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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8,100원 (10%450)
  • 2022-11-30
  • : 352

나는 요조라는 인물을 경멸한다. 음침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인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을 열망하는 이 인물과 절대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 보면 이따금 요조와 내게서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순간들이 싫어 더더욱 요조를 나와 타자화하곤 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음침한 면에 존재하지만, 요조의 경우는 인간의 모든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타르 점액 같은 부분만을 응집시켜 놓은 캐릭터 같다. 과도한 자기 비하는 오히려 자아 비대와 동일한 게 아닐까?


유숙자 번역의 <인간 실격>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드는 생각은 '이 번역가, 일본어투를 굉장히 살려서 번역하는 편이구나'라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된 글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어로 이런 표현을 썼겠구나 가늠이 가는 번역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번역은 가독성을 해쳐 속도감 있는 독서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 실격>은 빠르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천천히 인물을 곱씹으며 사유해야만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번역이 오히려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호리키와 요조가 말장난을 하는 부분의 원문을 살린 번역은 그 내용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삶은 트라가 아니라 코메라고 말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요조의 삶은 어디로 보나 코메는 아니었음에도.


요조가 싫다. 요조에 대해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사람들도 분명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것마저 요조와 닮은 내 비대한 자의식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싫어진다. 과연 내가 요조의 삶을 평가 내릴 수 있는 사람일까? 그가 인간성을 실격했다고? (물론 그러고 싶다. 아니, 사실 이미 그러고 있다.) 내게 자격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생애가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고 내 인생의 말미에 확신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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