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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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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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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양귀자 #쓰다

 

양귀자 작가의 소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대적 배경이 달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며 인물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배어있고,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이웃이었을, 지나간 부모님 세대의 얼굴이었을 그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

 

나성여관에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다. 대학을 포기한 삼수생 우연이 그중 하나고, 오로지 돈만 밝히는 나성여관의 주인 어머니 그리고 미국의 누나가 불러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아버지, 운동권에 있는 형, 세상 화려한 것을 꿈꾸는 누나가 그들이다. 이들 가족뿐 아니라 나성여관의 방 한 칸에 기대어 사는 노인과 노동자로 사는 찌르레기 아저씨가 주요 손님이며 우연과 소통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우연의 시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부모의 기대치와 달리 대학에 낙방하는 그 마음과 용돈 때문에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공부 잘하는 형과 다른 상황에서도 그가 느끼는 자격지심이 안타까웠다. 친구들과 만나 서툰 삶을 논하는 장면들을 보고는 이십 대만이 가지는 낭만을 상상했다. 모두 미래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십 대 후반, 혹은 이십 대를 거치는 방황이었다.






 

지금과 달리 그 시절에는 휴대폰이 없었다. 여자 친구에게 전화라도 하려면, 누구를 바꿔 달라고 해야 했고, 받을 전화가 있으면 전화기 옆에서 떠나지 못했다. 언젠가 남자 친구와 통화하느라 거실 식탁 밑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여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 방으로 가지도 못하고, 거실 한편의 집 전화기 선을 길게 늘어뜨려 숨어서 통화하곤 했었다. 연인이 있다는 걸 절대 숨길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할까.

 

예전에는 낭만이란 게 있었다, 고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떠올려 보니 맞는 말 같다. 연인의 전화가 올까 봐 안방 문밖을 서성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집에 하나 있는 전화를 통해야만 가능했다.

 

운동권에 있었던 형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를 잘해 유명한 대학에 갔지만, 집에서는 만날 수 없는 형이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고, 한동안 집을 떠나있기도 했다. 그런 형이 몰래 데려온 사람이 있다. 송장이라고 부르는 이정하라는 사람이었다. 형과 같이 운동권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남영동에 잡혀가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 일로 고문을 받아 산송장이 되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걸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 우리는 고문 기술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시대의 아픈 역사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려, 누군가는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그런 행동을 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형이 그 시절 대학생을 대표하는 인물을 가리켰다면, 찌르레기 아저씨는 그 시대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가족을 위해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왔다.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잘살아 보겠다고 분투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사기를 당해 가진 돈을 잃고, 돈이 가까워 아픈 아이를 방치했던 아내,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갈래갈래 찢어졌다. 찌르레기 아저씨의 일기, 형에게 보낸 부치지 않은 편지 등 90년대의 역사가 인물들 속에 제각각 살아났다.

 

방은, 그것이 제아무리 단순한 치장을 하고 있다 해도 어김없이 그 주인의 정신과 닿아 있다. 주인 없는 방에서는 더욱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239페이지)

 

살아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544페이지)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 그러나 읽지 않은 책.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성여관에서 움츠렸던 사람들의 새로운 여정을 지켜보고 싶은 것. 우연이 어디선가 잘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모두가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어디선가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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