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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Hendrix, Fly

인권을 말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 감수성

현실 세계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감수성이다. 정치 드라마나 전쟁영화를 보다보면 한 마디씩 악역을 맡은 이가 말을 한다. "싸빠진 감상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는 언제나 '권선징악'의 뻔한 스토리 구조였으나 우리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 이야기가 시큰둥하게 느껴지는 시점은 보통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왜 '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러한 동화가 재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 세계가 그러한 순수한 곳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서일 것이다. 계급 격차라던가 주거 환경의 차이등으로 인해 상이한 조건에서 자라왔던 아이들이 교실이라는 다양성이라고는 존중할 수 없는 공간에 '수용'되었을 때, 그들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성적과 덩치, 싸움의 스킬의 위계화라는 것을 통해서 뭉게지기 시작하는 순간. 동화는 슬슬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대다수의 여자 아이들(이 말에는 내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지독하게 깔려 있을 수 있다)의 경우 중고등학교 때까지 로맨틱 소설로 이어지는 이른바 '감수성'을 유지하는 책 읽기를 하긴 하지만, 동화적 세계가 주는 '꿈과 모험의 세계' 그리고 선과 악, 좋음과 싫음에 대한 감수성들이라는 것들은 어찌되었건 경향적으로 무뎌지게 된다.

게다가 입시의 현실이라는 것들은 그러한 '감수성'을 정말로 '싸빠진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이다. 내가 빅뱅을 좋아하든지 아니면 쌩뚱맞게 90년대의 얼터너티브를 좋아하는 지 따위의 취향이라는 것들은 대학 입시에 안나오기 때문이다(물론 논술에 그런 것들을 넣어서 쓸 수 있는 '창의적 인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진심이다). 그 보다 내가 봄의 꽃들을 좋아하고 새 소리를 들으면서 물에 발담그고 싶어하는 그 정서라는 것들은, 여행사와 팬션 광고의 아이템은 될 지언정 내 삶의 자양분은 못되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감정의 메마름이라는 것들의 연속은 기껏해야 소비욕구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대학을 입학했을 때, 건국이래 2000년대 전까지 대학이라는 공간은 부숴진 감수성을 다시 조립하고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책임성을 덧입힌 버전의 감수성을 제공하는 토양이 되기도 했지만, '짱돌을 집어던지고 토익책을 든' 88만원 세대(내 생각에는 80년대생 이후)에게 그런 대학은 어렴풋이 듣기만 했던 '전설의 고향'인 셈이다.

어쨌던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입하기 이전에 이미 '감수성'이라는 것과 단절된 상태로 살게끔 유도된다. 물론 몇 몇의 감수성이 예민한 잘 안팔릴(시장성이 없다는 것) 나 같은 인간들은 그놈의 감수성 때문에 세상을 곱게 볼 수가 없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선택으로 일궈진 잔인한 세계와 그것을 유도하는 잔인한 권력에 대해서 숨이 가쁜 현상을 느낀다.

'인권'이라는 말이 사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동안 '인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때, 난 그 말이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지배계급의 사치라고 생각했었고,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라는 말과 '혁명'이라는 말에 더 몰두 했었다.

근데 지금 다시 '인권'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는 데, 그건 내가 '인권'에 대해서 재정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쳐다보는 지에 대한 궁금이 들어서이다.

아직 '인권'에 대해서는 잘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으려면 '감수성'이 풍부해야 한다는 것.

오창익의 이 책이 주는 장점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이 굉장한 정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굉장한 양의 정보를 주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한국의 현대사를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할 테고, 동시대의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자료를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은 세상을 여전히 굳은살 박히지 않은 맨살로 느끼는 사람의 한국사회 보고서다. 세상에 찌들어 이미 그놈의 망할 놈의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걍팍한 한국인들을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잠재해 있는 우리 안에서 '정의'라는 것과, '인권'이라는 것을 다시금 소환한다고나 할까?

대학교 교정에 혹여 여전히 사회과학 세미나라는 것이 있다면, 혹은 주부들끼리 책 읽기 모임이라도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일상에서 만났던 바와 겹치는 지점들은 없었는지, 그것에 대해서 본인 생각들을 나눠보는 것도 굉장히 괜찮은 자극과 한 주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말라붙어버렸는 지를 자각하는 순간이 그대들이 다시금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생활인으로써, 느낄 수 있는, '짜증'이 확 났다가 집에서 자고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이야기들의 모자이크다. 비릿한 현대 한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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