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을 소재 삼아 새로운 사고를 창출하는 작업에 특히 뛰어나다'라고 소개되곤 하는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이 늘 궁금했었다. 그는 대대로 언어학자와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자랐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오페라 작곡자,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의 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인생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에서 음악을 모티프로 활용해왔다. 나는 이제 그 호기심을 푼다.

키냐르는 우리가 잊고 있던 17세기의 음악가들을 소환하고, 사랑, 음악, 바다, 유혹,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1652년, 류트 연주자 샤를 플뢰리 드 블랑크로셰(Charles Fleury de Blancrocher, 1605~1652)는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기리며 4개의 톰보 를 바치기로 한다. 작가는 III장 <음악가들> 편에서 블랑슈로슈와 그의 친구이자 하프시코드(harpsichord) 연주자 요한 야콥 프로베르거(Johann Jakob Froberger, 1616~1667)를 등장시키며 그 이야기를 가져온다.

야콥 프로베르거가 직접 악보 머리에 써넣은 정확한 제목은 이러하다. <블랑슈로슈 씨의 죽음에 바치며 파리에서 지은 이 추모곡은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재량껏 매우 느리게 연주할 것.>
- p134
류트에 대한 이야기는 블랑슈로슈의 스승이었던 드니 고티에로 이어지고, 그가 등장하는 그림 한편도 소개된다. 가운데 류트를 들고 있는 인물이 드니 고티에다.

작가는 『사랑 바다』 를 소설이라 부르지만 어느 순간 논픽션처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해 찾아보고, 음악을 찾아보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독백과도 같은 함축적인, 시적인 문장을 만나 오래 시선이 머문다. 문장이 노래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몸을 발견하는 일, 불안해하거나 조심스러워하거나 수줍어하며 이루어 내는 그 발견보다 더더욱 감동적인 일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사랑하는 몸이 다시 나타나는 걸 보는 기쁨이다.
이전과 비슷하고, 여전히 비할데 없이 향기롭고, 저항하기 힘들 만큼 매혹스러우며, 생생하고, 따뜻하며, 자신만만하고 숭고한 그 몸을 다시 만나는 건 행복이다.
그 몸에 똬리를 트는 건 황홀한 일이다.
어쩌면 바로 거기서 음악과 사랑이 만나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말하지도 않고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암호화하고 다시 찾아낼 뿐이다.
그것은 뇌의 그늘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살려 낸다.
그것은 뒤로 돌아가 돌진하고, 한 악장 한 악장 천천히, 그러다 별안간 빠르게 나아가며 마음을 뒤흔든 모든 것을 되찾는다. <중략>
음악은 특출나게 감동적인, 어딘가 미쳐 버린 인식같다. 세상 이전의 세상에 있던 것, 되찾으리라 더는 기대하지 않던 것과의 아연한 재회 같다.
- p195
책 속의 등장 인물들은 서로 반응하고, 중첩되고 그리고 분리된다. 각 장의 시점은 불현듯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뀌기 일쑤다. 몇 줄만 읽어도 관점이나 시간,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악에서는 류트가 사라지고, 비올라가 소멸하며 피아노가 부상한다. 요한 야콥 프로베르거가 '프랑스 모음곡' 형식을 처음 작곡한 이후 한 세기가 지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그 형식을 이어받는다. '프로베르거가 이 새로운 형태의 협주 소나타를 구축한 건, 아니 부서진 듯하고 조각난 듯한 이 새로운 형태를 내놓은 건 류트 연주자 블랑-로셰, 아치류트 연주자 하튼, 리라 연주자 하노버, 그리고 빈과 로마와 아비뇽에서 그를 사사한 스승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가르침 덕이었다.' (p504)
책 소개에서는 『세상의 모든 아침』 과 『음악 혐오』를 한데 모은 것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두 권을 이어 읽어보면 『사랑 바다』 가 좀 더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