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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진실에 베이는 순간
  • 사랑이 한 일
  • 이승우
  • 12,600원 (10%700)
  • 2020-11-10
  • : 6,332

“이 소설집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나는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내게 발견된 열쇠였고, 그래서 나는 이 부담스러운 패러프레이즈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소설들이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란다.” - 244쪽 <작가의 말>중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게 말하는 방법이 되는 말이 있다. 사랑의 말이 그렇다.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 예컨대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한다.” (112쪽)


작가의 말만 적어두고 더 이상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승우 작가와 그의 소설 세계를 사랑하므로,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하는데 잘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떻게 이 좋은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 사람이 왜 좋으냐고 물어 올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와 인생의 이해에 대한 지평을 열어주며 평소에 가졌는지도 몰랐던 의문이 이야기를 통해 갑자기 해석이 되면서 깨달음의 지평이 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은 그런 의미에서 마음 꽉 차게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책 속 이삭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가 영혼의 고투를 벌이는 동안 내 안으로 묵상의 길이 깊이 열렸다.” (109쪽) 작가가 인간의 입장에서 신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고투하는 동안 내 안으로 묵상의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성경에서도 구약, 구약에서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가 5개의 단편으로 이어지는 <사랑이 한 일>은 나오자마자 구입하고도 한참을 묵혀 두었던 책이다. 그런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꼭 읽고 싶은 책이나 영화는 될 수 있는 한 계속 미루고 싶은 마음 말이다. 정말 그랬다. 설레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차마 열지 못하는 보물함처럼.


작가 이승우는 신의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에서 성경의 사건을 해석하며 자신만의 문체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데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소돔의 하룻밤」에서 계속 반복되는 문장을 통해 나도 모르게 롯의 행동에, 아니 작가의 이야기에 설득되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문장이, 이어지는 다른 단편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야기하는 주체가 정교하게 논지를 펼쳐가는 아주 힘있는 문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도된 문체에는 작가의 큰 그림이 숨어 있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성경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영광은 얻었지만 믿음의 주인공들 틈에서 소외된 하갈과 이스마엘의 이야기 「하갈의 노래」, 제물로 바쳐지는 이삭의 입장과 심정을 그린 「사랑이 한 일」, 그러한 배경에서 이삭이 에서를 편애할 수밖에 없었던 숨은 이야기 「허기와 탐식」, 에서를 피해 홀로 길 위에 서게 된 야곱의 이야기 「야곱의 사다리」.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성경을 얼마큼 아느냐에 따라 이 소설집의 무게와 감동은 읽는 이에게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 또한 애정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의도와 철저하게 그 인물들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가의 애정이 읽는 내내 너무 깊이 있게 다가와 내게는 참 특별한 작가, 특별한 책으로 읽혔다.


<사랑이 한 일>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 사건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작가에게서 배워야겠다고도 생각했는데 작가의 중복된 문장의 전개는 읽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결국은 그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작가의 각고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으로 성경을 읽을 때도 조금은 다르게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 또한 이 책에서 건진 큰 수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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