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기
바람 한 줄기와
한때의 봄비
또 다른 날의
햇살 한 줌이면 됩니다. (27쪽)
우포
수억 년 전부터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거기 그대로 있었다. (48쪽)
섬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생기고 나서도
섬은
섬에 닿을 수 없다. (65쪽)
기다리기
희미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 있다
어쩌면
사랑도 그렇다
그 마음, 잔잔해지길 바랄 뿐이다. (103쪽)
많은 나에게
너의 몸을 좀 쉬게 해
(중략)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또 아주 오래까지 있을 거야
그리고 하루는 그치지 않을 거야. (137쪽)
하루
행과 행 사이를
행간이라 부른다
행간에는 말로 하지 못하는
더 많은 말들이 숨어 있다
안녕이라는 말과
안녕이라는 말 사이에
하루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말은 흔들려도
행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158쪽)
중독
검은 표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진주같이 반짝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감출 수 있는 듯
어둠으로 가득했다. (200쪽)
벽들은 눈물의 색깔
벽이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습니다.
(중략)
오래된 벽돌에는 담쟁이가 자랍니다
벽이 흘린 눈물을 먹고 담쟁이가 커 가기 때문이지요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이쪽저쪽을 갈라놓아야 하는
안쪽과 바깥쪽이라는 다름을 견뎌야 하는 벽이기에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 다름의 편견으로 담은 더 높아지고 견고해져서
담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리니까요
사실 눈물은 진실이 아니라 위장인지도 모릅니다
(생략)
(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