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을 번역가로 살다보니 세상이 다 번역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죠. 그 과정에서 때론 오역을 하기도 하고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반드시 정역해야 하는 제 일과 달리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음의 재미가 있죠. (7쪽)
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69쪽)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 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100쪽)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 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139쪽)
영화도 마찬가지로 유행어를 쓰든, 쓰지 않든 단 5년만 지나도 자막이 촌스럽게 느껴진다. (중략) 영화도 재개봉을 한다면 시대에 맞게 재번역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여건상 그렇게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 아쉬울 뿐이지. 번역엔 시대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소비자에게도 그 편이 유익하다. (230-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