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지인들은 리뷰 써놓은 글을 보며, 언제 그렇게 책을 읽냐고 묻곤 한다. 출퇴근 시간에도 읽고, 퇴근 후에 주로 읽으며, 회사 독서동아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함께 묵독하는 시간이나 필사모임 때 읽기도 한다. 오늘의 점심 모임에서 읽은 책은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이다.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전시를 다녀왔기에 전시 자문을 맡은 저자의 책이 더욱 궁금했다. 전시회에서 봤던 그림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에 더하여 전시회에서는 만나지 못한 작품이라도 작품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니 더욱 좋았다. 전시회에 가기 전에도, 다녀온 후에도 읽기 좋은 책이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은 표현주의의 거장 뭉크((1863~1944))의 생애에 따라 크게 5장으로 나누어 뭉크의 삶과 작품을 설명하는 구조다. 뭉크가 평생을 우울과 불안, 광기에 사로잡혀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인생 사용 설명서’ 라고 할까. 어린 시절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기는 1장에, 오슬로, 파리, 베를린를 거쳐 노르웨이로 돌아왔던 시기는 2장에서 다룬다. 3장에서는 밀리 테울로브, 다그니 율, 툴라 라스센, 에바 무도치의 뭉크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에서 '생의 프리즈' 에 관련된 작품들이 참 인상 깊었었다.
프리즈 frieze 는 건축용어로 지붕 아래 건물 윗부분을 장식하는 띠 모양의 조각이나 그림을 말한다. 뭉크는 1892년 베를린 전시에서 천장 바로 아래에 띠 형태로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중략>
뭉크는 1893년 베를린 전시에서 처음으로 ≪생의 프리즈 The Frieze of Life≫를 선보였다. 최초의 ≪생의 프리즈≫는 사랑 섹션 여섯점, 즉 <목소리>, <키스>, <뱀파이어>, <마돈나>, <질투>, <절규>로 구성되었다.
- p184
뭉크가 ≪생의 프리즈≫를 구성하게 된 것은 우연한 발견 덕분이었다고 한다. 여러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면서 그림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보다가, 앞뒤로 어떤 작품이 놓이는가에 따라 작품들 사이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생의 프리즈≫의 시작이었고, 관련된 전시에서는 작품에 프레임을 두르지 않았다. '황금색 프레임을 두르면 그 작품의 이야기가 프레임 안에 갇히게 되어 다른 작품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85)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별이 빛나는 밤' 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다. 사실 <별이 빛나는 밤> 을 들으면 난 고흐의 그림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밤은 시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어두운 밤은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되고 밤의 어두운 속성은 불길함을 상징했다. 19세기 들어 예술가들은 밤의 낭만적 속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을 처음 제작한 이는 작 프랑수아 밀레다. 밤하늘을 관찰하여 그린 밀레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별자리의 정확한 위치와 고요한 밤의 정취가 담겨 있다. 그 뒤를 이어 반 고흐와 뭉크가 차례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 p273
뭉크와 반 고흐가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살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데 색채라는 수단을 사용했으며 개인적 비극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고, 작품에 강렬한 감성을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뭉크가 반 고흐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섬뜩할 정도로 끌렸다"라는 말로 경외감을 표시한 바(p276)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반 고흐의 작품은 조용한 밤의 풍경이 아니다. 활발히 움직이는 별 무리에서 오히려 밤에 깨어 활발히 활동하는 반 고흐의 야행성 생활 습관을 엿보기도 한다. 고흐에게 밤은 활동하는 시간이자 영감이 가장 활발하게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그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했다'
뭉크는 밤하늘의 풍경이 아니라 외롭고 우울한 밤의 본질을 그렸다. 1893년 처음 그린 후, 모두 여섯 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남긴다. 뭉크의 작품은 우리 안의 내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섯 점의 작품에는 뭉크의 삶과 내면의 변화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뭉크는 예술은 진실해야 하고 진실하다고 믿었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뭉크가 노쇠하고 병들어가고 나약해지는 과정이 진실하게 담겨 있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것은 뭉크 자신이었다.'(p288)
나름 여러 책을 읽고 전시회에 다녀왔지만,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를 읽고 나니 다시 직접 그림을 보고 싶어졌다. 사진 촬영이 가능했던 전시라 찍어왔던 사진을 보며 책 속 내용을 확인해보지만 역시 직접 보는 것이 최고다. 이래서 N차 관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떠올리며 그를 광기의 화가, 고독과 절망의 화가라고 생각한다” 면서 “하지만 뭉크는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켰고, 살아 있는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81세까지 장수하며 무려 2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