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아직도 십센티는 더 클 것 같은 소년 유지태가
이제는 사랑을 조롱할 수도 있을 만큼
농익을 대로 농익은 여자
이영애와 커플이 되어서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처음부터 나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둘은 헤어졌다.
다행..이다
한때는 상우처럼..
지금은 은수처럼.
이제는 기억도 아련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때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영화의 상우 같았었다.
그처럼 유머를 모르고
눈치없고..맹목적이고
답답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하나.
비 오는 날 추리닝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그의 집 창문 앞에서 오기를 부리며 떨고 있던
내 모습.
그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은수처럼 표독(?)했었다.
꽁꽁 언 발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는 끝끝내 제 방으로 나를 이끌지 않았다.
이별에 대한 선전포고를 이미 했으니
그뒤의 감정수습은 모두 내 몫이라는 투였다.
당시엔 그 상황이 너무도 서러워
코 끝이 빨개지게 울었었는데..
이제 그 추억은 그냥...멋쩍을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무조건 어른이 되고 싶던
비린 미성년 시절..
나는 찐한 사랑 한번에 여자가 될 줄 알았었고
실연은 절대로 안 당할 줄 알았었다.
이제는 그런 내 바램들이
당치않은 기대였던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당면한 입장에 서서
상황을 이해하는 생리가 있다.
상우의 나이를 지나 은수의 나이에 서니,
상우보단 은수가 이해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순리다.
"라면이나 먹자".."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의 말을 이해 못하고
정말 라면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상우는
어쩌면 처음부터..
은수에겐 버겁게 순수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사랑이 운명이나 숙명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
대개의 경험있는 사람에겐
(사랑의 열정을 몇번씩 반복해서 느껴 본 사람)
순수는 정돈된 일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사랑을 좀슬게 한다.
상우의 순수가 은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사랑을 버겁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있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상우는
제가 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녘 서울에서 강릉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포옹을 요구하며..
맨정신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와도 안 만나줄 판에
술 취해 급작스레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게다가 엉엉대며 울기까지...
그 대목에 이르면 은수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인다.
저만 아프고 저만 힘들지.
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다수의 사람들은 은수가 상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현실적인 가치 기준의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봉에 초라한 개량 한옥에서 사는
홀시아버지와 매서운 시고모를 옆에 두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정말 누가봐도 최악의 결혼조건을 가진 그 남자와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은수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에 반박한다.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어떻게 변하니?"
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
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
사랑이 전부라고(직장마저 그만둘 만큼)
생각하는 남자와
격한 인생의 긴 여정을 어찌 헤쳐나가겠는가.
은수와 상우의 결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즈음 한국영화의 눈부신 발전은
그닥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안 그래도 적은 배우진이
너도나도 영화를 한다고 다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소원해서 될 일이라면
한국영화의 추락을
두 손모아 기원이라도 할 판이다.
그런 내 기원을
영화 <봄날이 간다>는 무참히 만든다.
드라마가 살 길은 영화의 추락이 아니라
드라마의 발전 밖엔 없다는
결론이 씁쓸하게 나를 채찍질한다.
- 드라마작가 노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