 그런 일이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느냐고 묻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결국 그 싸움은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잊혀졌고, 지금도 여전히 국내에서 생산하는 젤라틴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고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젤라틴이 들어갔을거라고 추정되는 과자나 젤리 등을 먹지 못하게 했다. 해외에서는 식품으로 소비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재료로 젤라틴을 만든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래서 젤리는 무조건 해외 제품을 사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뼈를 긴시간 우려내서 먹는다. 그래서 소뼈도 비싸다. 해외에서는 젤라틴을 만들 때 주로 소뼈를 이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소뼈를 이용하면 수지가 안 맞으니 소가죽을 끓여서 만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엔 신발공장과 가죽공장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공짜로 가져다 만들었기 때문에 원료비가 들지 않았다. 젤라틴 공장이 신발공장과 가방공장에서 적은 금액일지라도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산 일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제보자에게 듣기도 했다.


자, 여기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질문이 있다. 당신이 저 사실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차피 오래 전에 환경단체에서 싸웠는데 아무것도 바꾸지 못 했다며? 그럼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가만히 있을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식품의 재료가 공업용으로 수입된 원료라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이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내볼 것인가? 적어도 쓰레기로 버려졌던 자투리 소가죽으로 우리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를 만들지는 말자고 얘기하는 것은 과연 잘못일까?


엊그제는 서울시장이 서울혁신파크 부지의 대부분을 민간 기업에 팔아먹겠다고 설명회를 열었다. 앞서 내가 최악의 작명이라고 했던 그 서울혁신파크는 그간 참 말이 많은 곳이었다. 소위 사회혁신의 실험실이라고, 공적서비스와 사회적경제를 키우는 요람이라고 했던 공간이었는데, 정작 시민들에게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그래서 우리 사회가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지 와닿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일단 그래서 정말 그 공간이 소위 말하는 혁신적 실험을 제대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 제대로 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과연 그랬을가 하는 의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과거 서울시는(즉 불명예스러운 성폭력 사건으로 자살한 과거의 서울시장은) 혁신파크라고 이름붙인 이 곳에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 50플러스 지원센터 등 다양한 공적 서비스를 중계하는 조직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흔히 중간지원조직이라 불렀던, 이 역시도 그냥 들어서는 잘 감이 오지 않는 모호한 이름의 이 조직들은 공무원들이 조직적인 한계로 잘 하지 못하는 일들, 시민들은 사람과 자원을 모으지 못해서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시민들을 혹은 공동체를 돕는 일을 하는 곳들이었다. 이 여러 중간지원조직들이 혁신파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울시민들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사실이다.


서울혁신파크의 또 하나의 의의는 공원으로서의 기능이다. 이름 끝에 파크라는 영어단어가 괜히 붙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엔 100여그루의 오래된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게 볼 수 있는 이 공간들을 산책로 삼아 걷고, 반려동물들을 산책 시키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 달리기 열풍이 불었던 최근에는 산책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 역시 동네 언니들과 여기서 달리기 모임을 이어오기도 했었다. 시민들은 저 건물들 안에서 무슨 혁신이 일어나는지, 무슨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무슨 사회적경제가 성장하는지는 잘 몰라도 일단 이 공간 자체를 공원으로 향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서울시 업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현재의 서울시는(즉 급식 공약에 무리하게 직위를 걸어 쫓겨났다가 나중에 공석이 된 서울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현재 서울시장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반감과 넓은 땅에 대한 개발 심리를 부추겨 이 곳을 폐쇄하고 재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60층짜리 초호화 빌딩을 짓겠다는 황당한 조감도를 들이밀었다. 여기에 입주했던 다양한 중간지원조직들, 사회적경제 기업들 모두 쫓겨났다. 시민들이 긴시간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해 온 아름다운 공간들도 모두 폐쇄되었다. 한평책방은 말 그대로 작은 공간에서 책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를 작은 규모로 시민들이 직접 열고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했던 멋진 곳이었다. 양천리 갤러리는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배운 솜씨로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객인 시민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땀흘려 농사를 체험했던 텃밭도 없어졌고, 여기저기 소소하게 존재했던 여러 의미있는 공간들이 차례로 사라졌다.


서울시는 입주기관 및 기업들을 모두 쫓아내더니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내세워 민간자본을 유치해 개발하겠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막상 거대한 개발 구상을 실현할 자본을 유치하기가 어려워지니 구체적인 개발 계획도 없이 먼저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시민들이 매일 이용해온 공원은 이제 철거공사를 위한 울타리가 쳐진 흉물스럽고 위험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변했다. 많은 시민들은 이 공원을 그대로 공공의 공간으로 두라고 요구했다. 수백억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유치해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 물론 일부 시민들은 이 공간이 개발되면 땅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심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은 절대 서울시의 황당한 조감도 한 장처럼 개발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대규모 개발 후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수많은 선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촌민자역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세빛둥둥섬,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 그냥 떠올려봐도 몇 가지 예가 나온다. 게다가 은평구에는 이미 방치된 대규모 상업시설이 있다. 그것도 혁신파크 바로 근처에 있다. 현재 NC백화점으로 불리는 건물은 한때 무슨 아울렛이었다가 팜스퀘어로 바뀌었다가 다시 백화점이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정도 규모의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이유다. 팜스퀘어 시절에도 건물 중간 층들 일부는 거의 대다수 매장이 폐업 상태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금은? 최근에 올라가 본적은 없지만, 몇 해 전에도 중간 층 대다수 매장이 비어있었다. 여기에 60층 상업 빌딩을 짓겠다고? 어느 기업이 그걸 투자해서 얼마나 수익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래서 현재의 서울시는 아마도 민자유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땅을 민간기업에 팔아먹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그 설명회가 열렸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땅이 서울시의 소유라고, 서울시장이 원한다고 마음대로 팔아먹을 수 있을까? 서울시장은 겨우 임기는 겨우 4년이고, 지금 이 땅을 매각해도 이 땅의 실제 개발은 4년보다 훨씬 후에 이뤄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 시민들은 시장에게 이 땅을 팔아먹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공의 영역에 속한 땅을 누구 허락을 받고 마음대로 기업에 팔아버리겠다는 건가? 


엊그제 해당 설명회에 참석한 일부 시민들이 이 설명회가 왜 문제가 있는지를 주장하다가 억지로 끌려나왔다. 해당 장면이 사진과 영상으로 퍼지며 또 다시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익숙한 장면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개발 사업의 설명회를 열면 생업으로 바쁜 많은 시민들은 관심도 없고, 그런 설명회의 개최 여부 자체를 잘 알 수 없다. 그럼 누가 참여하는가?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개발 계획이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즉 땅값을 올리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일부 사람들과 해당 개발 계획이 수십년 동안 일군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박살내버려 삶 자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절박한 시민들이다. 이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개발 계획의 수립 과정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지만, 권력은 결국 이들을 설명회장에서 폭력적으로 끌어낸다. 왜 21세기 법치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어제 보니 혁신파크의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다. 혁신파크의 민간 매각을 반대하고 무계획한 개발과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농성장을 꾸렸다. 매일 당번을 정해 농성장을 통해 시민들에게 이 내용을 알리고 서울시에 항의하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몇 차례 농상장 야간 지킴이로 참여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길 위에 펼친 작은 천막에서 보내는 것인데, 교통 소음과 여러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들과 전혀 소통할 마음이 없는 서울시의 태도, 이미 철거가 들어간 시점에서의 농성의 의미, 민간 매각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기업들, 위험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변했음에도 여전히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달리기를 하러 이용하는 시민들. 농성장에서 맞은 오늘 아침에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어제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11차 기본계획은 정말 문제가 심각한데, 오늘은 거기까지 쓸 여력이 없으니, 이 건은 다음에 풀어보겠다. 문제는 어제 이 공청회에 참여했던 18명의 활동가를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는 점이다. 이 활동가들은 시민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정부 정책을 논의하는 공청회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지난 9월 7일 열렸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약 3만명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경찰은 18명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3만명의 시민을 체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 체포된 활동가들의 SNS를 보니 너무 참담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떤 분들은 앞으로 수갑이 채워져 연행을 당하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은 뒤로 팔을 꺾어 수갑을 채워서 심각한 고통과 인격 모독이 이뤄졌다. 연행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고지가 제각각 이뤄졌겠지만, 누군가는 정작 가장 중요한 연행의 죄목을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체포되는 당사자가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고지는 무슨 의미가 있나. 이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도 아닌데 경찰은 폭력을 휘두르며 사지를 들고 끌거 나갔다. 퇴거불응죄. 연행 이후 조사 과정에서 들은 죄목이라고 한다. 애초에 국민들 의견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정책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퇴거하라는 명령에 불응했다고 연행을 한다. 왜 정부 관료라는 인간들은 수개월간 수천명이 요구한 것들을 무시하고, 말을 안 들어 쳐먹어도 괜찮고, 국민들은 경찰이 한 마디 했다고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내려와야 하나? 


해야할 일들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 이런 몰상식한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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