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불고기 전골을 먹었습니다. 한가운데에 맛있는 불고기가 놓이고, 그 주위를 신선한 버섯들이 둘러쌉니다.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한소끔 끓여서는 버섯 먼저 꺼내 양념장에 찍어 먹습니다. 잘 익은 새콤한 백김치에 불고기를 얹어 먹으니 이 또한 궁합이 잘 맞습니다. 입에 맞는 음식과 정다운 사람이 함께한 점심 덕에, 뭉근한 화롯불로 데운 것 마냥 종일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 속에는 사람의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통해 우리는 손길에 담긴 정성을 함께 맛봅니다. 여기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에 얽힌 포근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식이 말을 걸다>(상상공방. 2008)의 따듯한 요리사 권순이 씨는 음식이 내는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그 소리에 담긴 인생찬가를 소박한 글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음식은 온갖 추억을 우려낸 육수에 담가 한소끔 끓여낸 전골입니다. 찬찬히 씹어 먹다 보면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집니다. 가끔은 달큰하고, 어떨 땐 짭짤하고, 싱겁기도 하다가 눈물이 핑 돌게 맵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처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맛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들은 어느새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
내 엄마는 소문난 요리사입니다. 계량컵, 계량숟가락 같은 것 없이도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춥니다. 뚝딱뚝딱 있는 재료로 만든 요리도 푸짐하고 맛깔스럽습니다. 식당에서 한 번 맛본 음식은 집에 와서 더 맛있게 만들어내고, 몇 번만 먹어보고도 음식의 재료를 척척 알아냅니다. 절대 미각 장금이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오늘 <음식이 말을 걸다>에서 보았습니다.
그냥 요리책이 아닙니다. 요리 동화입니다. 푸근한 웃음 짓는 엄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맛있는 이야기입니다. 신선한 재료들이 여기저기서 조잘대는 소리는 엄마의 주방에서 나던 바로 그 소리입니다. 어제는 “두툼두툼”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고, 오늘은 “바그르르” 끓은 와인에 손질한 치즈를 넣은 퐁듀향이 고소하게 풍깁니다. 채 썰어 놓은 풋고추는 “야드레” 윤기가 흐르고, 막 쪄낸 찰옥수수는 “쫀득하니 달달한” 맛이 일품입니다.
분주한 주방 속에서 29가지 요리가 탄생했습니다. 어느 하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촌스러우리만큼 소박한 음식들뿐입니다. 맨 마지막에 내놓은 음식은 그중에서도 으뜸갑니다. 잘 지어진 흰 쌀밥 한 그릇이 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헛헛하세요? 외로우세요?” 물으며 “여기 따뜻한 참마음 들어간 밥 한 그릇 드셔 보세요.”랍니다. 그런데 반찬 없이 먹는 밥 한 공기가 참 맛있습니다. 한 상 잘 얻어먹었습니다.
지금 헛헛하신가요? 그럼 권순이 씨의 소담한 밥 한 그릇 맛보세요. <음식이 말을 걸다>는 딱 흰 쌀밥 같은 책입니다. 그것도 야드레 윤기가 흐르는 알맞게 차진 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