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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 이야기: 그림, 돈 그리고 음모
스티브 마틴 장편소설, 이재경 옮김
“소더비라. 그러면 내가 오래 고민하던 질문의 답을 아실지도 모르겠군.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젊으신가?”
“일단 질문을 던져 보세요.”
“부자들은 말이죠,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어떻게 알죠?”
레이시는 대꾸 없이 계속 말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생각해 봐요. 그 사람들의 기준은 뭘까요? 벨라스케스 같은 거창한 이름은 왜 항상 5백만 달러씩 받고, 베르나르 뷔페는 왜 그렇지 못하죠?”
“방금 본인이 답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레이시가 말했다.
“내가요?”
“‘거창한 이름’이라고 하셨잖아요. 사람들이 구매하는 건 어쩌면 그림이 아니라 이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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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그렇다면 벨라스케스 그림 중에 엉망인 그림도 같은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부자들은 좋은 게 뭔지 기가 막히게 아는 것 같아요. 학자들이 수십 년 공부해도 알까말까한 것을 철강왕이나 자동차 딜러나 석유재벌은 어떻게 그리 쉽게 알까요?”
“기차표 포도주라도 마시면 답이 나올 것 같아요.” 레이시가 말했다.
“대령하죠.” 남자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기며 일어섰다. 그리고 몇 분 후, 포도주 잔처럼 보이려는 노력조차 상실한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레이시가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1994년 산産 애치슨 토페카[애치슨 토페카 산타페 철도회사(Acheson, Topeka and Santa Fe Railway)를 말한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서류가방을 테이블 삼아 무릎에 올려놓고 인조가죽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림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는 겁니다. 두꺼비의 눈이 입체 시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그림은 돈을 향해 움직여요. 사람들의 탐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명작도 지하실이나 쓰레기장에서 썩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거죠.”
레이시가 웃었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제가 취했나 봐요. 선생님 말씀이 이해되는 걸 보니.” 그리고 레이시는 몸을 옆으로 틀어서 신사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제대로 감상했다.
낮술의 취기가 가실 무렵 기차가 역에 들어섰다.
신사가 일어나서 말했다. “레이시, 멋진 하루 보내요. 덕분에 여행길이 짧았어요.”
레이시도 열렬히 인사했다. “저도요. 즐거운 여행되세요.”
레이시가 신사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 그의 책 표지 안쪽에 실린 저자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그 신사는 존 업다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