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고 아트 시즌이 끝나갈 때였다. 갤러리마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고 경매장은 파리 날리는 어느 날 오후, 레이시는 케네스 럭스 갤러리에 들어섰다.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의 미국회화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벽에 존 피토가 그린 자그마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피토는 19세기 정물화가로, 탁자 위의 책과 담뱃대와 머그잔을 주로 그렸다. 어두운 녹색과 밤색이 주를 이루고, 가장자리가 해진 책이 등장하는 그의 정물화는 도시 빈민의 누추한 일상을 조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피토는 1950년대 초에야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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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레데릭 피토,「머그잔, 담뱃대, 그리고 책」, 1880년경]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프랑켄스타인의 공이었다. 프랑켄스타인은 19세기 정물화가 중 가장 인기 많은 하넷(존 피토와 함께 19세기의 트롱프뢰유(현실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묘사)의 대가로 통한다. 1848~1892)을 연구하던 중, 그의 작품이 서로 다른 두 가지 화풍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화풍은 사진처럼 정확한 묘사였다. 이런 그림들에서는 모든 오브제가 생생하고 예리했다. 두 번째 화풍은 느슨한 묘사였다. 이런 그림들에서는 오브제들의 가장자리가 증발해 공기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드는 느낌이 났다. 프랑켄스타인은 하넷의 그림들 중 두 번째 화풍의 그림들이 사실은 피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넷의 그림들이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는 것을 안 사기꾼들이 피토의 그림이 발견되는 족족 피토의 서명을 지우고 그 자리에 하넷의 모노그램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수십 년이나 계속된 사기가 드러나자 피토의 그림 값이 치솟아 하넷의 그림 값과 맞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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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마이클 하넷,「헤럴드」, 1878년경]
소더비에 피토의 그림이 하나 입고될 예정이었다. 레이시는 가격 책정에 참고할 생각으로 갤러리 사장 켄 럭스에게 벽에 걸린 작은 피토 그림의 가격을 물었다.
“3만 5천.” 켄이 말했다.
레이시가 보기에 괜찮은 그림이었다. 레이시는 소더비의 피토 그림과 비교하고 싶은데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켄은 레이시에게 작은 슬라이드 필름을 주었다. 레이시는 케네스 럭스 갤러리를 나와 갤러리 탐험을 계속했다. 모퉁이를 돌아 허실 앤 애들러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연히 거기에도 비슷하게 자그마하고, 비슷하게 훌륭한 피토 그림이 걸려 있었다. 레이시는 가격을 물었다. 6만 5천 달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쓰리 가이스에서 급히 먹은 델리 샌드위치 때문에 가뜩이나 속이 더부룩했던 레이시는 순간 딸꾹질이 나왔다. 두 그림은 소재 면에서 너무나 비슷했다. 한 쌍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네.” 레이시는 일단 갤러리 밖으로 나와 케네스 럭스 갤러리에서 받은 슬라이드에서 갤러리 라벨을 긁어냈다. 아트 딜러끼리는 가격 정보를 주고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각자의 제시 가격을 숨기고, 라이벌 딜러가 뒤에서 험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기로 했다. 레이시는 슬라이드를 들고 다시 허실 앤 애들러로 들어갔다.
(중략) 레이시를 맞은 사람은 스튜어트 펠드였다. 펠드는 미국 미술계의 실세 딜러였다. 웬만큼 허세가 든 수집가도 그의 앞에서는 찍소리 못할 정도로 그림 보는 눈이 매섭기로 유명했다. 펠드는 19세기 회화를 파는 것을 넘어 19세기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미국산 신고전주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가구 못지않게 양복도 멋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