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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씨쨩와 밤톨군의 서재
  • 다정한 이웃
  • 서수진
  • 15,300원 (10%850)
  • 2024-07-24
  • : 673

『다정한 이웃』 은 '시드니의 크리스마스가 보통 그러하듯 그해의 크리스마스 역시 무더웠다' 로 시작한다. 호주인과 결혼해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의 이력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전작들처럼 경계인, 이방인의 삶을 작품에 담았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한인 여성인 한나, 애슐리, 미아, 도은. 이 4명의 삶이 12월 25일의 'Christmas Day' 부터 1월 1일 'New Year's Day' 까지의 8일 동안 교차한다. 4개월에 걸쳐 리모델링을 마친 도은의 집에 이들이 모인다. 부부 동반 파티였지만 도은의 남편인 후이는 보이지 않는다. 도은은 후이의 행방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온 이민자들은 '한국인은 한국인이 등쳐먹는다'라는 말을 들으며 주위를 경계하는 시기를 거친다. 거기다 외국까지 와서 한국인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해져 현지 친구를 사귀려 애쓴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현지인과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타국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는다. 



외롭다. 그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통하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처음의 결심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다. 한국인의 마음을 아는 건 한국인밖에 없다고 생각을 180도로 바꾼다. 그간의 실패와 고독이 불쏘시개가 되어 단박에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어렵게 얻은 친구를 놓치기 싫은 나머지 그를 바다 건너 두고 온 가족을 대체할 존재로 승격해 버린다.


 - p42



주변 이웃들이 독일로, 말레이시아로,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들 또한 소설 속의 문장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맞물린다. 불안하고 외로운 타국살이에서 가장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이 교회란 이야기도 떠올랐다.

후이의 빈자리로 시작된 미묘한 어긋남 속에 4명의 이야기가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그들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던 시선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숨겨왔던 진실, 그리고 서로가 외면했던 진실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한달 전 토요일, 애슐리가 한나의 생일이라며 가까이 지내는 부부들을 모두 초대했던 장면이 교차된다.



자신의 생일도 아닌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며칠간 음식을 준비했을 애슐리, 아이처럼 순수하게 좋아하는 한나. 기쁜 소식을 감추면서도 행복을 숨기지 못하는 미아. 우리가 이렇게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누구에게도 진심을 내보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민 사회에서 좋은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p145



네 명은 베트남인, 호주인, 한국인의 남편과 함께 하고 있다. 결혼을 한 이도 있지만 사실혼 관계인 커플도 있으며 각 가정은 저마다의 말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야이를 임신한 미아의 동거인인 에이든은 결혼을 원하지 않고, 마약에 절어있다. 그가 하는 마약의 출처는 도이의 동거인인 후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애슐리의 남편은 오픈 메리지를 주장하며 외도를 일삼는다. 도이의 남편인 후이는 애슐리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문자를 보내며 스토킹을 벌인다. 한나의 남편인 경환은 도박 중독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달 만에 이 '다정한 이웃'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각자 외면해왔던 어떤 것들이 크리스마스 이후 일주일 사이에 터지면서 그들의 일상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로 2020년 한겨레 문학상 수상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 소설에서는 호주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에 대해 그려보고 싶어요. 욕심을 부릴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많은 삶을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코리안 티처’처럼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로 구상하고 있는데, 다양한 형태로 호주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며 살아가는지 그려보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 했었다. 『다정한 이웃』 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아닐까.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시작에는 시드니 한인 목욕탕의 세신사가 있었다. 세신사로부터 시작한 이야기에서 세신사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소설은 몇 번이고 뒤집혔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작가에게도 편집자에게도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히기를 바란다' 라고 전하던 작가. 세신사로 시작했던 소설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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