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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눈을 마주치거나 몸이 닿았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작품은 꽤 있었다. 하지만 베인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피가 나는 상처에 손을 넣으면 세균이 묻는 건 당연하고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베인 상처에 손을 댈 일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정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쁜 일에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테고, 그 사람은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상처 읽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하나이며, 다른 한 사람은 상처 읽는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사십 대의 여성으로 아가씨의 독서 선생님이다. 저택에 갇혀 있는 아가씨와 함께 책을 읽고 책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이라는 설정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두 여성 화자 외에 그들의 대상이 되는 나쁜 남자 ‘문오언’이라는 이름뿐이다. 이 이름조차 외국 이름처럼 보인다. 오언은 아가씨에게 상처를 읽게 하는 남자다. 이십 대의 상처 읽는 아가씨와 아가씨의 독서 선생님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그들이 쓰는 말투에서 화자를 분별할 수 있다. 아가씨가 어떻게 상처를 읽게 되었는지 선생님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갇혀 지내다시피 해서 다정함에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선생님은 아가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취하긴 했다. 아가씨는 독서 선생님에게, 독서 선생님은 다른 존재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야 했다.

마음을 읽는 일은 고통이 따른다. 아가씨 앞에서 몸에 상처를 내 피를 흘리며 마음을 읽어보라고 한다면 알고 싶지 않은 일까지 몰려오지 않겠나. 마음을 읽는 사람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그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주축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겠다. 소설을 읽으며 상처를 헤집어 그 마음을 읽게 하는 나쁜 남자가 도리어 자기의 마음을 읽어달라는 장면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 남자는 어떤 마음인가. 자기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스에게 처음 면접 보러 간 날에 어떤 장면을 보았다. 거구의 남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를 헤집어 아가씨에게 남자의 마음을 읽게 했다. 싫은 내색을 하지만 별수 없이 그 남자를 읽어 보스에게 전해주는 아가씨를 보았음에도 입주 독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의 죽음, 시부모님의 죽음 뒤 빚을 갚고 집이 필요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눌러앉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도망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신고를 했겠지. 목적이 있었을 거라고 유추하게 되었다.
고전 문학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용 구절이 많다. 상처를 헤집어 마음을 읽는 부분에서 『베니스의 상인』은 피할 수 없는 주제다. 친구를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빚을 갚지 않으면 심장 부근 1파운드의 살을 베는 조건을 내걸었던 이야기다. 포샤의 현명한 재판으로 기억하는 소설 말이다.
네가 읽은 것에 대해 생각하면 돼. 좋고 싫고 같은 것 말고 생각을 하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과 판단과 응용. 작가는 왜 인물의 감정을 안 보여주고 인물이 바라보는 풍경만 실컷 펼쳐놓고 지나가버릴까 하는 것.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건 이 장면이 슬프다든지 이 서술이 불쾌하다는 호불호 차원의 감상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슬픔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그것을 둘러싼 배경을 분석하고 그 염오가 발휘하는 효과는 과연 무엇인지를 다각도로 생각하기 위해서야…… (61~62페이지)
책을 읽는다는 것.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우리는 책을 읽으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문학 작품 속에서 우리의 삶을 대신 경험하며 그 의미를 파악하려 질문을 건넨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려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해 생기는 고단함. 때로 그 감정은 이별을 동반하는 수도 있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하는 것도 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도통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했다. 구병모 작가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던 작품이었다.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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