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의 추천이 있는 책이어서 선택을 하고 보니 저자가 나와 동갑내기여서 친근감이 왔다.
에세이 80 여편 중에 제일 공감을 주는 문장에 살짝 표시를 해 두었다.
[서재를 정리하면서] P. 160 ~ 161
"선생님은 이 책을 다 읽으셨는지요?" "아마 십분의 일도 채 못 읽었을 걸요.당신도 세브르 도자기를 매일 사용하시지는 않을텐데요."
이러한 대화를 기억하면 책을 다 읽지 못해도 책을 수집하는 작업은 그래도 책의 생명을 구해 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그것이 있을 자리에 두고 보는 것 또한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책을 수집할 때 꼭 반드시 새 책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떤 책이 절판이 되었을 때 그것을 구입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깨끗이 사용한 책을 구하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어떤 사람이 과거에 그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면, 책을 읽는 데 동반자를 얻었다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재산을 그와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도 있다. 특히 이미 누가 사용했던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그 책을 구입할 때의 감정과 그것을 무슨 이유로 헌 책방에 팔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매우 재미 있는 일이다.
또 내가 수집한 책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때의 그것의 운명을 생각헤 보는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아마 나는 내가 장서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면 대학 도서관에 맡길 것이다. 다음 세대가 내가 수집한 책을 읽을 때, 그 책들에 담긴 추억을 결코 읽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만큼 그 책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생각하면 자못 안심이 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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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면 책을 수집하는 일은 책을 쓴 사람들의 가장 위대하고 값진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책을 다 읽지 못해도 저자기 알지못할 어떤 사람에게 바친 숭고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쓴 서문만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그 책값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20세기 초까지 서양에 있었던 절판이 된 고서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책을 입찰하던 광경을 그려보면 감격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새벽녘까지 자지않고 나는 흐트러진 책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사방을 둘러싼 책들을 바라보며 의자에 기대 앉았을 때, 책으로 다시 집을 지어 그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