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소설에 수차례 반복되는 문장이다. 1960년대 공산주의 체코에서 주인공은 35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한다. 인류의 정신과 지혜가 축적된 책이 압축되어야 하는 세계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주인공은 책을 압축할 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책을 한 권씩 구출해낸다. 소설은 그런 주인공을 통해 진정 인간적인 것에 대해 묻는다.
도대체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여러 명이 죽어나가지만 끝내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것?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출하다가 자신도 죽는 것? 교장에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모두를 살리고 자신이 죽는 것? 분명 숭고한 희생이다. 이건 인간만이,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찌 생각하면 무언가를, 심지어 자신까지 초월한 인류애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그런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내던질 용기가 없다.
소설은 거창하지 않은 인간적인 것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 애인은 두 번이나 똥 때문에 (...) 수치를 겪는다. 주인공은 똥 좀 옷에 묻혔다고 애인을 떠나지 않는다. 그건 "인간적인, 지나치게 인간적인 일(44)"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인이 수치심을 못 이기고 주인공을 떠난다. 수치심 또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니 떠나는 그녀를 어찌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소설 밖 우리도 우습고 별것 아닌, 그래서 몹시 인간적인 이유로 헤어지곤 했다.
독백 내내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주인공이지만, 우리는 그의 삶이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는 걸 안다. 그는 왜 사랑했던 집시 여인의 이름을 잊었을까. 그토록 비인간적인 것을 싫어했던 그가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불행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스스로 용서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잊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을 때가 있다. 타인에게 베푸는 용서만큼이나 불가항력의 불행에 대한 망각도 인간적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선 고통과 고독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삶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인간적 세상의 너무나 인간적인 장면이다. 고통 그 자체가 몹시도 인간적이기에 그걸 목도하는 우리는 같이 눈물지을 수밖에. 때때로 고통만이 삶을 증명하는 걸 우리는 안다.
침대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내 가슴팍 위로 떨어져 미끄러지듯 달아나 몸을 숨겼다. 내 가방이나 외투 호주머니에 두세 마리가 딸려온 게 틀림없었다. 마당에 변기 냄새가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보니 곧 비가 퍼붓겠다 싶었다. 술과 노동으로 멍해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내 지하실을 청소하며 생쥐들을 희생시킨 참이었다. 그저 책이나 갉아먹고 폐지 더미에 뚫린 구멍 속에 살며 그 작은 둥지 안에서 새끼들을 낳고 키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짐승들인데. 추운 밤이면 내 품안에서 공처럼 웅크렸던 내 어린 집시 여자처럼 몸을 사린 생쥐들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8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