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작품을 썼는데 십사 일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몇 차례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지요. 이 책은 당신 덕분입니다.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내 삶의 단면이고 광고와 상업에 대한 나의 혐오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광고라는 주제는 모사하기엔 넘 추상적이어서 치즈를 택했습니다.
저자인 엘스호트가 얀 흐레스호프에게 보낸 편지글과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엿볼 수 있다.
얀 흐레스호프는 네덜란드의 시인으로, 당시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엘스호트에게 작품 활동을 계속할것을 권유했던 사람이다. 얀 흐레스호프의 독려가 자극이 되어 엘스호트는 2주만에 이 작품 <치즈>를 완성한다. 이 작품 이전에도 첫소설 <장미 빌라>를 비롯하여, 광고업계에 환멸을 느껴 쓴 <설득> 등을 출간한 바 있지만, 주로 생업에 집중하느라 작품을 계속 쓰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설득>을 발표한 이후로 10년 만에, 그동안의 한을 푼 것일까. 2주만에 써내려간 <치즈>는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 엘스호트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이 되었으며 작가 자신도 제일 아끼는 작품으로 꼽는다.
30년이란 시간을 한 직장에서 일해온 삶에 대해 무엇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 대단한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고 사무원으로서 묵묵히 드러나지 않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삶을 살아가던 프란스 라르만스에게 형님의 친구인 판스혼베커라는 신사의 제안은 획기적이었다. 네덜란드의 치즈 공급업자와 연결시켜줄테니 치즈를 유통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의 존재감 없는 일에 신물을 느끼던 라르만스는 자신이 성공적인 사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회사에는 거짓 병가를 내고 치즈 도매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치즈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데 있다.
그는 냉장 시설도 없고 치즈 유통의 기본적인 절차조차 알지 못한 채 10톤에 달하는 치즈를 집에 쌓아놓고 판매하려고 한다. 집에 따로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회사원이 아닌 사업가로 변신하는 꿈에 부풀어 초반에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 치즈가 팔리지 않으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라르만스는 고객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치즈는 점점 썩아가며 그의 사업은 실패의 길로 접어든다.
<치즈>는 막연한 성공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라르만스는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무리하여 시도하면서 좌절감을 경험하며 이는 자본주의적 야망의 부질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수 있다.
오래전에 본 찰리 채플린 주연, 감독한 영화 <모던 타임스>가 떠오른다. 세상의 톱니바퀴로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시민의 삶을 보여준 영화이다.
간결한 문체와 유머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불안감을 일상 생활의 간단한 플롯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발표한 열한 권의 소설 중 이 작품에 가장 애착을 가진다고 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메마른 삶>과 함께, 이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에 호감이 커져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