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어떤 새벽

친구집 이층 침대에서 눈을 뜬 건 새벽 3시쯤이었다. 11시쯤 잠들었으니 딱 4시간 정도 잤다. 화장실을 다녀와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이층 침대에 올라 눈을 감고 누웠다. 1시간만 더 자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녀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뒤척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를 훌쩍 넘어있었다. 4시 40분쯤 짐을 챙겨 나와 우리집으로 걸었다.

무릎도 아프고 발목도 아팠다. 달리기 대회에 출전해야하는 당일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얼른 집에 가서 짐을 챙겨 6시에 전철역 근처에서 마라톤 대회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에 접어들기 직전에 어떤 덩치 큰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었다. 내 바로 근처에 한 아주머니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그 아주머니에게 약간 거리를 두고 인사를 했다. 이모님 어디 가세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인사를 받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저씨는 나를 스쳐지나 가 버렸고, 아주머니는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건가? 이 새벽에 사람도 거의 없는 골목에서 참 기묘한 상황이라 여겼다. 아, 난 얼른 집에 가서 짐을 챙겨야지. 서둘러 등산하듯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지각

집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속을 비우고, 면도를 꼼꼼하게 했다. 그리고 짐을 챙겼다. 서두른다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아차! 싶어서 얼른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관절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뛰어 내려가며 시간 계산을 해봤다. 딱 6시 정각에 도착할 것 같았다. 5분 전에 도착하도록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 안 뛰고 걸어도 되도록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다 문득 버스 위치를 확인 안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문자를 보긴 했었는데, 몇 번 출구였더라? 뛰어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뛰어가면서 조금 속도를 늦춰 가방에서 폰을 꺼냈다. 이 대회에 같아 참가하자고 나를 꼬신 친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같은 2호차에 배정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버스에 타 있다고 했다. 전철역 출구 위치를 물었는데 애매하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시간이 없었다. 불광천 쪽이죠? 급하게 내가 묻자, 어. 하고 답이 돌아왔다. 저 한 삼사분 걸려요. 서둘러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딱 56분이었다. 전철역 사거리 횡단보도 신호만 잘 받으면 6시 정각에 떨어질 수 있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막판에 거의 전력질주를 해서 횡단보도 앞에 닿았을 때 정각 6시였다. 신호등은 빨간불이었다. 설마 정각에 출발하지는 않겠지? 다시 그 형에게 전화를 걸어, 대기하고 있는 버스 두 대 중에 2호차가 뒤에 있는 버스냐고 물었다. 상식적으로 보통 그럴 것이고 버스 앞에 적혀있긴 할텐데, 마음이 급했다. 이럴 때 신호는 왜 이렇게 안 바뀌는지. 앞차는 빨간 버스였고, 뒷차는 하얀 버스였는데, 그 형은 이번엔 본인이 탄 버스 색깔을 몰랐다. 빨간 버스라고 하면서 뒷차라고 했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마침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뛰기 시작했다. 역시 앞차가 1호차였다. 뒷차에 도착해 버스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턱에 차있었다. 6시 1분에서 막 2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맨 앞자리에 타있는 아는 얼굴이 나를 보더니, 숨 셔. 숨. 이라고 말했다. 아, 이 분도 가시는 구나.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 나에게 배정된 맨 뒷좌석으로 가는데 아까 통화했던 그 형이 내게 말했다. 워! 워! 릴랙스. 릴랙스. 양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같이 하며 진정하라는 말이었다. 나도 진정하고 싶었지만, 진정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걸어서 25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약 8분 아니 9분만에 달려왔고, 막판엔 전력질주를 했다. 버스 맨 뒷자리 4칸 중에 우측 두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내 자리는 좌에서 두 번째 자리. 좌석 배정표에 적힌 이름으로 봐서 맨 좌측 자리는 여성인 듯 했는데, 비어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에어컨 바람 송출구를 내 몸 쪽으로 조정했다. 한참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6시 7분이 되자 기사님께서 출발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빈자리가 좀 있었다. 내 왼쪽 자리도 아직 사람이 안 왔다. 기사님께서 간단한 안내말씀을 해주시고는 운적석에 앉으셨다. 잠시후 1호차가 먼저 출발하고 우리 2호차가 뒤를 따랐다. 나는 조금 더 호흡을 고르다가 맨 왼쪽 빈 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 오른쪽 두 분은 부부인지, 지인인지 암튼 작은 목소리로 계속 대화를 나누셨다.

버스가 출발하고 한동안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고 땀을 닦다가 조금 안정이 될 무렵 버스는 내부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 건물들 사이로 빨갛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평소 워낙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 이렇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는 아침에 술에 잔뜩 취해 해운대 백사장에서 아침해를 본 기억은 아마도 20년 아니 25년 이상 된 것이었다. 친구 집을 나섰을 때에는 분명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결국 지각을 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양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 통증이 있었음에도 이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온 것, 전력질주까지 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반성한 다음 달리기 위밍업을 충분히 잘 한 것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어쩌면 이 최악의 컨디션에도 10킬로미터를 목표대로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붉게 타오르는 해를 보니 그런 희망이 생겼다.

대회 준비

철원DMZ국제평화 마라톤 대회 10킬로미터 코스를 신청한 것은 6월 말이었다. 그때까지 10킬로를 뛰어본 적도 없었지만, 아직 2달 넘게 남았으니, 연습하고 준비하면 되리라 여겼다. 그러고 약 한 달 동안 쉬엄쉬엄 달렸다. 적으면 2킬로, 많으면 5킬로. 평소에 내가 해왔던 대로 했다. 그러다 7월 말이 가까워지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준비해서는 안 되겠구나. 일단 거리를 늘려서 10킬로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까지 평생 뛰어본 가장 긴 거리는 아마 6킬로 정도였다. 그날 7킬로를 뛰었는데, 중간에 걷기도 하고 좀 쉬기도 했다. 평소 5킬로를 뛰는 날에도 중간에 걷거나 쉬곤 했었다. 이삼일 지나서 8킬로를 뛰었다. 걷는 시간은 좀 줄였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을 줄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8월 초부터 매일 9킬로를 달렸다. 반환점인 4.5킬로 지점에서 좀 오래 쉬었다. 그때 당시 생각에는 남은 한 달 동안 이 추세대로 운동을 하면 무난히 10킬로를 1시간 안에 들어오리라 예상했다. 8월 말까지 거리를 10킬로로 늘리고,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뛰어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관절 통증

이쯤에서 오래된 내 관절 통증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마 7년 혹은 8년쯤 되었겠다. 어느날 갑자기 손가락 관절이 뻗뻗하게 굳으며 통증이 느껴지고,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느날엔 한 손가락만 그러더니 어느 날엔 다른 손의 다른 손가락도 그랬다. 갑자기 그렇게 아프더니 또 며칠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았다. 한동안은 손가락만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손목, 무릎, 발목으로 통증 관절이 늘어났다. 특히 무릎이 심했는데, 나는 군대에 있던 시절부터 양쪽 무릎 모두 부상으로 긴 시간 고생을 했었기에 이런 통증도 더 심하게 느껴졌다. 통증이 심한 날엔 관절이 붓고 잘 굽혀지지가 않았다. 발목도 심하게 아픈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언제 왜 아픈 건지 알수가 없었다. 분명 며칠 아프다가 괜찮아지기는 하는데, 그 아픈 동안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정형외과를 갔었다. 의사는 내 증상이 류마티스 관절염인 것 같다고 했다. 통증을 잘 관찰하면서 증상을 많이 찾아봤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비급여 항목인 류마티스 인자 검사를 받았다. 10일쯤 지나서 결과가 나왔는데, 나는 류마티스 인자가 없다고 했다. 즉, 류마티스 관절염은 아니라는 것. 여기서부터 참 힘들고 답답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다른 병원들을 찾아다녔는데, 의사들마다 진단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진단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증상이 너무나도 달랐다. 며칠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끊질기게 질문을 했는데, 그 의사를 결국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통풍이라고도 했다. 이건 더 맞지 않는 것이 통풍은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고 할 정도로 해당 부위 피부에도 통증이 심하다고 하는데, 나는 관절 부근 연골이나 인대 쪽에 통증이 있고, 피부 통증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통풍은 엄지 발가락에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발가락 통증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고, 주위 사람들 권유로 한의원도 여러 곳에 다녀봤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침을 맞아도 어느 것도 소용이 없었다. 병명도 모르고, 근본적인 치료도 못 하고 시간이 계속 흘렀고, 나는 계속 답답하고 우울했다. 언제 또 통증이 나타나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지 몰라서 불안했다. 분명 증상만 보면 류마티스 관절염인데, 아니라고 하니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7년 이상 시간이 흘렀고, 한동안 통증이 없어서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8월 중순에 발목이 심하게 아파 발을 디딜수가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집안에서도 걷지 못해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일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당시 열대야 때문에 너무 더워서 친구 집으로 피난 가있었는데, 내가 꼼짝도 못하고 앉아만 있어야 해서 너무 곤란하고 힘들었다. 그 발목 통증이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고 계속 꼼짝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나자 절망감을 느꼈다. 당장 화장실 오가는 것부터, 뭔가 먹으려고 주방을 드나드는 일도 힘들었다. 게다가 겨우 페이스를 잡아가던 달리기 훈련이 중단되어 속이 상했다. 아무리 더워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겨우 관절 통증 때문에 못 달리는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다.

8월 말에는 10킬로를 뛰어보고 조금이라도 걷거나 쉬는 시간을 줄여 대회 전에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9월이 되어버렸다.

정확한 병명과 마지막 훈련

발목 통증이 낫지 않고 계속 시간만 지나가고 나는 달리기를 못 해 초조해하고 있을 무렵, 내 증상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 할 일이 자꾸 생겼다. 매번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자꾸 아프냐고?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 했고(하긴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매번 다시 묻곤 했다. 암튼 한 선배와 대화하는 중에 갑자기 그 선배가 이거 들어본 적 있다고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인줄 알았는데, 검사해보니 류마티스 인자가 없는 것. 이게 류마티스 관절염이랑 다른 병이라고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가 링크를 하나 보내주셨는데, 재발성 류마티즘이란 병에 대한 정보였다. 어! 이거 내 증상이랑 완전히 똑같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관절 여기저기 아프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깨끗하게 낫고, 며칠이나 몇달씩 증상이 없다가도 하루 아침에 또 아프기도 한 이 증상. 이게 의사들도 잘 모르는 질병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 선배가 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나도 추가로 더 찾아봤다. 류마티스 내과 의사가 아니면 다른 의사들은 잘 알기 어려운 병명이라는 내용이 류마티스 내과 학회 홈페이지에 나와있었다. 그래서 정형외과와 한의원 예닐곱 곳 이상을 다녔어도 아무도 설명해주지 못하고, 아무도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지 못했던 거였다. 또 학회 홈페이지엔 이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현재로선 원인도 불명이라 했다. 다만 관절 통증이 생겼을 때 소염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원인도 병명도 몰랐던 관절 통증의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것이 마라톤 대회를 나흘 정도 앞둔 날이었다. 여전히 발목 통증이 있었고, 무릎도 조금 불편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병명을 알고 지금까지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나니 그 다음날 아침에 통증이 많이 나았다. 그날 나는 런닝화를 사고 마지막 훈련을 했다. 아직 발목과 무릎이 완전 회복된 것은 아니어서 6킬로미터만 가볍게 뛰려고 했는데, 런닝화를 추천해주고 같이 뛰어준 선배가 속도를 자꾸 올리는 바람에 좀 많이 힘들었다.

10킬로미터 경기

마라톤이 열리는 철원 고석정 주차장에 도착하니,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서둘러 탈의실에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배번호표를 부착하고, 기록용 칩을 운동화에 붙였다. 그리고 무릎 통증을 버티기 위해 소염진통제를 두 알 먹었다. 같이 간 일행들 중에 50대 언니들은 걷기 코스를 신청했었고, 10킬로 달리기를 신청한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여성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하프 코스를 신청한 형님 한 분과 풀코스를 신청한 형님 두 분. 걷기 코스 언니들은 마음 편히 수다를 떨고 계셨지만, 나는 좀 긴장한 상태였다. 무릎도 아프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게다가 결국 10킬로를 한번도 달려보지 못하고 대회에 와버렸다. 과연 얼마 정도의 페이스를 가져가야 할지, 완주는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사람들은 제각각 각자의 코스로 흩어졌다. 10킬로를 선택한 여성 두 분은 어디 있는지 안 보였다. 나는 혼자 구석에서 다리 쪽 스트레칭을 하면서 긴장을 풀려고 애썼다. 드디어 9시가 조금 넘어 풀코스 참가자들이 달려나갔다. 그 다음 출발이 10킬로 코스였다. 처음부터 뒤로 처지면 나중에 더 불리할 것 같아서 되도록 앞쪽에서 출발하고 싶었는데, 앞쪽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적당히 전체 대오에서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잘 할 수 있다 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데, 뒤에 있던 남성 참가자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새로 산 런닝화 브랜드가 써코니 인가 그랬는데, 이 신발이 나름 유명한 상표였나보다. 좋은 신발 신으셨으니, 잘 달리실거라고 내게 덕담을 해주셨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신발은 좋을지 몰라도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이 실력이 별로라서요. 아마 잘 달리기는 어려울 거예요.

드디어 카운트다운 후에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폰에서 런닝 앱을 켜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출발했다가 앞쪽 사람들이 뛰어서 흩어지기 시작하자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속력을 내어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전략은 1시간에 들어오는 페이스 메이커를 찾아서 그 사람만 쫓아가는 것이었다. 만약 못 쫓아가겠으면 뭐 그건 어쩔수 없는 것이고, 그래도 중반 이후까지 비슷하게 뛰면 내 목표인 1시간에서 그리 많이 뒤쳐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스 메이커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앞에 있는 것인지, 뒤에 있는 것이지 모르겠지만, 내 주위엔 없었다. 앞으로 나가며 찾아보려니 시작부터 오버페이스가 될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손목에 찬 갤럭시 핏을 계속 체크하면서 심박수와 페이스를 조절하며 뛰었다. 첫 1킬로는 거의 6분 페이스에 맞췄고, 그 다음 2킬로째는 5분 40초에 맞췄다. 그 다음 3킬로째는 5분 50초. 이대로만 가면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슬슬 폐활량이 딸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는 무거웠고, 날은 또 너무 더웠다. 진통제의 영향으로 무릎 통증은 거의 안 느껴져서 다행이었지만,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체력 싸움이 시작이었다.

아니나다를까 4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5킬로미터로 가는 사이에서 급격하게 피로감을 느끼며 숨이 차서 뛰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더 버텨보려고 했는데, 앞서 가던 몇몇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걷고 있더라. 조금 걸으며 호흡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려고 했는데, 저 앞에 음수대가 나타났다. 자원봉사자들이 종이컵에 차가운 물을 따라주고 있었다. 물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반쯤은 마시고 반은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았다. 또 컵 하나를 더 받아서 뒷 목에 부었다. 햇빛 때문에 뒷 목이 따가워서 손목에 감아뒀던 손수건을 목에 감았다.

반환점을 지나 6킬로와 7킬로를 가는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다. 너무 더웠고, 너무 지쳤다는 생각에 그냥 이대로 기록따위 포기해버리고 걸어갈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동네에서 같이 온 여성 한 분이 저 앞쪽에 보였다. 내 원래 전략이었던, 페이스 메이커를 쫓아가려던 건 페이스 메이커를 찾지 못해 소용이 없어졌는데, 문득 머리속에서 저 분을 나만의 페이스 메이커로 삼아 쫓아가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순간 다시 힘을 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8킬로 지점까지 어떻게든 왔다. 또 한 번 음수대를 만나 가볍게 목을 축이고 뒷목에 물을 붓고 다시 달렸다. 이제 점점 남은 거리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나는 매 순간 그만 뛰고 걷고 싶다는 유혹과 싸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걷고 있었고, 걸으며 충분히 호흡을 회복하고 다시 뛰다보면 또 걷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이 더위에 이 아스팔트 위를 이렇게 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기쯤 와서 보니 시간을 더 계산할 것도 없이 내 목표였던 1시간은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페이스 메이커로 삼고 따라갔던 여성분도 이제 많이 지쳤는지 계속 걷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막판에 조금이라도 더 뛰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 분을 추월해서 앞서 나갔다. 물론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걸었지만, 조금 호흡을 회복하고 다시 뛰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9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고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니 조금은 힘이 났다. 막판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시간을 보니 1시간 7분대 기록이 나왔다. 드디어 끝났구나. 너무 힘들었는데, 결국 완주했구나. 음수대를 찾아가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도저히 발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지쳤지만, 일부러 좀 더 걸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대회장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다가 간식과 완주메달을 수령했다. 달릴 때에는 빨리 돌아가서 얼른 샤워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오고 나니 씻으러 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간식으로 바나나와 쵸코파이 그리고 음료수를 받았는데, 입맛이 없어서 음료수만 마셨다. 아까 맡겨두었던 가방을 찾아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이라고 설치한 텐트 속은 너무 열악한 상황이었다. 샤워기의 물은 너무 찔끔찔끔 나왔고, 옷을 벗고 갈아입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뭐, 대충 땀만 닦아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은 비닐에 넣어 가방에 담았다.

이제 하프 코스와 풀코스 참가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록이 나오는 벽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저기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누구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같이 온 여성 분들께 전화를 걸었다. 그 분들은 줄 서서 기다리기도 싫고 사진은 안 찍고 싶다고 하셨다. 그냥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그 분들이 쉬고 계시는 곳을 향했다. 우리는 완주메달을 목에 걸고 우리끼리 기념촬영을 했다. 너무 더웠고,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부터 계속 포기하고 싶었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음 대회

첫 대회였고, 첫 완주 메달을 받아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준비 부족과 관절 통증 등 여러 이유로 기록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 날씨에 이 상황에 그만하면 선방했다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아이들을 비롯해 친한 지인들에게 메달 사진을 보내며 자랑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안에 다시 10킬로 대회를 한번 더 뛰어서 이번엔 꼭 1시간 안쪽으로, 그러니까 5분대 페이스로 들어오리라 다짐을 했다. 가을이면 날씨도 선선해서 뛰기도 좋으리라. 올해 남은 마라톤 대회 일정들을 찾아보았는데, 큰 대회들은 벌써 마감한지 오래고,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들은 교통편과 일정을 맞추기가 애매했다. 어지간한 대회들은 거의 다 신청이 끝난 상태였다. 꽤 긴 시간을 뒤져서 11월 말에 열리는 대회 하나를 찾았다. 다행히 아직 신청을 받고 있었다. 나는 얼른 신청을 해놓고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혼자 참여해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여러 명이 같이 가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11월 말까지 두 달 조금 넘게 남았으니, 이제부턴 정말 꾸준히 달려서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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