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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첫 단편집이 출간된 이후 평단의 찬사를 받은 클레어 키건은 이후 출간된 작품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데뷔작 이후 27년이 지났지만 출간된 작품은 모두 다섯 권. 그 모두를 다산책방에서 출간했다. 다섯 번째 출간된 작품이 바로 데뷔작 『남극』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남극」은 1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출간된 작품이자 남자와 여자의 관계 혹은 차별을 말한 『너무 늦은 시간』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라는 다분히 역설적인 문장에서 이후에 일어날 일과 여자의 지위 혹은 차별을 예상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차려입고 바에서 술을 시키는 여자를 상상해본다. 한 남자가 다가올 것이고 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짜릿한 밤을 상상한다.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여자는 자신이 상상했던 최악의 지옥을 경험한다.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가 있는 남극. 영원한 지옥을.

 



열다섯 편의 단편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과 현재의 불합리함과 차별에 대하여, 지금과는 다른 미래의 여성상을 말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는 남자와 여자의 일이 극명하게 갈리는 거에 관한 불편한 감정을 나타낸다. 또한 사랑을 위해 참고 살아왔지만, 여자를 차별하는 남편의 가혹함을 고발하고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변하지 않을 관계라면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진취적인 여성상을 나타낸다. 아마 이러한 여성들이 있었기에 여성의 지위는 과거와 달라졌을 것이다.



 

반대로 사랑을 쟁취하려는 여성도 보인다. 「키 큰 풀숲의 사랑」에서 코딜리아는 사랑에 온전히 마음을 여는 인물이다. 강풍으로 과수원의 사과가 떨어지자 대문 바깥에 ‘사과’라고 쓴 나무 표지판을 만들었다. 의사가 차로 들어와 삽으로 땅을 파 사과를 쓸어 담고 얼마간의 사과를 가지고 갔다. 이후로 의사가 다시 왔다. 코딜리아와 의사는 서로 편지로 사랑을 속삭였다. 이런 경우 남편에게 무심했던 아내도 진실을 알게 되는 법. 의사는 코딜리아에게 10년 후 돌아와 함께 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말을 믿은 코딜리아는 10년 동안 은거의 삶을 보낸 후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플랫슈즈의 끈을 묶은 다음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의사와 의사의 아내, 코딜리아가 스트랜드힐에 마주 앉아 누군가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이처럼 연인들은 자주 현실에 부딪친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허무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입으로 바람을 불편 훌훌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작품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에서 『자메이카 여인숙』을 좋아했던 여자는 딸이면 ‘대프니’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을 보냈던 밤을 떠올린다. 과거로 걸어들어온 여자는 과거의 남자를 만나 ‘대프니’라는 이름이 어떠냐고 묻는다.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이라는 말하자 그에게 작별을 고하며 다짐한다.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 (168페이지,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 중에서)



 

클레어 키건이 자랐던 아일랜드는 과거 우리의 남존여비 사상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과 「남자와 여자」에서 불합리한 차별에 대하여 말한다. 「남자와 여자」에서 엄마와 딸은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오빠는 난롯가에 앉아 공부하는 척을 한다. 크리스마스 아침 일어난 건 엄마랑 딸 뿐이다. 칠면조 속을 채우는 동안 아빠와 오빠는 선물로 받은 다트판으로 놀이를 한다. 딸이 엄마에게 ‘왜 아빠랑 오빠는 아무것도 안 해요?’ 라고 묻자 ‘남자니까.’라는 말을 듣는다. 가족끼리 모여 파티에 갔다가 돌아오는 밤, 예쁘게 차려입은 엄마가 대문을 열기를 바라고 아빠는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는다. 그런 아빠를 향하여 차별을 외치는 소녀를 본다.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한 엄마가, 방금 돌면서 빨간 치마를 펄럭이는 엄마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또 아빠가 차에서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집 아빠들이 아내의 외투를 들어주고, 문을 잡아주고, 가게에서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필요없다고 해도 초콜릿과 잘 익은 배를 사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209페이지, 「남자와 여자」 중에서)

 



수많은 편견과 차별 속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강력한 주장으로 이루어낸 여성 평등의 결과를 보는 것 같았다. 차별과 여성 혐오의 불협화음을 위해 싸웠던 여성들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소녀의 엄마가 대문을 열기 위해 차에서 내린 것 같지만 어떤 여성도 하지 않던 운전을 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경험과 상상,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갈 보석 같은 열다섯 편의 소설이었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 이 모든 작품에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문학 작품 속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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