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황석영 #창비
생명에 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주로 인간을 거론한다. 그것도 아니면 동물 정도다. 하지만 자연 속의, 인간과 동물이 죽고 새로 태어나도록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나무일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서 죽을 때까지 나무는 한자리에서 지켜본다. 어디 인간뿐일까. 새들이며 동물들이 나무에서 쉬었다 가고 또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은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저 잠시 자연을 누리다가 사라질 뿐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않은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개똥지빠귀라는 새였다. 추운 나라에서 남쪽 나라로 날아온 개똥지빠귀의 뱃속에는 팽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빈터에 떨어져 죽었다. 이른 봄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에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여름이 되자 줄기가 나고 잎사귀가 자라 점차 나무의 모습이 되어갔다. 큰 나무 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산다. 개똥지빠귀의 무리가 오고 가며 팽나무 가지에서 쉬고 배가 고프면 열매를 먹는 동안 팽나무의 나이테는 겹겹으로 쌓인다. 팽나무가 육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조선은 천주교 박해와 동학 운동을 겪고 새만금 개발까지 지나온다. 팽나무는 할매 나무가 되어 그늘이 되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준다.
『할매』라는 제목 때문에 어렸을 적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았나. 작품 속 할매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육백 년을 같은 자리에서 지켜온 팽나무를 가리킨다. 자연의 순환과 격동의 한국사를 망라한 작품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팽나무는 모든 걸 지켜본 존재다. 정지아 소설가는, 이 소설은 ‘생명’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군산의 팽나무는 고유한 생명을 이어오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서낭당이라고 하여 나무를 향하여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말하는 팽나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적산가옥과 근대건축물을 보기 위해 군산을 방문하였으나,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설계한 장소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소설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및 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도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며 우리의 염원을 말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팽나무의 존재는 어쩌면 ‘아서왕의 전설’에서의 멀린과 비슷하다. 즉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서 격동의 시기를 바라본 팽나무는 우리들의 할매와 같다.
유 신부는 혼자서 폐허의 길 흔적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동이 훤하게 터서 낮게 깔린 구름 틈새로 주황빛 아침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마을 터의 가장 안쪽 철망과 대숲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검은 몸을 뒤틀고 서 있는 고목이 보였다. 방지거 신부는 아! 하며 잠깐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팽나무에 안기듯이 두 팔을 벌리고 뺨을 대보았다. 그때 그는 분명히 나지막한 쉰 목소리를 들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216~217페이지)
이 책을 읽고 하제 당산마을의 할매 나무인 팽나무 사진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6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할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골네 뿐 아니라 하제 마을 모든 사람의 염원인, 뿌리 깊은 인연의 고리를 보게 되었다.
생명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또 스러진다. 스스로 갯벌에 들어가 칠게의 먹이가 된 인간, 그것을 먹은 칠게를 새가 잡아먹고, 새는 나무 아래서 생명을 다한다. 새의 주검은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나무의 뿌리를 굳건하게 한다. 생명의 순환 과정을 엿보는 듯하다. 마치 불교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작품으로 인해 새만금에 새로운 활기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작품 하나가 주는 반향을 기대해 봐도 될까. 사라지는 갯벌, 자연의 위기에서도 버티고 선 할매 나무의 저력을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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