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 13,500원 (10%750)
  • 2022-09-02
  • : 84,022


이 책을 구매한 건 우연히 본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친한 선후배 활동가들과 여름에 어느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 하기도 하고,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것 외엔 별로 할 일도 없다 느껴서 나는 물가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물놀이를 즐겼고, 일부는 조금 놀다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창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한 사람이 내 옆에서 책을 읽던 다른 동료 활동가가 잠시 놓아둔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순간 물놀이도 잊고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엔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많이 재미있고, 많이 팔린다는 정도만 알았다. 이 소설의 지은이가 [빨치산의 딸]을 쓴 그 정지아라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평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라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야 그때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 조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건 그 선배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가 담담하게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들 덕분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여름 시점에서 비교적 최근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라는 점이 하나의 몰입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일단 그는 운동권이었고, 활동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좌익과 진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 당사자로서의 공감도 컸을 것이다. 또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의 동질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당시 그는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도 꺼냈었다. 딸인 자신이 아픈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다보니 자연히 아버지의 성기를 보았던 것이고,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그곳을 본 것이 참 묘한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의 성기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과 아버지가 성별이 다르다고 느낀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극적인 기억이 남아있을지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리 딸들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 같은 여성이지만, 아빠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는 어떤 순간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빨치산의 딸] 1권과 2권을 다 읽었다. 이것도 참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에어컨 없이 선풍기 두 대만으로 열대야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지인들의 집으로 피서를 다녔다. 그 중 한 친구 집에 며칠 연속 머물 때였다. 주말 낮에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서려는데, 자기 집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라고 했다. 음, 뭐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눈으로 책장을 훑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책 읽었어요? 물으며 꺼낸 것이 [빨치산의 딸] 1권이었다. 당연히 그 옆엔 2권도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못했었고 그의 권유대로 그 책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삼일만에 2권까지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부모님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을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 느꼈고, 제목엔 딸이 들어가지만,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각각의 삶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각각 다른 조직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된 부분에서 끝난다. 이 궁금증은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야 풀린다. [빨치산의 딸]을 읽을 때 전투와 생존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강인한 의지와 열망 등을 읽으며 흥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버지 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몇몇 여성 동지들 중 누가 어머니인가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편을 읽으면서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접점이 거의 없어서 의아했었다.


앞서 [빨치산의 딸]이 소설이 아닌 역사책에 가까운 것이라고 썼다. 그에 비해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로서 훨씬 더 짜임새를 잘 갖춘 훌륭한 작품이라 느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겪는 이야기들 속에 아버지 평생의 인간관계와 신념과 소탈한 모습 등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점점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과거 회상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이 소설은 그것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딸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의 힘이 크다고 느낀다. 말맛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 잘 살릴 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정말 잘 살리는 작가가 이시백 선생이라면,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정지아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잘 알지 못해서 멋진 대사들을 감칠맛 나게 읽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 고향을 구례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한 점은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빨치산의 딸]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그려지는 어머니의 어떤 냉철하고 강인한 이미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정지아 작가가 어머니를 주로 그리는 이야기를 꼭 쓰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까지 주욱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는 참 부모님들께 잘 못하고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져야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현실은 또 언제나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주 연락이라도 드려야지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아빠로서 우리 딸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하는 점에서 또 많은 좌절과 후회를 하게 된다. 


나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내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활동가라는 삶을 살아온 이유로 아버지를 들고 있다. 아버지는 노동조합 조합장으로서 노동운동을 하셨고, 독재에 저항해 싸운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하셨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과거의 아버지는 그랬다. 나는 그 과거의 아버지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내 비록 평생 노력해도 그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운동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한때 같이 일했던 후배 활동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성골은 양친이 모두 왕족이어야 하니, 진골 빨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실테고,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게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속만 썩이며 살았는데,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지.


이 책은 조만간 큰 아이 책상 위에 말없이 두고 올 생각이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펼쳐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면 엄청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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