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리는 더러운 지중해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첨벙거렸다. 내가 지루해하는 것이면 뭐든 즐기고, 내가 즐기는 것이면 뭐든 지루해하는 여자 같으니. 우리는 완벽한 짝이었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견딜 만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거리distance가 우리를 묶어주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할 기회도 없었다. 완벽했다. (20-21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나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사교댄스. 롤러코스터 타기, 동물원 구경, 소풍 가기, 영화 보러 가기, 천문관 관람, 텔레비전 시청, 야구 경기 관람 등. 장례식, 결혼식, 파티, 야구장, 자동차 경주, 시 낭송회, 박물관, 집회, (중략) 스포츠 경기에도 가기 싫다.... 또한 해변, 수영, 스키, 크리스마스, 새해. 7월 4일 독립기념일, 록 음악, 세계사, 우주 탐험, 반려동물, 축구, 성당, 위대한 예술 작품에도 관심 없다. 거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자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글을 쓰고 또 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햄버거를 씹는 강간범의 생각과 기분, 공장 근무자의 생활, 길바닥의 삶, 빈자와 불구자와 미치광이의 방 같은 하찮은 것들을 쓴다. 나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많이 쓴다. (54쪽)
나는 시 낭송 사이사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었다. (중략) 독일 군중에겐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그간 수많은 낭송회를 가졌다.(중략) 낭송회 청중은 특정한 부류의 시를 선호했는데, 그들은 웃기는 시를 좋아했다. (중략) 그런데 함부르크 군중은 이상했다. 내가 웃기는 시를 읋으면 웃음을 터뜨렸지만 심가한 시를 읋으면 열렬히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다른 문화였다. (중략) 내 시는 지적이지 않았지만, 일부 청중은 진지했고 열광했다. 군중에게 내 시를 이해받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정신이 말똥해져 술을 더 마셔야 했다. (72-73쪽)
한 청년은 계속 내 얼굴에 마이크를 디밀었고, 녹음테이프는 계속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서 깊이 있는 것을 끌어내려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내 얼굴에 디민 이 마이크만 없다면 그렇겠지, 멍텅구리 씨...." "여성을 싫어합니까?" "아이들만큼 싫진 않아." "인생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요?" "부정否定하기" "그럼 인생의 기쁨은?" "자위행위" "그럼 인생의 참맛은?" "반값 세일" 그날 밤이 어떻게 파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13-114쪽)
나는 느끼는 대로 감정에 의해 행동한다. 내 감정은 다치고, 고문당하고, 저주받고, 길 잃은 사람들에게 향한다. 동정심이 아니라 형제애의 발로에서. 나 역시 길을 잃었고, 혼란스러복, 저열하고, 쪼잔하고, 겁 많고, 비겁하기 때문이다.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반짝 친절을 베풀 뿐이다. (115쪽)
인생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 연기하려고 배웠을 뿐이다. 간혹 자살 사건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만사 즐거운 듯 계속 연기한다. (121쪽)
바벳이 부엌에 들어가 그 물고기(강꼬치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 좀 봐! 이 이빨 좀 보라고! 엄청난 놈이야!" 그의 손에 그것이 매달려 있었다. 죽은 몸으로. 길고 날씬한 전직 킬러가 우리 눈 앞에. 바로 앞에 있었다. 놈은 죽어서도 아름다웠다. 한 치의 오류도 없었고, 한 점의 과다한 지방도 없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창조물. 찢고, 뜯고, 둘러보고 헤엄치는 삶. 도덕도, 성경도, 친구도 없는 그저 돌진하는 삶. (153쪽)
독일은 내가 태어난
곳.
할리우드는 내가 사는
곳.
나는 독일에 갈
것이다
말들과 이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우드 앤더슨이 우리와 동행할
것이다.
양식이 떨어졌을 때
그의 책은 내게
양식이었다.
-‘다 함께‘ 중에서(176쪽)
독일인들은 1914년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의 과묵하고 자제하는, 특별히 눈에 띌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섬세함은 내 기운을 돋우었다. 자신과 타인을 인내하는 무관심이라니.
만하임 기차역에서 맥주꾼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믿는 무엇이 선포하고 성취하는 것을 목도한다. 역사의 한 장과 삶의 한 현장에 선 그들이 시연하는 것은, 삶이란 때때로 지독하게 다가오지만 어떨 때는- 어쩌면 자주 -아득바득 악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맥주 맛이 좋고, 기차는 올 테니까.
-‘기차역‘ 중에서(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