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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홍디자인님의 서재

레이시는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거대한 중앙계단을 굽이굽이 내려갔다. 휑뎅그렁한 입구에는 미술이라 할 만한 것이 별반 없었다. 머리 위에서 거대하게, 하지만 공허하게 흔들리는 칼더(알렉산더 칼더: 미국의 조각가로, 움직이는 조각(모빌)의 창시자. 1898~1976.)의 모빌만이 여기가 우주여행 터미널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다.
현대미술에 관심 없는 레이시는 서관 지하층으로 향했다. 미국회화 갤러리는 텅 비어 있었다. 레이시는 보는 사람 없는 걸작들 앞을 빠르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가운 그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책에서 5×8센티미터 사진으로만 봤던 존 싱글턴 코플리의 1778년 작 유화 「왓슨과 상어」도 있었다. 실물로 보니 현장감이 대단했다. 당시의 절박한 상황이눈앞에 순간정지 상태로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배를 빙빙 도는 상어 때문에 지옥처럼 물결치는 바다, 방금 상어에게 다리 하나를 뜯어 먹힌 열세 살 소년, 다급하게 소년을 구하려는 선원들. 레이시는 그림의 엄청난 크기와 가학적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죠스의 원조야. 레이시는 생각했다.

 

 

 

[존 싱글턴 코플리,「왓슨과 상어」, 1778년.]


레이시가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그날 그림들을 후딱후딱 보는데, 그러는 내 꼴이 갑자기 눈에 그려지는 거야. 되게 웃겼어.” 레이시는 목부터 길게 나가고 발은 뒤에 끌려오는 모습으로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이동했다. 그림 앞에서 머리의 속도가 떨어져 발이 따라붙었다 싶으면 다시 머리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법을 쓰면 전진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시선이 최대한 오래 그림에 머무를 수 있었다. 윗몸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움직이는 반면, 두 발은 SF영화의 순간이동 화면처럼 쌩하니 움직이는 꼴이었다.
레이시는 지하층 회화 갤러리에서 그렇게 20분을 보냈다. 소더비에서 일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레이시는 소더비가 자신에게 미술관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주입했음을 깨달았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한 직업병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그림의 의미를 분석하느라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도 미술사 전공자의 판에 박힌 숙명이었다. 그런데 이제 다른 버릇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림의 시장가치를 추정하는 버릇이었다. 맨해튼에서 구른 경험이 레이시 내면의 배선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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