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힐씨쨩와 밤톨군의 서재
  • 기병과 마법사
  • 배명훈
  • 15,750원 (10%870)
  • 2025-05-27
  • : 2,189




주인공인 윤해는 왕의 조카로 태어났지만, 숙부이자 폭군인 ‘영위’ 왕의 견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일 안쪽 방에 처박혀서 십오 년 넘게 책만 읽었다고. 멋진 날개를 달고 태어났는데 펼쳐본 적이 없어. 접혀서 몸에 딱 붙어있는 것만 같아.(p30)“ 라며 괴로워한다. 권력에서 밀려나 숨죽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윤해를 정치적 도구로 삼아 정략결혼을 시키려 한다. 그러나 윤해의 약혼자인 종마금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오히려 몰래 암살하려고 한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윤해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법의 힘을 각성하여 곰처럼 크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곰개’를 소환해 목숨을 구한다. ”윤해가 운명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날이었다.(p45)“






윤해의 마법 각성 과정은 단순히 특별한 능력을 얻는 사건이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과 자유의지,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상징하는 듯했다. 억압과 위기의 순간,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의 힘을 깨우며 곰개를 소환하는 과정은 외부의 강요와 통제(정략결혼, 암살 위협, 왕의 견제)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운명에 맞서기 시작하는 변화의 출발점으로, 주인공이 더 이상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는 성장의 계기인 셈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윤해는 궁에서 쫓겨나듯 북방의 변경, ’술름고리‘ 라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경작인 세계와 마목인 세계의 경계에 자리한 슬름고리 성은 경작인 성주가 마목인 군장에게 명령을 내려온 곳이다. 그곳에서 기병 달낙현을 만나게 된다. 전장에서 오래 살아남은, 슬름고리 방어군 좌기대대감인 달낙현의 이름은 마목인으로서는 ’다르나킨‘이라고 발음된다. 초원의 다른 마목인 부족들이 성을 계속 공격해오고, 윤해는 책에서만 보던 병법이 아닌 실제 전쟁을 통해 병법을 배워간다.

국내 판타지 소설들은 대체로 중세 유럽식 귀족 사회, 유럽식 마법 체계, 기사와 마법사, 공작·백작 등 서양적 계급 구조를 반복적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기병과 마법사』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식 판타지와 거리를 두고 대신 몽골 기병을 연상시키는 군대와 전투 스타일, 초원 국가 구조, 초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문담’이라는 인공 요새 등 동아시아적인 요소를 소재로 삼아 독창적인 설정으로 세계관을 차곡차곡 쌓는다.

다르나킨과 함께 하며 윤해는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할 운명을 지녔음을 깨닫고, 점차 자신의 힘과 세계의 진실에 다가선다. ‘예언된 종말’이라는 낡은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비틀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1021’이라는 숫자 등 신비로운 미스터리와 상징이 등장하며, 권력과 자유, 기억과 진실에 대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며 서사의 스케일을 확대해간다. 하이판타지라는 외피를 두르고, 여러가지 질문들이 하나의 ‘숫자’, 하나의 ‘예언’, 하나의 ‘기억’에 수렴되며, 읽는 이들을 끝까지 붙잡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해의 ’마법‘이 존재한다. 그녀의 마법은 세계를 지배하거나 전장을 뒤엎는 ‘힘’이라기보다는 억압되었던 주체가 스스로의 내면을 인식하고 선택하게 되는 일종의 ’자각의 힘‘으로서 위력을 더욱 발휘한다. 마법은 주문을 외울 때가 아니라, 주인공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믿은 순간에 일어났으니 말이다. 언젠가 묻힌 목소리는, 결국 가장 절실한 순간에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위해 ’한반도 지역의 기병에 관한 논문을 30편 정도 읽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 그 위기를 깨고 새롭게 거듭나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구함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재앙이 닥쳐오는데도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는 소설 속 세계를 통해, 기후 위기, 인공지능, 저출생 등 현대 사회의 위기와 무관심에 대한 경고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각자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