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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미지
  • 조세핀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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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5
  • : 16,310

#데미지 #조세핀하트 #녹색광선

 



줄리에트 비노쉬와 제러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영화 <데미지>가 개봉된 지 30년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금기와 파격적인 문제작이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들의 연인을 사랑한 남자, 아들과 아버지를 동시에 사랑하는 여자, 충격적인 베드신으로 기억되는 작품에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건 몰랐다. 소설로 보는 『데미지』는 어떨까. 영화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으니 안나가 왜 그렇게 욕망에 집착했는지 그 실체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가진 남자. 부와 명성은 기본이고, 아름다운 아내, 완벽한 아들과 딸, 의사에서 정치인으로서 미래의 수상이 될 재목인 남자였다. 그가 아들의 연인을 욕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파국과 그 심리를 제대로 담은 소설이었다. 안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 아버지처럼 건조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파티에서 안나를 마주치며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나간 삶을 참회하며 죽을 때까지 안나를 욕망하며 그리워하지 않을까.



 

녹색광선에서 펴낸 에로스 시리즈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가 그 첫 번째를 차지했다. 러블리한 표지로 근친상간적인 욕망에 굴복한 남자의 ‘비극의 테마’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그렸다. 안나를 좇는 남자도, 안나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피터도,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는 마틴도 마치 불나방을 쫓듯 비극으로 치닫는다. 독자는 그를 나무랄 것이다. 아들의 연인을 탐닉하게 되는 그가 아들의 삶을 위해 멀리 떠나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소설 속에서 그의 아내 잉그리드가 말한다. 왜 일 년 전에 죽지 않았느냐고. 스스로 죽었으면 이러한 비극은 생기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저 욕망에 이끌려 안나를 바라볼 뿐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그는 안나와 만나면서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다.






 

시간이 흘러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그가 '50세에 죽었다면 대단한 명성은 없어도 의사요, 자리 잡은 정치가로 인생을 마감했을 거'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가족을 파탄에 빠트렸으며, 스스로 비극의 현장에 섰다. 누군가는 이 소설이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가 또한 소설에서 ‘이 이야기는 그저 러브스토리에 불과하겠지.’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단순한 러브스토리는 아니다. 파멸에 이를 걸 알면서도 안나 바턴에게 향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남자의 넋두리일 뿐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마틴이 죽었을 때,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마치 일 처리를 하듯 상당히 차갑고도 깔끔하게 진행됐다. 남자는 앤드류에게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 사퇴와 일의 마무리를 맡기는데,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라고 보기 어렵다. 냉정하게 판단하여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듯 업무 지시를 내리고, 아내와 딸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은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 죽지 않았느냐고 울분을 토하는 잉그리드 앞에서 그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는 말이다. 거짓말을 일삼았던 남자가 아들의 죽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을 아낄 뿐이었다. 평생 보고 싶지 않다는 말에 그러겠다고 말하고, 딸 샐리를 만나도 되겠느냐고 묻고 묵묵히 답변을 들을 뿐이었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탐닉하고 빠져드는 남자를 통해 상처가 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주가 어디까지 향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나에게는 치유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누구도 사랑할 수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진정한 자유를 깨닫는 일. 그게 남자를 파멸에 이르는 길이더라도 제어할 수 없었으리라. 금단의 욕망과 이로 인한 죽음. 이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탄에 젖은 한 남자가 걸어간다. 때로 그의 앞에 안나로 보이는 여성이 등장하겠지만, 그저 바라볼 뿐일 것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상처를 입은 인간이 되어 묵묵히 걸을 것이다. 아직은 살아 있다고 느낄 것이다.

 

 

#데미지 #조세핀하트 #녹색광선 #영미소설 #영미문학 #녹색광선해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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