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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황홀:D
  • 우리 각자의 미술관
  • 최혜진
  • 13,500원 (10%750)
  • 2020-05-04
  • : 2,877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에 꾸준히 질문을 보내온 작가, 최혜진의 <우리 각자의 미술관>. 이 책의 주인공은 멋진 그림이나 뛰어난 화가들이 아니다. 그림 앞에 선 독자의 마음이다.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책에는 작가가 살뜰히 고른 질문 목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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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 인물을 관찰해보세요.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 “그는 지금 어떤 느낌/감정일까요? 만약 그림 속 인물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하나 그려져 있다면 어떤 대사를 채워 넣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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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인물에게서 출발한 질문은 결국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다.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는 당신은 지금 어떤 느낌/감정이 드나요?”라고 묻기 위해, 괜찮아 보이는 정답을 찾느라 독자들이 자기 느낌을 소외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이 책을 썼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 작은 책은 보기보다 크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있으려나 미술관'에 입장하게 된다. ‘나를 개입시키면서 그림과 만나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혜진 작가가 지은 상상의 미술관이다. 미술관 사용법을 안내하는 가이드도, 관람 시간과 관람 대상이 적힌 안내문도, 전시실을 안내하는 지도도 담겨 있다. 현재 관람할 수 있는 전시는 ‘여섯 가지 마음의 반응 展’. [걱정과 선입견 보관소]에 무거운 짐을 맡기고 ▶ [맛보기 감상실]을 지나 ▶ 제1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독자는 작품과 역동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도슨트는 없다. 대신 독자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는 섬세한 질문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차분히 적다 보면, 그림과 내 마음 사이에 촘촘하게 다리가 놓인다.


책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꼼꼼히 답을 적었다. 그림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도 그림을 즐기고 싶어서, 내 느낌을 소외시키고 싶지 않아서, 마음껏 감동하고 싶어서. 질문 앞에서 막막해할 독자를 위해 샘플 대답까지 준비해둔 작가의 배려에 감탄하며 빠짐없이 답을 적었다. 정답은 없었다. 어떤 대답은 작가의 그것과 너무 닮아 반가웠고, 어떤 대답은 너무 달라 신기했다. 가까이서 멀리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한참을 들여다본 만큼 그림의 구석구석이 오래 남았다. 느낌을 따라가다 건져 올린 오래된 기억들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림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 더 이상 “제가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이라고 말문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내 느낌을 말하기 전에 사과부터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니까.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던 2013년 12월, 한 미술관에서 보낸 나흘을 기억한다. 어둡고 차분한 색감의 그림 앞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던 때를. 그 그림이 보고 싶어서 하루만 머물려던 계획을 바꿔 나흘 내내 미술관을 찾았던 나를. 이 책에 담긴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며 들여다보고 싶다. 그때의 내 느낌과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내 안에서 피어오르던 소중한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우리 자신과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있으려나 미술관’은 <우리 각자의 미술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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