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상품이 쓰임새와 가치에 따라 평가를 받고 등급이 매겨진다. 무역은 상상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기발하고 포기를 모른다. 지구상의 무수한 생산품과 폐기물이 낱낱이 검사를 거쳐 가능한 쓰임새를 찾아간다. (21쪽)
모든 사물과 용도의 들어맞음이, 모든 과정에 미리 대비한 헤아림과 준비성이 부두 사람 누구의 머리에도 스치지 않은 미적 요소를 마치 뒷문으로 들여오듯 슬그머니 불러들인다. 창고는 창고로 제격이고 기중기는 기중기로 제격이다. 거기서부터 아름다움이 깃들기 시작한다. (22쪽)
부두의 일상을 바꿀 힘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변화뿐이다. (25쪽)
런던은 사라짐을 목표로 세워진 도시다. 이 도시의 유리질, 투명성, 밀려드는 유색 회백의 물결은 옛 건축가들과 그들의 후원자인 영국 귀족들이 원한 바와 다른 만족을 주고 그들이 꾀한 바와 다른 목표를 성취한다. (중략) 우리는 후손을 위해 건물을 짓지 않는다. 후손들이 구름 위에서 살지 땅 속에서 살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를 위해 건축을 한다. (36-37쪽)
이 점은 인정해야 한다. 삶은 투쟁이고, 모든 건축물은 소멸하며, 모든 과시는 허영임을 이 촌스럽고 천박하고 번잡한 거리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는 사실 말이다. (중략) 옥스퍼드 거리에서 어떤 결론을 지으려는 시도는 헛되다. (41쪽)
펌프는 지하실에, 누런 함석 욕조는 세 층 위에 놓인 삶의 결과가 이렇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 천재성을 지녔고 서로 사랑했지만 벌레와 함석 욕조와 지하실의 펌프 앞에서 천재성과 사랑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략) 다시 곰곰 생각해보면 집에 온수를 설치한 칼라일은 칼라일이 못 됐을 것이고, 박멸한 벌레가 없는 집의 칼라일 부인은 우리가 아는 여성과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48-49쪽)
그렇다면 런던에서 어디를 가야 망자들이 안식에 들었다는 확신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따지고보면 런던은 무덤의 도시다. 하지만 인간 생활이 절정과 급류로 치닫는 도시라는 점도 분명하다. (67쪽)
여기는 하원의사당이다. 여기서 세계의 운명이 바뀐다. (중략) 이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한다. 우리는 매일 그들의 지시를 따른다. 우리의 지갑이 그들 손에 맡겨져 있다. (중략) 다들 섭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다는 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수다와 웃음소리, 왕성한 혈기와 조급함과 불손함을 보면 교구 사업을 논하거나 우량 소를 선정하러 모인 어느 시민들의 집단에 비해 이들이 논꼽만큼도 더 현명하거나 더 기품 있고 덕망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76-77쪽)
울프는 모든 촉수를 활짝 열어둔 관찰자이고자 했다. 외부세계를 관찰하고 외부의 자극이 자기 내면에 불러일으킨 파동을 관찰하고 그 파동에서 자신이 쓸 이야기의 미래를 관찰했다. 독서와 산책에서 건져 올린 관찰은 차곡차곡 글로 수집됐다. (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