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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씨쨩와 밤톨군의 서재
  • 애매한 사이
  • 최미래 외
  • 15,300원 (10%850)
  • 2024-07-10
  • : 438

앤솔러지(혹은 앤솔로지, Anthorogy)는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앤톨로기아(혹은 안솔리기아, anthologia)가 원어로,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모아놓은 것을 뜻한다. 기존에는 출판사들이 신춘문예, 문학상 수상집 등 상을 받은 작품들을 모아 책을 출간했기에 ‘선집(選集)’으로 분류됐다. 최근에는 테마 앤솔러지, 즉 주제나 시대, 혹은 배경 등 특정의 기준에 따른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것이 추세다.

'당신이 써나갈 글 한 쪽 한 쪽을 사랑하겠다' 란 뜻의 애매(愛枚) 는 시인, 소설가, 출판인으로 구성된 문학 동인이다. 비록 애매(曖昧)한 모임이라 '애매'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세상사 무수히 많은 애매한 지점들을 각자의 시선으로 발견하고자 한다는 포부를내보인다. 『애매한 사이』 는 같은 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시인, 출판인이 되어 함께 계속 읽고 쓰는 문학 동인 ‘애매’의 앤솔러지다.



'애매'의 자음인 ‘ㅇㅁ’에서 시작한다는 느슨한 규칙 아래 모인 6명의 글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제각각 다른 시선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내보인다. 'ㅇㅁ' 채집한 단어들을 소재로, 한 작가의 단편소설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애매한 코멘트>라는 코너에서 다음 작가가 편지글의 형식으로 작품에 대해,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작품인 최미래 작가의 <얕은 바다라면> 의 'ㅇㅁ' 은 '입맛'이다. 풍족하지 않지만 서로의 결핍을 맞대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연인을, 자연스럽게 닮아갔던 입맛으로 추억하는 화자는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란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다, 인간, 가난.' 란 문장이 소설의 초반에 한 번, 그리고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왜 헤어졌을까.


소설의 시작의 펼침면에 오른쪽 페이지에는 제목이 나와있고, 왼쪽 페이지에 관련된 단어가 나와있다. 나는 일부러 단어 페이지는 읽지 않고 단편소설을 다 읽은 후 단어를 유추해보려고 했다. 그 중 'ㅇㅁ' 단어 유추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작품은 최현윤 작가의 <너희 소식> 이었다. '매일 일어나고, 매일 살고, 매일 옮겨가고, 매일 너무 빠르게 도시 몇 개를 통과' 하는 일상 덕에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화자. 와. 이 문장은 오늘의 내 모습이잖아!


오늘도 비가 오고, 앞으로 며칠간 비가 올지도 모른다.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왜 굳이 그래야만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정해진 대로 따른다. 다르게 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밖에 안 된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그 말을 계속 생각한다. 어쩔 수 없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밖에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 그러니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다. 틀려먹은 것만 같다. 그래도 눈을 뜨고 있다. 주어진 것을 해야한다. 해야 하는 일이다. 


- p128, 최현윤 <너희 소식>


최현윤 작가의 글에 대해 이선진 작가는 "있잖아.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너는 마치 네 삶이 0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자조하지만, 나는 언제나 네가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검게 물들이는 방식으로 온전한 다정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라고 다정한 코멘트를 단다. 나는 코멘트까지 읽고 앞으로 돌아가 <너희 소식>을 다시 읽고서야 모든 것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미친 세상”의 긴박함과 그곳에서 끝없이 갱신되는 얼굴들, 소식들, 장면들을 마주치는 한 개인의 무상함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 6인의 에세이와 ‘텔레스트레이션’ 게임을 변형한 ‘애매스트레이션’ 게임이 실려있어,애매 동인의 모습을 슬쩍 상상해보게 한다. 민병훈 작가는 추천의 말에서 '문학 동인은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면서, 의미 생산이 넘치는 이 시대에서 표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모호한 상태인 '애매' 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다. 저자들은 'ㅇ'의 유연함과 'ㅁ'의 모남 사이에 있으며, 동시대와의 유연한 관계, 작가적인 모난 개성,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다른 무엇이 아닌 각각의 소설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뒷 표지에 나와 있는 저자들의 멘트 또한 놓치지 마시길. 자신의 작품 속 'ㅇㅁ' 에 대한 이야기와 창작의도를, 독자로서의 느낌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문학 동인 '애매'의 작가들을 응원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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