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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에 대한 홍보 글을 보고 구매했다. 여행자의 눈으로 풍경을 그리고, 풍경에서 느꼈던 것들을 글로 풀어낸 책이란 게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구입했던 시기에 여행을 꿈꾸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마치 드로잉에 나타난 장소에 있는 듯한 마음을 가졌다. 떠나고 싶은 마음에 하나의 위로가 되었던 글이었다.
에세이의 부제가 먼저 들어온다. ‘비우고 바라보고 기억하는 나의 작은 드로잉 여행’이라는 문장이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혹은 마음이 복잡할 때 들여다보면 좋을 책이다. 마음이 어지러운 출근길, 책을 펼치고 앉아 글과 드로잉을 함께 보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그림만 들여다보았다. 미지의 장소를 상상해보고 작가가 느꼈을 감정에 공감했다. 작가가 느낀 감정이 마치 내가 느꼈던 감정인양 이입해 마음의 평안을 느꼈던 것 같다.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에 빠져들었다. 사진이나 유화가 아닌 드로잉은 어쩐지 더 섬세한 그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림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하게 되었달까. 파리의 몽마르트르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스툴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 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리는 화가를 상상해본다.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을 그리고 싶지 않았을까. 문득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전남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을 거닌 적이 있다. 성곽길을 돌고 성안을 거닐며 그 시절을 여전히 살고 있는 듯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던 때, 그때를 떠올렸다. 돌담과 흙벽, 초가집의 이엉까지 과거의 한 장소에서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산 지니마노의 돌벽과 작은 화분들을 그린 그림에서 먼 나라에서 보는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익은 감정 혹은 안식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비로소 떠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나. 익숙한 장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낯선 나라 낯선 장소에서 떠올리고는 그리워한다.
해 질 무렵 제주의 다랑쉬오름을 오르며 바라보는 풍경에서 아픈 역사인 제주 4.3을 떠올리며 썼던 글과 그림을 바라본다. 그 풍경을 그리며 동시에 고통과 상처를 느꼈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억해주어야 한다. 비록 가끔이라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겠나. 고통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자꾸 기억하고 떠올려야 한다.
기억하고 살아내며 삶은 계속된다.
늪이 연꽃을 피우고,
수풀 그늘에 자리 잡은 악어들이
한가롭다.
스페인 이끼 우거진 물길로
배가 조용히 나아간다. (147페이지)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늪지대에 떠내려온 것들을 바라보며 잃어버렸던 것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 않았나 싶다.
여행자는 낯선 장소에서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그동안 감춰두었던 감정들, 아팠던 마음들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장소에 얽힌 역사를 기억한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그리는 작업을 한다. 여행자가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그걸 읽은 독자들 또한 작가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독서와 미술이 주는 효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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