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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황유원 외
  • 10,800원 (10%600)
  • 2017-12-12
  • : 11,004

시인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중략) 우리는 시인에 대한 여하한 신비주의도 품고 있지 않다. 아니, 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시인들은 타고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저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사적인 노력에 신비로운 것이라고는 없다. 노력이란,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는, 처절한 세속의 일이다. 조금도 신비롭지 않은 그 노동이 멈추면 시인도 함께 소멸된다. (4쪽, 신형철 ‘펴내며‘)
올여름은 생각 속에 내내 잠겨 있었다. 그동안 쓴 시들을 꺼내 읽어보려 했는데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용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34쪽, 김경인 ‘심심(心心), 심심(深深)‘)
어떤 감정이나 습관은 상황에 관계없이 주기를 갖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의 주기성은 단순히 한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존재한다. (중략) 그것은 우리가 가진 생의 리토르넬로다. 어떤 선생은 그 음악을 예민하게 들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선생은 리토르넬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생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60쪽, 김정진 ‘우리가 사는 음악 속에는‘)
흘러간 시간의 냄새가 났다. 바스러지는 낙엽들. 그리고 가을이다. (중락)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겪는 건 좀 다르다. 그리고 그리다보면 그림이 형성된다. 가을이다. 갈색으로 물든 잔디밭에서 떨어진다. 누군가의 무릎에서 떨어진다. 찬바람이 뺨을 때린다. 해는 저물고 그리고 눈송이가 떨어진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잠깐 춥다. 그리고 떨어진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다보면 가을이 간다. 잠깐 왔다가 눈이 온다.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찌는다. 날 선 가을이 찢는다. (98쪽, 서정학 ‘가을‘)
슬픔이 낭떠러지에 선 인간의 등을 떠밀어버리려는 것을 보게 된다면, 쓰고 싶은 시가 좀 달라질 것 같다. (중략) 남의 불행에 대하여 눈부셔하거나 황홀해하다가 눈꺼풀을 닫아버리는 일과, 나의 젊음이 뜨겁거나 아까워서 죽으므이 관념을 가지고 놀아보는 일. 다 지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잘 살 것이다. 얼음을 입에 물고 착실히 굳어가는 겨울의 허벅지처럼. 죽을 만큼 밉다는 말보다 죽을 만큼 슬프다는 말을 진실로 믿으며. 나는 아직 그런 슬픔을 위로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138쪽, 유계영 ‘바라볼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죽고 싶은 것과 사록 싶지 않은 것은 달라요
둘 사이의 공백을 견디는 게 삶이죠
약을 먹으면 인생은 다시 좋아질 케지만
가능성이란
불가능한 광년 너머에나 있는 것
(163쪽, 이용한 ‘불안들‘)
눈꺼풀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간혹 눈을 감고 본다. 눈꺼풀로 본 것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눈꺼풀로 본 것은 달무리처럼 모호하고 어렴풋하다. 그것은 분명 과거의 퇴적물이지만 죽은 기억은 아니다. 내 글쓰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오래전 망각되고, 피와 살과 뼈를 이룬 기억이다. (176쪽, 장석주 ‘눈꺼풀로 본 것들‘)
딸 많은 우리 어머니
이 딸에겐 저 딸 얘기
저 딸에겐 이 딸 얘기
점잖으신 우리 어머니도 그러시던걸
이 사람에게 저 사람 흘리고
저 사람에게 이 사람 흘리고
사람이 모지라서 그런 것 아니라네
말이라는 게 원래 정처가 없다네
(중략)
괜찮네 본심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네
우리의 말, 늦가을에 다시 피어나는
봄꽃처럼 얇아서 늘 조마조마하던걸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안타까운 주름
그걸로 충분하네 이해가 오고 있네
측은하고 반갑고 또 많이 고맙네
(220쪽, 한영옥 ‘측은하고, 반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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