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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어떤 노부부가 밀턴 애브리의 그림을 카트에 싣고 왔다. 그림은 작았지만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액자는 섬뜩했다. 어찌나 섬뜩했던지, 미국회화 부서장 체리 핀치는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서 액자를 가리고 그림을 봤다. 체리가 노부부에게 추정가로 6만에서 8만 달러를 제시하자 노신사는 바지 멜빵이 튕겨나갈 정도로 놀랐다. 노부부는 그림이 완성된 1946년에 3백 달러를 주고 샀다고 했다. 그때의 가격표가 아직도 그림 뒤판에 붙어 있었다.


밀턴 애브리, 「목욕하는 여인들」, 1946년


밀턴 애브리는 미국 화가 중에서 딱히 어느 범주에 넣기 힘든 독특한 화가였다. 그는 형체와 풍경을 몇몇 색 덩어리로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검게 칠한 곳은 바다고, 노란색을 쓱 바른 곳은 모래고, 파란색은 하늘이었다. 그런데도 완벽했다. 애브리 그림은 점잖았다. 하지만 총 든 남자가 점잖을 때의 점잖음이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애브리는 평생 스타일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판에 박힌 작가는 아니었다. 좋은 그림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작품도 많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이날 체리가 보고 있는 그림은 좋은 그림이었다. 

노부부가 떠난 뒤 체리는 레이시에게 애브리 그림이 얼마에 낙찰될 것 같냐고 물었다. 레이시는 이것이 테스트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치밀하게 예측하되, 예측치를 부풀려 말하기로 작정했다. 자신의 예상치가 평범하게 묻히는 것보다는 기억되는 쪽이 유리했다. 레이시가 보기에 그 그림은 작은 보석이었다. 무난히 좋은 가격에 낙찰될 듯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17만 달러요.” 그러자 체리가 어리고 딱한 아이 보듯 미소 지었다.

레이시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애브리 그림을 가져온 노부부가 막 건물 문을 나설 때 부부를 따라잡았다.

“저희가 액자를 다시 짜도 될까요?” 레이시가 물었다.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부부는 딱히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 액자로도 50년 이상 무탈하게 있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레이시의 긴급 제안에 전문성이 느껴져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레이시는 그림을 아래층으로 가져가 치수를 쟀다. 액자도 쉽사리 분리했다. 그 뒤 지체 없이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미국 최고의 액자상점 로위로 갔다. 레이시가 안내데스크의 여자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더비의 레이시 예거라고 합니다. 밀턴 애브리 작품에 쓸 액자를 문의하고 싶은데요.”

레이시의 목소리가 안내데스크를 넘어 호사스런 액자 견본들이 즐비한 진열대까지 들렸다. 진열대 앞에 벨벳을 깐 이젤들이 있었다. 그림을 올려놓고 귀퉁이에 액자 견본을 대보는 용도였다. 레이시는 손님들이 이젤에서 한발 물러나 해당 액자가 그림을 완전히 두른 모습을 상상했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래리 샤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밀턴 애브리 그림에 쓸 액자가 필요해서요. 다음 경매에 출품할 예정인데요, 그때까지 맞춤이 가능할까요?”

“그럼요. 그림은 어디 있습니까?”

“그게, 상황이 이렇습니다. 판매자는 액자 비용을 댈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요, 이곳에서 액자를 투자하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출품할 때 응찰자들에게 액자를 이곳에서 협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죠. 그림을 누가 사든 액자도 구매할 게 분명해요. 여기 액자는 알아주니까요.”

“저희는 통상적으로—”

“만약 구매자가 액자는 사지 않겠다면,” 레이시가 얼른 덧붙였다. “그땐 제가 살게요.”

래리가 신기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 말로 레이시는 래리의 동의가 떨어졌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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