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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엔 티파티를 벌여보자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떠나 살게 되었었다. 그 이후로 주욱 부모님과 따로 살았는데, 그렇다고 자취의 고수가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에 나오기 전까지는 항상 '학교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이다. 끼니를 스스로 준비해서 챙겨 먹지 않는다면, 본인의 공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취'라고 부르기 어렵다. 기숙사에서는 공용공간은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나는 화장실도 공용으로 썼으므로, 내가 관리해야할 대상은 나 자신과, 손바닥 만한 방의 내 쪽 절반, 매일 나오는 빨래 정도였다. 그 일은 정말 쉬웠다. 


자취에서 스스로 식사를 챙긴다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지만 피할 수만도 없었다. 나는 요리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숙사에 살 때는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가끔씩 부모님 옆에서 거드는 정도나 부모님이 안 계실 때에 간단히 혼자 챙겨먹는 정도였기 때문에 스스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고 귀찮았다. 특히, 식사준비와 요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그 때에 요리하는 음식의 양과 노동의 강도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인분씩 준비하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고, 여럿 중 입맛이 까탈스러운 사람이 있어서 입맛을 맞춰야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그냥 평균의 상황에서는, 한 번에 1인분을 요리하나 2인분을 요리하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간에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 홀로 뚝 떨어져 살고 있으니 뭐라도 먹을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먹여야 했다. 처음에는 차마 먹지 못할 요리들도 속속 나왔으나, 나는 맛이 없는 요리를 먹으면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는 매주 금요일 저녁 때 한시간정도 시간을 내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봤다. 맛있을 것 같은 레시피를 찾으면 레시피 노트에 적어두고, 그 다음주에 뭘 해먹을 지 대략적으로 정해서 주말에 장을 봤다. 요리를 한 후에는 요리가 어떻게 됐는지, 혹시 재료를 대체해야 했다면 대체한 재료는 무엇이었고 결과는 어땠는지, 버터나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요리는 1/2이나 2/3 정도로 줄여서 넣곤 했는데 그럴 때는 맛이 괜찮았는 지 등을 노트에 또 적었다. 이렇게 경험이 쌓여서 이제는 '생존요리사' 레벨의 자취요리사가 된 것 같다. 


몸이 아플 때나 상심했을 때는 스스로를 잘 대접하고 싶다. 평소 특히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릇에 담을 때도 예쁘게 담아낸다. 가끔 인터넷에서 (레시피찾을 때) 보아둔 특별한 음료를 만들거나 특히 좋아하는 차를 우린다. 그렇게 해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힘이 나는 것이다. 


프랑스식 요리는 미국에서도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대중적인 식당보다는 조금 가격대가 있는 식당부터 파인다이닝 수준에 포진하고있다), 나도 프랑스식을 하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캘리포니아에 이사와서 하우스메이트들과 지내며 프랑스인이었던 하우스메이트가 해준 음식은 먹어봤다. 당시 프랑스인인 하우스메이트 하나는 일요일 아침에는 별 것 아니라는 태도로 키시 반죽을 만들곤 했고, 퀘벡에서 온 프랑스계 캐나다인 하우스메이트는 가끔 하우스메이트 디너를 할 때 프랑스식 요리를 해주곤 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식 가정식을 먼저 먹어본 셈인데,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의 저자 이재호씨처럼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을 파는 성격이 아니다. 나는 아마도, 커피학원에 다니거나, 프랑스로 요리를 배우러 훌쩍 떠나거나, 와인 학원에 다니는 일은 못할 거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잘 먹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부모님께 내가 잘하는 요리를 해드려야지. 한식으로는 엄마한테 쨉이 안 될 테니, 양식으로 준비해야겠다.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이재호 지음

 세미콜론

 2020.09. 


손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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