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중략) 그때 큰 집이 조금만 도와줬더라도 자신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말이었지요. (중략) 아버지는 서울에 남았다면 자신이 기자가 됐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서울 아저씨는 아버지가 가보지 못한 미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35쪽)
제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쉰 살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열네 살의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우리는 이 세계를, 시간을, 삶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깨어 있는 채로 경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눈을 감고 잠든 채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60쪽)
나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보이지 않던 것을 보려는 건가. 이미 보이던 것에 집착하려는 건가. 하지만 기억 속 필름에 확실히 정착된 건 없었고, 필름도 없는 채 알아채지 못했던 무언가를 의식에 현상하려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자. (110쪽)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면 지금 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문제는 미래 세대와도 공유해야 한다. (167-168쪽)
제(김연수) 소설에도 어떤 시점이 있다면 저는 ‘미래적 시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과거의 일을 서술할 때 그 뒤의 미래까지도 다 알고 있다면 이미 기록된 과거는 수정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래는 끊임없이 갱신되니 과거 역시 끊임없이 수정될 것입니다. 무한한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략) 무한한 버전의 과거는 무한한 버전의 미래를 품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미래만 가진 사람에게는 결단의 행위가 없을 것입니다. (중략) 무한한 버전의 미래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200-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