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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의 책읽기
  • 트러스트
  • 에르난 디아스
  • 15,300원 (10%850)
  • 2023-02-24
  • : 9,373

이 책의 제목 트러스트의 뜻은 (알다시피) 믿음이고, 또다른 의미로는 독점(금융과 기업 권력의 결합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를 모두 뜻한다. 독자가 라쇼몽 같은 서술 서사 기법을 좋아하고, 주식이나 대공황기 포함 미국 혹은 경제(경제, 금융, 돈, 권력, 계급)에 관심이 다소 많이 있다면 꽤나 꿀잼으로 읽힐 소설이다. 동일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장르를 다양화해가면서(총4부작 구성인데, 1부는 이 소설속의 또다른 소설로 주인공은 극중 실존 '베벨'임을 짐작하게 함, 2부는 베벨의 자서전, 3부는 베벨의 자서전을 대필해 준 작가의 회고록, 4부는 자서전의 주인공의 아내 밀드레드의 일기). 각 서술은 부분적으로 맞닿지만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어서 어느 한쪽의 이야기를 “절대적 진실”로 확정할 수 없게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 아내 밀드레드의 일기인 마지막 챕터가 진실에 가깝고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24년에 읽은 소설 중에 최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속하고 있는 도서모임(큰애 중학교 어머니독서회)의 도서로 추천했다가 품평할 때 욕 좀 먹은 작품이다.

 “이게 소설이에요, 에세이예요, 자서전이에요, 회고록이에요? 뭐예요?”

 

인정한다. 1부는 재미없고 지루할 수 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을 암묵적으로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속의 소설인데, 거의 고발이나 다름없게 인간미 없는 파렴치한 부자처럼 서술하고 있어, 정나미가 안 붙기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2부에 가면 실제 그 인물의 자서전을 읽게 된다. 1부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괴리감을 느끼면서.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초반부 지루하다는 분들에게는 조금 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23년에는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몰표를 받았다는 거 같다.

   

3부에서 옮기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3부는 거물급 주식 부자 주인공 베벨의 자서전을 써준 작가가 자서전을 대필했던 23세의 그 당시를 회고하는 회고록.

 

267쪽

베벨 투자회사에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평생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할 기회가 생긴 한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291쪽

당시 저택은 가장 융성할 때였고, 내게 끼치도록 고안된 모든 영향을 끼쳤다. 저택은 내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나 자신이 어색하고 더럽게 느껴졌다. 뭘 달라고 하는 입장도 아닌데 거지가 된 것 같았다. 그래, 난 압도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딸답게, 나는 역겨움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저택 때문에든, 저택에 대한 나의 순종적인 반응에든.

나는 아이다가 처음 베벨의 저택에 발을 딛으며 느낀 감상을 고급 호텔의 로비에 들어설 때 느끼곤 한다. 특히 반얀트리나 워커힐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 어려운 호텔일수록 더.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난 자체가 내가 그곳을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임을 증언하고, 언덕을 지나 마침내 호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비싼 외제차나, 평일 낮인데도 호텔의 야외 골프장에서 한가로이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난 그걸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거지가 된 것 같아진다. 내겐 이게 역사가 우리를 배제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도 느껴졌다. 개인의 욕망이 무관해지는 압도적이고 철저한 배제.

 

 

311쪽

나는 브루클린 공립도서관에서 그런 책 몇 권을 빌릴 수 있었고, 이어지는 주에는 혼란스럽고도 무계획적인 방식으로 그 책들을 훑었다. 별 체계 없이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건너뛰며 출처를 적지 않은 채 아무 내용이나 메모했다. 나는 문서 연구에 대해서나 서지 정보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게 이점이었다. 나의 거칠고 타협의 여지 없이 비체계적인 접근법 덕분에 책들은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남자들 각각의 개인적인 특징은--카네기의 자족적인 독실함, 그랜트의 근본적인 품위, 포드의 딱딱한 실용주의, 쿨리지의 수사적 검양 등등--당시 내가 생각하던 그들 모두의 공통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즉,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혹시 내 행동이 지나쳤다는 의미로 하는 말인가?”

마침내 내가 베벨을 화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혹시 내가 악의나 복수심에 따라 움직인다거나, 그보다 더 나쁘게는 잔인함에서 변태적인 전율을 찾는다는 얘기를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 자네는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내가 보기에 자네는 이 모든 일이 다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리는 것입니다.” 당시에 나는 그 표현이 이 상황에 적용되는 것인지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가 남이 자기 말을 인용하는 걸 좋아하다는 건 알았다.

“바로 그거야. 그리고 현실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베너가 존재한 적도 없던 세상에서 베너의 흔적이 발견되다니, 얼마나 앞 뒤가 맞지 않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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